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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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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6>

[특집] 평가절하된 초기 대표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국내 영화계가 부침을 계속할수록 강우석 감독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우석의 귀환이 꼭, 충무로 황금기의 또 다른 도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국내 영화계가 산업화 고도화 전문화의 규격에 묶이기 이전, 인간 네트워크로 진행되던 그 무엇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은 여전히 현재진행적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백야행>을 제작배급하고 있고 <이끼>는 직접 연출중이다. 하지만 강우석에 대한 평가는 늘 조금씩 왜곡돼 왔거나 저평가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강우석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영문판 감독론 책자 <강우석>의 국문 원고를 일부 수정, 분재해서 싣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강우석의 영화적 야심은 그 전해, 곧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와 같은 해인 1991년에 발표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통해 나타난다. 이 영화는 강우석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돌출된 느낌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우석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강우석은 이 초기작에서 후기작에 속하는 <실미도>나 <한반도>만큼 가장 직접적인 정치 용어들을 구사한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복잡한 경로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 1987년 시민들의 피플 파워에 굴복, 대의 민주주의의 절차를 수락한 당시 집권당 노태우 후보는 군사독재 정부의 후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야권을 대표했던 김대중, 김영삼 후보의 분열에 어부지리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 국민은 여소야대를 실현시킴으로써 정부를 견제하고 나섰고 이에 위기를 느낀 노태우 정부는 그때까지 야당의 실력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후보와 또 한명의 보수당 후보였던 김종필 씨를 끌어들여 3당 합당을 성사시켜 여대야소의 정국을 탄생시킨다. 이른바 3당 합당 혹은 3당 야합으로 불리는 정치적 사건이었으며 한국 정치는 후퇴하기에 이른다.

▲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대통령 선거를 놓고 물밑 거래를 시도하는 보수 집권당과 한 야당 총재의 정치적 야합을 소재로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계엄사 출신으로 강경 보수파였던 한 대통령 후보가 어느 날 참혹하게 린치를 당한 채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이 후보의 사인을 놓고 자살론과 타살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를 목격한 유명 방송 앵커는 자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위해 입을 다물기로 한다. 하지만 같은 방송사의 선배 기자의 충고와 격려로 사실을 폭로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들과 함께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신문사 기자는 기관원들에게 납치돼 고문을 받는다.

1991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드리워져 있던 정치폭압의 어두운 그림자를 폭로하는데 주력한다. 여전히 검열행위로 억압받고 있는 언론, 정의와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자신의 치정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한 야당 총재, 집권 보수당 계파간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테러 등등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폭압적인 한국의 정치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강우석이 시도한 최초의 정치 스릴러다. 정치 스릴러답게 영화의 기본 골조는 누가 국회의원을 살해했는가의 의문부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해 지시는 여권에서 내렸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야권 후보는 얼마나 그 음모에 가담했는가. 주인공 기자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과연 진실을 파헤칠 용기를 보여 줄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협박에 굴복할 것인가. 영화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복합적인 캐릭터를 다수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실을 제일 먼저 폭로한 신문기자는 고문과 협박, 회유에 굴복해 자신의 보도가 허위였음을 시인하고, 오래 전부터 어용 언론의 앞잡이로 활동해 온 또 다른 동료기자는 주인공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중음모를 꾸민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겹겹이 쌓아 놓은 다수의 복합적인 캐릭터는 드라마의 전체 구조를 풍부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이 같은 기법은 강우석이 <투캅스> 시리즈나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반복돼 활용되면서 영화적 재미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낸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발표 당시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작품이지만 강우석의 초기작 가운데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전체 이야기의 얼개, 점층적으로 높여 가는 긴장감, 실제 정치현실을 모사하는 리얼리티 등등 완성도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이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없었던 데는 영화의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과 밀착돼 있다는 인식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갖가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지닌 실제 정치현실을 영화가 뛰어 넘기란 쉽지 않다. 한국사회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현실이 더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강우석이 직접 화법을 구사한 정치영화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나 이후 <한반도>같은 작품은 애초부터 관객들의 호응 면에서 한계를 지닌 작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강우석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장인형 감독임을 입증했으며 한국영화가 정치스릴러 장르에 있어서도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계속)

<시리즈 이전 글>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5>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4>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3>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2>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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