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에서 통합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DJ의 적통"을 강조하며 이른바 '큰 형님' 역할을 바라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모양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민주당을 비판하며 창당 입장을 분명히 하자 민주당 박지원 정책위의장, 박주선 최고위원 등은 "일부 민주개혁세력들이 신당창당을 말하는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고 경계했다.
민주 "우리가 중심"
박주선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자타가 공인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반과 터전을 확보한 당으로 정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개혁세력이 대동단결해야 할 시점에서 어떤 주장과 명분으로도 신당 창당은 오히려 국민 분열 내지는 민주개혁 세력의 갈등으로 치닫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중심'이어야 함을 강조한 박 최고위원은 "그 누구도 개인은 '포스트 DJ'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 전체가 포스트 DJ가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DJ의 유지는 민주당 중심의 통합이라는 것이다.
박지원 정책위의장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민주당 중심'을 강조했다. 박 의장은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 대표일 때 김 전 대통령께서는 손 대표가 50년 민주당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했다"며 "대표이기 때문에 그 대표를 중심으로 뭉쳐서 민주당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지 특정한 개인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즉 인물에 상관없이 민주당이라는 단일대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박 의장은 친노 신당 창당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과거 단합해서 승리했고 분열해서 패배했다"며 "그 분들도 거의 비슷한 이념과 생각을 가졌다면 똑같은 실패를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이해찬은 등거리 행보?
하지만 민주당의 바람대로 통합 논의가 흐르지는 않는 것 같다. 친노그룹의 맏형 격이면서도 친노신당과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는 25일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강연에서 "민주당 없이는 (연대가) 안 되지만 민주당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또 "민주당이 신당을 추진하는 이들이나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기개혁을 하면 좋은데 지역적 한계 등으로 거기까지 될지 자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등 민주당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이 전 총리는 당분간 민주당이나 친노신당 어느 쪽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시민사회진영과의 소통 폭을 넓혀가며 외곽에서 통합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백가쟁명식 통합 논의는 지난 2007년 분열 직후부터 계속돼온 것이지만, 이번에는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계기가 마련됐고, 지방선거가 다가온다는 점에서 논의가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지부진·주도권 싸움 땐 역풍
쟁점은 외곽에서 요구하는 혁신과 관련해 민주당이 어느 정도 변할 수 있느냐와 친노신당은 어느 정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느냐, 그리고 시민사회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 등으로 모아진다.
민주당은 '통합·혁신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원칙론만 나올 뿐 아직 구체적 밑그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당 내에 여러 갈래의 세력이 엉켜 있고, 지난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쳐 오며 어렵사리 추스린 당 세력 구도와 체제를 일거에 뒤흔들기 쉽지 않아 보인다.
신당도 민주당과는 별도의 야당으로 자리매김해 통합은 아니더라도 '연대'의 기치를 들 수는 있지만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나 유시민 전 장관 등의 참여가 불투명한 가운데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의 기본적인 덩치를 갖출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일단 신당 측은 내달 20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기로 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마련된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경우 결국 주도권 경쟁이 과열되고, 이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야권 중진 인사는 "모처럼 좋은 기회가 마련됐는데 또 다시 논의만 하다 타이밍을 놓치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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