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오면 달라지는 여러 풍경들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연비는 얼마나 나올까? 출시되면 전기차의 가격은 얼마쯤일까? 집에서도 충전할 수 있는 차가 개발된다던데? 주유소들이 모두 업종을 전환해서 전기 충전소들이 들어서게 되는 걸까? 정차 중에는 시동을 껐다가 출발할 때 재시동하는 스톱앤스타트(stop-and-start) 시스템이 가능해진다던데?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기차가 관심을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엔진이 없는 차'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친환경차'라고 부르는데,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내연기관 대신 배터리를 사용해 모터를 돌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탄소가스를 비롯한 온실가스 발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너도나도 전기차를 차세대 성장동력이라 칭하며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특히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는 배터리 소재 개발이 핵심이다. 아직까지는 2~3시간 충전으로 기껏해야 100km 안팎을 달리는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계 정상들이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마주앉아 지구온난화 문제를 논의할 정도로 환경 문제가 심각해진 오늘날,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친환경차 개발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석유연료를 마구 내뿜으며 환경을 망쳐온 자동차업계 자본들이 뒤늦게 '자기반성'을 하면서 전기차 개발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윤 획득이라면 뇌물과 담합 등의 행위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돈이 안 되는 일에 스스로 나설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세계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세대 성장동력이자 친환경 컨셉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 문제는 그저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고 있지는 않다. 깊숙이 파고들면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기차에는 엔진과 변속기가 없다…자동차산업을 들썩이게 하는 전기차 개발
▲향후 닛산에서 양산될 전기차 LEAF의 1/4 축소 모델. ⓒ연합뉴스 |
물론 최근 전기차라고 출시되는 차에는 변속기가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이런 차량들이 순수한 전기차가 아니라 엔진과 배터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차량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길지 않아서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순수 전기차로 가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에는 보통 CVT(무단변속기)가 탑재되고 있다. 만일 순수 전기차 시대가 오게 되면 변속기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진다면? 엔진과 변속기를 만들고 이를 장착하는데 필요한 캠샤프트, 각종 브라켓 등 수많은 연관 부품들도 쓸모없어진다. 그 뿐인가? 당연히 내연기관 때문에 필요했던 머플러도 사라지고 라디에이터도 필요 없어진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들 중 절반 가량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엔진·변속기와 연관된 일자리들이 모두 정리대상이 된다. 엔진·변속기 부서만이 아니라 조립라인에 있는 엔진·변속기 장착 공정은 물론이고 이와 연관되어 있는 엔진서브장도 필요 없어진다. 실린더 헤드 등을 만들어내는 소재 공장도 소멸 위기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연스럽게 엔진과 변속기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부품업체들은 아예 통째로 날아갈 위기 앞에 서게 된다.
사실 그 여파를 좀 더 파고들면 훨씬 복잡해지는데, 그동안 엔진의 무게와 재질 때문에 차체를 철판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실제로 최근 생산되고 있는 일부 대형버스의 하부는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강화플라스틱으로 차체를 만든 컨셉트카도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차체의 재질이 강화플라스틱으로 바뀐다면 차체공장·프레스공장과 도장공장의 쓸모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자동차는 이제 기계장치라기보다는 조금 큰 전자제품이라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화석연료를 태워 공기의 힘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이라는 의미에서 자동차를 기차(汽車)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제 전기차가 출시되면 자동차의 이름은 아마 전차(電車)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자,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상상해보자. 거대한 기계장치를 생산하는 것과 조금 큰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우선 부품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자동차 조립라인의 공정 수가 상당히 축소된다. 완성차 조립라인으로 납품하는 부품사의 생산량도 상당히 줄거나 사라져서, 부품업체들이 전기차에 필요한 부품 쪽으로 업종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줄도산이 예상된다. 결국 자본 측은 상당한 노동력과 인력을 감축하려 할 것이고 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한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반의 거대한 산업 구조조정이 벌어진다.
노동절약형 기술 발전의 결과는?
물론 당장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기차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적어도 2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력과 가격 문제, 그리고 전기차 시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아직 배터리만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충분하지 않으며, 가격대도 일반인이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싼 편이다. 올해 말에 출시될 예정인 GM의 전기차 '시보레 볼트'의 가격대는 약 3만 달러 수준인데, 대략 라세티 프리미어 크기의 차량 가격이 한국 돈으로 4000만 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려면 곳곳에 충전소가 설치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시간이 걸린다.
또한 완성차 조립공정의 축소에 반해 배터리업체(2차전지업체)가 성장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물론 부품사와 완성차 노동력의 대대적인 감축에 비하면 고용창출과 관련된 그 상쇄효과는 매우 미미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세계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조만간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에 상당한 불안이 다가온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정도 얘기가 나오면 이런 반문을 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지 말라는 말인가?" 지구온난화와 생태 파괴가 벌어지는 지금, 친환경 기술 개발은 너무나 절박한 과제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 하는 것은 친환경 기술 문제가 아니라 '노동절약형 기술'의 문제이다. 물론 노동을 절약하는 기술 그 자체로만 보면 긍정적인 것 같지만, 이 기술이 활용되는 방식은 어떠한가? 자본 측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이 기술을 활용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잘라내려 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잘리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전기차를 많이 만들어봐야 노동자들 호주머니에 돈이 없기 때문에 판매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차량 아니던가. 물론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 촉진을 위해 정부가 5000달러 가까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논의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낳게 된다. 재정적자 폭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어느 순간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전기차 개발하며 "환경 보호 선도" 으쓱대는 전세계 자동차 자본의 진심은?
▲ 어떤 이들은 석유 자본의 저항과 막대한 로비 때문에 전기차 개발이 10년은 늦춰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사진은 현대차가 개최한 하이브리드카 제주 투어 행사의 모습. ⓒ연합뉴스 |
그러나 세계경제가 공황으로 치닫는 지금, 자동차산업의 앞선 자본가들은 이제 기술력으로 나머지 자본을 경쟁에서 물리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석유 자본의 저항과 로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개발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앞선 자본가들은 마치 자신들이 환경 보호의 전도사나 되는 양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차가 필요하다"고 떠들고 있다.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일부 석유 자본은 오히려 전기차 개발에 뒷돈을 대며 업종 변경을 시도한다. 주로 석유를 가공하는 자본이 그런 축에 속하는데 이들은 석유화학산업에서 번 돈으로 이제 배터리 업계로 진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전기차 시대에 저항하는 석유 자본들이 존재한다. 직접 석유를 파내는 굴착 자본의 경우가 그러한데, 아마도 전기차 시대가 다가올수록 이들의 저항은 국제 유가를 대폭 올리는 방향을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항하는 석유 자본과 전기차 시대를 열어 한몫을 챙기려는 자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다시 한 번 널뛰는 국제 유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제 유가가 대폭 올라갈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통해 겪은 바 있지 않던가. 다시 한 번 세계경제는 침체와 공황의 늪으로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전기차 시대를 열어가려는 자본 사이에서도 경쟁의 격화로 인해 문제가 심화되게 된다. 너도나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드느라 과잉중복투자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조만간 모두들 전기차 양산을 하겠다고 나서게 될 텐데 그럴 경우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소재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다. 국제 투기자본은 배터리 소재를 놓고 투기를 진행할 것이고, 이것은 자동차 가격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을 낳게 된다. 전기차 판매량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게 되고, 그때가 되면 뒤쳐진 자동차업체들의 도산 형태로 과잉중복투자의 복수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업계 자본가들은 이 경쟁을 포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러는 순간 경쟁에서 도태되어 다른 자본가들에게 밀리거나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국 정부들도 자국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개발에 엄청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10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2011년까지 전기차를 양산할 것이며 정부가 수천억의 투자를 보조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매년 유로Ⅳ, 유로Ⅴ 등 배기가스 배출기준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를 강하게 규제하지 않고 있는 나라에 비해서는 분명히 선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의 이면에는 유럽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개발을 독려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렇게 되면 유럽연합은 다른 나라나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을 하게 될 때 유럽연합의 규제 기준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타국 자동차업계에 비해 유럽연합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 사이의 경쟁 심화는 이렇게 각국 정부 또는 경제권 사이의 경쟁 격화로도 나타나게 되고, 이는 통상 마찰을 비롯해 수많은 갈등을 낳게 될 것이다. 무역전쟁처럼 총성이 울리지 않는 전쟁 수준에서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참을성 없는 호전적인 일부 정부와 자본가들이 딴 맘을 품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8일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밝힌 말마따나 그야말로 지금 "세계는 자동차 전쟁 중이다. 자동차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구 온난화 문제를 감안하면 전기차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기차가 하게 될 그 중요한 역할이 과연 평화롭고 장밋빛으로 장식되어 있기만 할까?
재앙으로 끝날 탐욕의 경쟁, 과연 누가 통제할 수 있을까?
사실 머리로만 생각하면 앞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의 해결방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절약형 기술 개발이 이뤄질 경우, 그 기술을 활용하여 노동력·인력을 감축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과감하게 단축하는 길로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 또한 과잉중복투자의 문제점 또한 개별 기업들이 똑같은 기술 개발에 각자 경쟁적으로 나서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협업과 분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연구개발이 진행되도록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발표처럼 개별 정부가 자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각국 정부들이 거의 동일한 투자를 하기 때문에 결국 과잉중복투자의 덫에 걸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머리에만 존재하는 대안일 뿐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그러한 통제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경쟁 속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며 다른 경쟁자를 무너뜨림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에 꽉 끼어있기 때문이다. 노동절약형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 아무리 선량한 자본가라 할지라도 정리해고·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를 잘라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자본가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세계경제는 대공황의 늪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 들어갈 것이다. 자본가들은 그 사실을 느끼면서도 개별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들을 제치고 내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릴없이 무한경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 자본은 살아남을 것이다.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가난과 궁핍으로 몰아넣은 공황의 대가로 말이다.
그렇다면 재앙을 막기 위해 이를 누군가 통제해야 한다면, 그것은 누가 해야 할까? 물론 나는 이번 글에서 전기차 문제를 약간은 과장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미 지난해 7월 일본의 미쯔비시에서는 '아이미브(i-MiEV)'라는 순수 전기자동차를 출시했다. 올해 말이면 GM이 시보레 볼트를 출시할 예정이며, 현대차는 인도에서 생산하는 경차 i10을 모델로 한 전기차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의 중간에 해당하는 하이브리드는 12년 전 도요타의 '프리우스' 시판 후 점차 양산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앞서 수차례 반복했던 것처럼 그저 친환경차 운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준비도 안된 채 거대한 재앙을 마주해야 한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리는 2년 남짓 남은 시간동안 우리는 이 사태를 통제할 방법과 세력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고용에 엄청난 위기를 느끼게 될 자동차산업 노동자 전체의 단결이 필요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은 물론이고,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되 여기에 제한되지 않는 풍부한 상상력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