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 안에 꽤 파격적인 부자관계를 담는다. 트랜스젠더인 여성이 남성이었던 시절 낳게 된 아들과 7일간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도 파격적이지만, 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이나영이 연기한다는 점도 화제를 모았던 터다. <웨딩드레스>는 <애자>의 뒤를 잇는 또 한 편의 '모녀영화'라 할 수 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가 자신의 남은 가족들, 특히 어린 딸을 위해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얘기다. <페어 러브>는 50대 노총각과 20대 여대생의 사랑 이야기. 세 영화 모두 장르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특이한 소재를 다소 평범하게, 즉 대중들이 충분히 예상하고 좋아할 만한 선에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인디밴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나 요조의 팬이라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를 꼭 챙겨봐야 한다.
우리영화뿐 아니라 외화들도 하나같이 화제작들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저예산으로 만든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이미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도 이례적인 큰 성공을 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뒤 이미 입소문을 잔뜩 탄 상태. <아스트로 보이 : 아톰의 귀환>은 어릴 적 아톰의 팬이었던 이들의 궁금증과 반가움, 우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만한 영화다. <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은 <트와일라잇>과 <뉴문>의 스타 로버트 패틴슨의 출연작으로 패틴슨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국내에 개봉하게 됐다.
▲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
감독 이광재
주연 이나영, 김지석, 김희수
사진작가인 지현(이나영)은 영화현장에서 특수분장사로 일하는 준서(김지석)의 열렬한 구애를 막 받아들이려는 중이다. 한편 민규와 보연의 어린 아들 유빈(김희수)은 새아빠인 민규가 너무 좋아지기 전에 친아빠를 만나겠다며 지현을 찾아온다. 유빈의 존재조차 몰랐던 지현은 당황하지만, 곧 자신이 성전환수술을 받기 전 어쩌다 보연과 갖게 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유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비밀이 준서나 유빈에게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지현은 준서의 도움을 받아 남장을 하고, 유빈에게 아빠 노릇을 하며 부자간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만 남장과 아빠노릇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나영의 남장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이나영이 남자로 등장하는 과거 회상씬은 영화에선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완벽하게 여자가 된지 이미 오래이나 아들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다시 수염을 붙이고 어설프게 남자 흉내를 내야 하는 상황의 미묘한 코미디가 중심을 이룬다. 코미디의 리듬은 제법 매끈한 편이지만, 코미디의 기운이 너무 강한 나머지 영화의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과 갈등이 지나치게 가볍고 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 웨딩드레스 |
감독 권형진
주연 송윤아, 김향기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고운(송윤아)은 어린 딸 소라(김향기)와 단둘이서 산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느라 딸을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하던 고운은 자신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딸이 못내 걱정되는 고운은 소라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부쩍 딸을 챙기고, 소라는 엄마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가족들과 이별하기 위해 준비하며 마지막 날을 준비하던 고운은 특히 딸에게 남길 특별한 마지막 선물로 딸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만든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로 데뷔한 권형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함께 있을 날이 그리 많지 않은 모녀가 이별을 준비하며 보내는 마지막 특별한 시간들, 그리고 상대를 위한 사랑과 배려들을 잔잔하게 스크린에 담아낸다.
▲ 페어 러브 |
감독 신연식
주연 안성기, 이하나
카메라 수리 전문가인 형만(안성기)은 오래 전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두루 사기를 치고 자취를 감췄던 친구한테서 유언으로 딸 남은(이하나)을 부탁받는다. 고양이마저 죽은 뒤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던 남은과 오십 평생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형만은 그렇게 삼촌과 조카처럼 만나 남자와 여자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처음엔 그저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 그러나 20대인 남은은 보다 넓은 미래의 세상을 꿈꾸고, 현실에 단단히 안주해버린 채 변화를 두려워하는 형만은 그런 남은과 계속 부딪히며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50대 남자와 20대 여자의 사랑은 국내에서 별로 시도되지 않던 멜로다. 시종일관 영화에 흐르는 기타 음악, 빈번하게 삽입되는 오래된 카메라들과 낡은 턴테이블의 클로즈업 등,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이고 예쁘고 로맨틱하며, 특히 나이 오십에 연애를 시작하는 형만의 서툴고 어색한 사랑은 영화에 종종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어떤 난관도 헤치고 그들만의 사랑을 이루기를 원했던 관객들에게는, 낭만적으로 시작해 현실적으로 끝을 맺어버리는 이 영화에서 굉장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 |
감독 민환기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작곡과 기타를 맡은 김민홍과 작사와 보컬을 맡은 송은지로 구성된 혼성 2인조 밴드다. 3집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음악에 변화를 주기 위해 새로운 객원멤버들을 대거 받아들인다. 그러나 객원보컬이었던 요조가 주목을 받으면서 밴드 멤버들의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습은 삐걱거리고 서로 서운하거나 못마땅한 점도 많다. 그 와중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팀에서 나가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민홍과 은지는 나머지 멤버들과도 결별을 결정한다. 인디씬에서 나름의 독자적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요조 및 객원멤버들과 함께 했던 시기의 1년을 평소 그들과 친분이 있던 민환기 감독이 카메라에 담았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던 이들이지만, 현실적인 고민들, 서로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목적성이 다르면서 겪게 되는 공적, 사적 갈등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과정을 통해 또 한 뼘 성장한다. 이를 지켜보는 것이 묘하게 감동을 준다.
▲ 파라노말 액티비티 |
감독 오렌 펠리
주연 케이티 페더스톤, 미카 슬롯
케이티가 미카의 집에서 함께 산지 3년. 케이티가 8살 때부터 겪기 시작한 초자연적 현상이 최근 다시 시작된다. 미카는 카메라를 사서 자신들의 24시간을 녹화하기로 한다. 케이티는 심령술사로부터 퇴마사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듣지만, 미카가 못마땅해하자 포기하고 만다. 그저 모든 현상이 조용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케이티와 달리, 미카는 이 일을 흥미진진해하며 집안의 불가해한 존재를 자꾸 도발한다. 심령술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위지보드를 집안에 들이기도 한다. 새벽녘마다 일어나는 수상한 이들이 점차 강도가 더해지는 가운데, 카메라에는 이상하고 무서운 일들이 계속 기록된다. 이제 새벽에 케이티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만큼 <블레어 윗치>와 종종 비교되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블레어 윗치>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영화의 배경이 철저히 '집 안'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화에서 묘사되는 무서운 사건들보다는, 여기에 대처하는 두 사람의 방식의 차이가 한편으로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이런저런 점에서 이 영화는 순수한 공포보다는 불쾌감, 그러나 사람들이 굳이 극장에 가서 경험하고 싶어하는 종류의 불쾌감을 선사하는 영화다. 혹자들은 "대체 내가 왜 이런 걸 느끼러 극장에 왔는가" 회의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불쾌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고자 했던, 그리고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했던 바로 그 정서일 것이다. 보는 관객이 그 불쾌감을 즐겼든 싫어했든, 이 영화가 주는 불쾌감은 확실하고 꽤 크며,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시도를 성공이라 판단하게 만든다.
▲ 아스트로 보이 : 아톰의 귀환 |
감독 데이빗 보워스
목소리 출연 프레디 하이모어, 니콜라스 케이지
메트로시티 최고의 과학자인 텐마 박사(니콜라스 케이지)는 로봇시험 가동 중 아들 토비를 잃는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토비의 DNA를 이식해 인간의 감성을 지닌 최고의 로봇 아스트로(프레디 하이모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스트로의 존재를 알게 된 독재자 스톤 총리(도널드 서덜랜드)가 군대를 동원해 공격해온다. 메트로시티 아래로 떨어진 아스트로는 로봇을 사냥하는 코라 일행과 친구가 되지만, 아이들의 대부 햄에그의 계략으로 로봇 서바이벌에 나가게 된다.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하나인 아톰의 이야기가 미국으로 건너가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프레디 하이모어부터 니콜라스 케이지, 도널드 서덜랜드, 크리스틴 벨, 그리고 빌 나이히까지, 헐리웃 스타들이 총출동해 목소리를 빌려줬다. 국내에서는 유승호가 아톰의 목소리를, 조민기가 텐마박사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남지현이 코라의 목소리를 맡았다.
▲ 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 |
감독 폴 모리슨
주연 하비에르 벨트란, 로버트 패틴슨
18세의 살바도리 달리는 마드리드 대학에 진학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하비에르 벨트란)와 루이스 부뉘엘(매튜 맥널티)을 만나 친구가 된다. 이들은 서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우정을 키워나간다. 특히 달리와 로르카는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며 강렬하게 이끌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달리는 로르카를 멀리하고,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로르카는 유랑극단을 꾸려 8년간 스페인 전역을 돌면서 민중연극을 공연하고, 스페인에 짙게 드리운 파시즘의 검은 구름을 보며 저항에 나선다. 달리의 걸작 중 하나인 '리틀 애쉬'는 그 제목을 로르카가 붙여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뉴문>으로 스타가 된 로버트 패틴슨이 달리를 연기한다 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달리보다는 로르카라 할 수 있다. 갓 대학에 진학한 달리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로르카 쪽으로 옮겨온다. 오랫동안 소문으로 떠돌았던 로르카와 달리 사이의 로맨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혀 만들어진 영화. 로르카를 전혀 몰랐던 관객들에게는 로르카라는 매력적인 시인을 알게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울 만한 영화. 불과 몇 편이나마 로르카의 시를 하비에르 벨트란의 낭송으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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