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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헌법 안 지키는게 더 큰 문제"

[박동천 칼럼] 기소될 리 없는 대통령의 '내란과 외환의 죄'

보도를 보니 김형오 국회의장이 "제헌절부터 헌법개정 문제를 본격 제기하겠다"(☞ 바로가기)고 공언했다고 한다. 나는 앞에서도(☞ 바로가기)을 한번 말했듯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세하게 밝히겠지만 (관심 있는 독자는 「내각제의 특징과 장단」, 『호남대학교 인문사회연구』13집을 보기 바란다),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내각제(이 용어에 대해서도 유감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간다) 정부 형태를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겉으로만 보면 김형오 씨의 (이 "씨"자는 우리가 반드시 되살려서 써야 할 일반경칭이라고 믿기 때문에 여기 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씨"라고 부른 것을 가지고 비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이후 우리는 전직은 물론 현직 대통령이라도 이름을 경칭 없이 마구 부를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과 내 입장이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보도에 따르면 김형오 씨도 "권력분산을 위한 내각제나 이원집정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형오 씨의 발상에 대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 강하게 딴죽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주로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우선 개헌이라는 것을 시한 정해놓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다음은 이번에 헌법을 개정할 때는 유명무실한 조항들을 반드시 청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오 씨는 국회의장에 취임할 때 임기 내에 개헌을 성사시킨다는 복안을 공언했다고도 한다. 이런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지 확언은 못하겠지만, 그 생각을 바꿨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더구나 "제헌절부터 본격 제기"한다는 발상으로부터 유추해보면 아무래도 모종의 시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은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정치를 한 단계 향상시킨다는 목적에 비춰서만 말이 될 수 있다. 일시적인 감흥에 따라 당장 눈앞에 거슬리는 어떤 티눈을 제거하는 식으로 헌법을 개정해서는 별로 효과도 없는 일에 공연히 헌법의 권위만 손상하고 마는 결과가 십상이다.
▲ ⓒ뉴시스

현행 헌법에 관해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이나 결함은 부지기수인 것이 맞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강권통치는 헌법 조문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애당초 헌법 또는 입헌주의라는 것이 어떤 성격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압도적인 주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결정적으로는, 헌법이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원리, 다시 말해 헌법을 무시하는 권력은 인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이 아직 충분히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교훈이 뚜렷해지려면 헌법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들이 자행되면 인민에 의해 강력한 제재를 받을 확률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 예컨대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조문이 경찰에 의해 쉽게 무시되고, 그런 경찰에게 핑계거리를 제공하는 집시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판결을 받거나, 또는 지금처럼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미루는 등의 행태들을 더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면서 주권적인 심판의 날이 오면 어떤 길을 선택할지를 별러야 한다. 이런 바탕이 조성되지 못한 상태라면, 설사 조문 상으로 아무리 권력분점을 헌법에 규정하더라도 권력이 안 지키고 헌법재판소가 동조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공연히 헌법의 위신만 치명적으로 훼손되는 결과가 뻔한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견제, 또는 의회 권한의 확대는 헌법개정이 전혀 필요가 없이 지금 헌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전부도 필요 없고 30명 정도만 현재와 같은 벽창호 정치가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매우 불길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임무를 다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견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쟁점법안들을 추구할 때마다 반대해서 부결시킨다면 더 이상 오기나 몽니를 부릴 여지가 없어진다. 집시법을 복면금지법으로 개악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독소조항들을 삭제해서 헌법정신에 맞도록 바르게 고친다면 경찰이 평화시위를 방해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이 위임받은 권한만 제대로 발휘하면 충분히 가능한 견제 역할을 국회의장부터가 스스로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핑계거리만 찾고 있으니, 헌법 조문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그런 겁쟁이들로 구성된 국회가 견제력을 발휘할 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헌법 개정 논의는 아무 시한이 없이 각 논제에 관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확산되고, 공론장에서 뚜렷한 합의가 나타날 때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못했던 헌법논쟁이 공론장에서 무르익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개정헌법만이 실효적인 정치규범이 될 수 있다. 어떤 내용으로 합의가 도출되든지 상관없이, 충분한 사회적 소통과정을 통해서 헌법과 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시민들의 이해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과 같은 문제에 시한을 정해놓고 덤벼든다는 것은 대개는 특정한 방향의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작전세력을 동원해 일시적인 다수를 만듦으로써 일을 해치우겠다는 계략 때문이기가 쉽다. 김형오 씨가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고, 별로 관심도 없다. 하지만 혹시 그런 계략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하기를 권하고 싶다. 정치발전을 위해 백해무익한 짓이고, 성공할 가능성도 대단히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시한이나 내용에서 아무 제약이 없는 개헌논의에 앞장을 서기 바란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사항은 현행 헌법에 쓸데도 전혀 없고 장식적인 품위와도 거리가 멀기만 한 조항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 무익하더라도 무해하다면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헌법조문은 뭔가 세상에 대해 의미 있는 효과를 함축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해롭다. 헌법의 위신을 크게 훼손함으로써, 권력이 헌법을 장식용이라고 오해할 여지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의 장식적인 조문들은 어떻게 해야 지킨 것이 되고 어떻게 하면 어긴 것이 되는지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헌법을 대충 어겨도 괜찮다는 악독하기 짝이 없는 무지를 전파하는 데 기여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84조의 단서조항을 지적하고 싶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 관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정한다. 나는 이 조문에서 "내란과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단서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군더더기 장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헌법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관해서는 형법 제87조부터 제104조에 정해져 있고, 전두환과 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이 형법상 내란죄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과 노태우는 현직일 때가 아니라 퇴임 후에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헌법 제84조와는 상관이 없다.

헌법 제84조가 상관될 수 있는 경우를 한번 가상해보자. 현재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 가령 그를 내란죄와 외환죄로 걸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작년의 촛불 시위 이래 시민들의 의사표현 자체를 두려워하면서 귀를 막고 몽둥이로 누르려고만 하는 태도 때문에 민중봉기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면 내란죄의 혐의를 걸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조중동에만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체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는 언론소비자주권운동의 불매운동을 스스로 알아서 수사한다는 검찰의 논리를 적용하면, 지금 이명박 씨의 벽창호 정치에 대해 내란죄가 아닌지 법리검토와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외환죄를 걸 수 있는 여지는 좀 더 쉬울 것이다. 이명박 씨가 현재의 직책에 취임한 이래 한반도의 정세는 현저하게 불안해졌다. 경기도지사로 행세하는 김문수 씨는 북진통일론을 드디어 입에 담아 우익들로부터 "대통령감"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 바로가기). 국방부장관은 서해에서 교전이 일어나면 북한의 해안포 기지들을 공습할 필요성을 거론했다 (☞ 바로가기). 최근 유엔의 안보리결의에 대해 아직은 북한이 도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엄포성 성명으로는 "전쟁행위로 간주하며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정부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도된 "총을 닦다가 오발 사고 날까 두렵다"는 심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비해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2년 전에 비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검찰이 대통령을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소추는 고사하고 수사할 리도 만무다. 나아가 설사 지금처럼 정국이 진행되다가 서울 도심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그리고 서해에서는 남북의 해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실제로 벌어지더라도, 검찰이 대통령에게 내란과 외환의 죄를 물을 리는 전혀 없다. 대통령의 반대파에서는 정권퇴진을 요구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조차도 검찰더러 대통령을 내란과 외환의 죄로 기소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중봉기나 전쟁이란 그 자체로 결과에 따라서 대통령의 지위를 좌우될 수 있는 실질적인 심판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미국의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졌다면 역사책에서는 아마 내란의 혐의를 씌울지 몰라도 기소해서 처벌한다는 것은 증오심의 발로에 지나니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판에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오는 쟁점일수록 내란의 위험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는 1987년까지 이치와 설득보다는 무력에 의한 억압이 횡행했기 때문에, 설득에 의한 승복이라는 바탕 자체가 탄탄하지 못하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논쟁에 더해 지독한 수준의 몸싸움들이 벌어질 것이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비용에 해당한다. 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빌미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고자 한다면 내란의 위험은 갈수록 높아지겠지만, 어쨌든 도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지는 결과에 의해서 판명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란이나 전쟁은 검찰이 활약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무력충돌은 법의 영역이 아니다. 법은 평화시에 작동하는 질서유지장치로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면 곧 평화적 질서가 무너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란이 진행 중일 때는 물론이고, 내란의 조짐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나서서 대통령을 기소할 리는 전혀 없다고 단언해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제84조는 단순히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만 정하고, 내란과 외환의 죄에 관한 단서는 빼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다. 민사소송은 언제든 법률적으로 가능하고, 나아가 국회가 언제든 필요하다면 탄핵안을 낼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국회의 정치적인데 비해 검찰은 중립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현직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인 국회가 탄핵을 못하는데 조직상으로 대통령 휘하에 있는 검찰이 형사소추를 낼 수 있을지 한번 곰곰이 따져보기 바란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걸어서 검찰이 소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이미 민심에 의해 모든 권력을 박탈당한 사람에 대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퇴임 대통령에 대한 형사소추는 지금 헌법으로도 가능하도록 열려있다. 그러므로 헌법 제84조에 들어간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한다는 단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다. 소용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해롭지도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헌법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헌법에 들어가 있음으로써 헌법 자체의 엄격성이 크게 훼손되어 전체적으로 헌법을 장식품으로 여기는 풍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지금 헌법재판소부터 헌법을 장식품으로 여기는 풍조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헌법재판소는 미신고옥외집회로 말미암아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각하 및 합헌판결을 내면서, "구 집시법은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일반적 원칙적으로 옥외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2009. 5. 28. 2007헌바22).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경찰차로 원천봉쇄하고, 5월부터 6월초까지 시민단체가 신고한 집회 42건을 모두 금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나온 판결문의 한 구절이다. 헌법 제21조 2항에 집회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그렇다. 작년의 촛불시위 때문에 헌법재판소로 올라간 야간옥회집회금지에 관한 사건과는 다르다고 굳이 단서를 붙여놓고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5월 28일의 판결에서 다수에 속한 여섯 명의 재판관들이 야간옥회집회금지를 위헌으로 판시할 확률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인민의 저항이 지금보다 몇 단계 강렬해지기 전에는 높지 않다. 헌법의 명문규정을 장식용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수 없는 까닭이다.

한국에서 헌법개정을 얘기하면 으레 권력구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정부형태에 관한 논의는 물론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닐 뿐만 아니라, 애당초 헌법에 정부형태를 어떻게 적어놓더라도 헌법 자체가 숭고한 문서로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부 부질없는 말장난으로 전락하고 만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개헌논의가 여러 번이지만, 헌법의 숭고함에 상응할 만큼 진지하고 섬세한 사회적 공론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1987년에조차 직선제 조항에만 관심이 집중되느라 나머지 조문들을 대충 졸속으로 처리되어 버린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87년 헌법은 여러 곳에서 개선되어야 할 소지가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이 경우 개선이란 조문 몇 개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개헌 과정을 통해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이념갈등과 패거리싸움에 관해 기본적인 경기규칙을 생성하고, 규칙에 관한 기본적인 합의를 조성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김형오 씨 같은 사람들이 "개헌"을 말할 때일수록, 일반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경계와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개헌논의를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지 말고 공론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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