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주최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화상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제기구를 포함한 70-80어개 국가와 기구가 초청됐다지만 실제 참석 국가와 규모는 유동적이다.
미국은 이번 회의의 공식 참가 틀에서는 빠진다. 전쟁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과의 협의와 공조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지난달 군 수뇌부 회의, 이달 초 외교장관 회의에 이어 이번에는 논의가 정상급으로 올라간다.
대통령실은 프랑스가 맡아온 군사 파트와 영국이 맡아온 외교 파트의 움직임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합쳐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따져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참석 여부가 아니다. 어떤 이름의 국제연대에 올라탈 것인가의 문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원칙의 틀을 제안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립적 다국적군'이라는 말의 함정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전략적 병목이다. 한국에도 이 문제는 멀지 않다. 정부는 최근 이 해역에 한국 관련 선박 26척과 선원 170여 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대통령실이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을 핵심 국익으로 강조하는 이유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국익을 어떤 방식으로 지킬 것인가.
국제사회에서는 "교전 당사국을 제외한 중립적 다국적군" 구상이 거론된다. 얼핏 균형 잡힌 방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전 당사국의 이름을 명단에서 뺐다고 중립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중립성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이다. 누가 지휘하는가. 무슨 임무를 수행하는가. 어떤 교전규칙 아래 움직이는가. 질문은 세 가지다.
미국의 봉쇄 구상과 작전적으로 연결되거나, 이란의 전략적 레버리지를 군사적으로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면 명목상 제3국 연합일 뿐 실질은 한쪽에 기운 개입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의 봉쇄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종전 이후 별도의 방어적 틀을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법의 출발점과 군사행동의 한계
국제법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유엔해양법협약은 호르무즈 같은 국제해협에서 통과통항권을 인정한다. 연안국이 이를 자의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국제해사기구도 올해 3월 호르무즈 위기와 관련해 선원의 안전과 민간 선박의 통항 보장을 거듭 강조했다. 파편적 군사 대응이 아니라 안전한 통항을 위한 국제적 틀이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순수한 항행 안전"을 위한 국제 협력 자체는 법적으로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장한 다국적 해군의 활동이 그로부터 자동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해상상황 인식, 항로 감시, 정보 공유, 비상 구조, 선원 대피 지원은 비교적 제한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유럽의 EMASoH(European Maritime Awareness in the Strait of Hormuz, 유럽 주도 호르무즈 해협 해상 안전 확보 체계)도 항행의 자유 보호, 조정, 긴장완화를 내세웠다.
반면 호송, 기뢰 제거, 선박 검색과 정선, 항로의 강제 개방으로 넘어가면 성격이 달라진다. 최근 안보리에서도 호르무즈 상선 보호 결의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 막혔다. 국제법의 원칙과 군사행동의 현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벌어진다.
'다국적군'보다 '안전통항 체제'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다국적군"보다 "안전통항 체제"라는 표현이다. 이름만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임무의 성격을 바꾸자는 말이다. 중립성을 실질적으로 지키려면 최소한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임무 목적이 엄격히 한정돼야 한다. 항행의 자유와 민간 선원 보호, 이 두 가지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란 압박"이나 "전후 질서 관리" 같은 표현이 문서 어디에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둘째, 지휘체계가 미국 주도 작전과 분리돼야 한다. 미국의 봉쇄 전략과 정보·작전적으로 얽히는 순간 제3국 연합이라는 외형은 의미를 잃는다.
셋째, 교전규칙은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 자위와 구조는 가능하더라도 정선·검색·나포·선제타격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 그 순간 항행 안전 임무는 해상 강제조치로 바뀐다.
넷째, IMO와 연안국 협조가 중심축이 돼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해양법과 항행 안전 체계를 우회한 채 군사연합만 앞세우면 국제적 정당성은 오히려 약해진다.
다섯째, 종료 조건과 보고 체계가 분명해야 한다. 휴전 유지, 선원 대피 완료, 상선 통항 정상화 같은 기준이 없으면 임무는 쉽게 비대해지고 "안전통항"은 어느새 "지역 안보 개입"으로 변질된다. 최근 논의되는 영국·프랑스 주도의 방어 구상과 IMO의 안전통항 프레임워크를 구별해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참여 조건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에너지 공급망, 중동 사태에 대한 입장,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을 위한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언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두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국제연대는 구호가 아니라 내용이다. 어떤 연대에 어떤 조건으로 참여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은 단순한 동의국이 아니다. 해운·에너지 이해관계국이다. 독자적 원칙을 제시할 위치에도 있다. 필요한 것은 '중립적 다국적군'이라는 모호한 표어가 아니다. 비전투적 임무, 분리된 지휘체계, 제한된 교전규칙, IMO 중심의 법적 프레임, 분명한 종료 조건을 갖춘 '안전통항 체제'다. 이 선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전략적 자율성을 지키기보다 군사연합의 하위 파트너로 읽힐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이 원칙을 제안할 수 있다면 한국은 참여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회의의 방향을 설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이란과도 선박 안전 문제를 놓고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구분은 더 중요하다.
이 문제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다국적군"이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다. 해상 군사연합으로 갈 것인가, 안전통항 체제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군사연합으로 가면 중립성은 무너진다. 해상안전 체제로 가면 정당성과 실효성을 함께 확보할 여지가 생긴다.
한국이 이번 화상 정상회의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참여 의지가 아니다. 참여 조건이다. 한국이 얻어야 할 것도 참가국 명단의 한 줄이 아니다. 전략적 자율성과 외교적 신뢰를 지킬 수 있는 원칙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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