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마법사밴드의 자은은 새끼손가락이 짧은 기타리스트다. 잘 적응하고 싶어도 모자란 새끼손가락만큼 조금씩 어긋난다. 세상에 불시착한 듯한 불화로 연인 재성과 다투고 세상과 다툰다. 자신과 함께 영화 '시티라이트'를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쓸쓸하게 홀로 낙하한다. 그녀 뒤에 남은 이들은 12월의 마지막 날, 사과를 먹지 못하는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재성의 카페에 모이게 된다.
공연 내내 친구들 주위를 맴돌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자은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 미소를 볼 수는 없지만 마법사밴드는 자은이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찬란했던 그 시절에게 용서를 빈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를 무대화 한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의 자은은 조금 더 적극적이다. 그 속을 알 수 없었던 영화 속 인물과 달리 뮤지컬 속 자은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더불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이름 지어준 숲 실비아는 아직도 숲을 배회하는 자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흰 눈으로 덮인 날, 자은이 외면했던 빨간 사과를 기억할 것이다. 재성과 자은이 함께 찍은 사진의 배경이 됐던 숲 실비아, 실비아는 마법사밴드가 부르는 노래 바람에 맞춰 춤을 춘다. 우리는 실비아가 만드는 바람이 부는 만큼 자은을 기억할 것이다. 자은과 함께 '천개의 불안, 하나의 희망'을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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