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항공사의 노사 갈등이 종료되면서 올해 하투는 사실상 종결됐다. 이 두 노조의 실력행사는 고액연봉자 파업의 사회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에서 시작해 긴급조정권 발동의 적실성에 대한 논쟁을 낳았다. 파업의 여진은 조만간 정리될 전망이다.
하투를 끝으로 노동계의 고민은 하투 이전, 즉 7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정규법안' 처리를 두고 끈질기게 계속되어 온 노·사·정 협상, 김대환 장관 퇴진운동으로 귀결된 한국노총 한 간부의 죽음, 그리고 노동위원회 집단 탈퇴로 인한 노사정 대화 채널 완전 중단 등이 당시의 상황이다.
물론 하투 기간 동안에도 노·사·정 대결 구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현안투쟁과 관련한 노·정 물밑 접촉을 통해 상호간 불신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투 끝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노-정 관계**
노·정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조짐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최근 8·15 경축사에서 보여준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계를 겨냥한 발언은 현 정부가 노동계에 대한 인식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도 정리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며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며 예의 '정규직 과보호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규직 책임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또한 노동계도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ILO 아태총회에 양대 노총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최근 선언한 대목은 "김대환 장관 퇴진 없이 대화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양대노총의 대 정부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이와 관련 "현 정권이 노동운동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탄압의 수위만 높여가고 있어 다시 한 번 자기 살을 베는 심정으로 불참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혀 ILO 아태총회 불참의 원인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넘어야 할 두 개의 산, 비정규법-노사관계 로드맵**
이렇듯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현재까지 노·정 관계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노·정 모두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지 않을 경우 하반기 노·정 관계는 지금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일단 비정규관련법안이 큰 산으로 버티고 있다. 지난해 9월 입법예고된 이후 4차례나 국회 처리가 유보된 법안이다. 노·사·정은 이례적으로 긴밀한 협의를 거쳤지만,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호간 비정규 문제의 현실과 해법을 바라보는 시각에 처음부터 거리가 컸기 때문이다.
올해 말 입법화를 목표로 정부가 추진중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 로드맵)도 쉽게 넘을 수 있는 산은 아니다.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린 사안을 다루고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 의제는 충분한 대화와 협상이 없이 입법 추진될 경우 비정규법안 논란을 넘어서는 노·정 대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 안팎 "노-정 대화 회복되긴 되어야 하는데…"**
따라서 노동계 안팎에서는 중단된 대화 창구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지금 현 상태로는 파국밖에 없다는 답답함의 발로다. 그 파국은 또한 노동계와 정부 양자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대화 중단은 노-정 어디에도 이롭지 않다"며 "중단 책임을 둘러싼 공방과 별개로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화 회복을 위한 노력은 진행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가 양대 노총을 완전히 버리고 갈 생각이 아니라면 더 이상 노동계를 자극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삼가는것이 바람직하다"며 "노동계 역시 현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자체 역량이 부족하다면, 실리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현실화 되기에는 넘어야 할 대목이 많다. 노동계가 대정부 투쟁 목표를 일치감치 높게 잡았기 때문에 쉽사리 후퇴할 수 없다는 내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정부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기싸움'에서 밀렸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어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노 대통령 '외면' 속에 노-정 불신만 깊어가**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에서는 노 대통령의 처신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개는 노 대통령이 노·정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데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단된 노-정 대화 회복의 물꼬를 노 대통령이 터주길 바라는 기대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김대환 장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놓고 볼멘 소리를 쏟아냈다. 이 관계자는 "현 정권 임기 동안 노·정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그 핵심에 김대환 장관이 서 있지만, 정작 인사권자인 노 대통령은 꿈쩍도 않는 것 같다"며 "얼마나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져야 노 대통령이 김 장관 거취 문제를 고민할지 의문이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계가 김대환 장관 퇴진운동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는 와중에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 제안이 나왔다"며 "정치지형의 지각변동을 불러올 대연정론을 구상하느라 노동계의 주장을 한번이라도 검토해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오는 9월 정기국회가 열리기까지는 불과 보름도 남지 않았다. 노-정 간 생산적 대결 혹은 토론 없이 감정적 공방만 반복된다면, 노-정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 역시 곱지않은 시선을 보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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