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은 지난 30일 김대환 노동부 장관 해임을 청와대에 공식 요구했다. 이번 해임요구는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사고에 대한 노동부의 외면에서 시발됐지만, 김 장관 취임 이후 일련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노동계의 누적된 불만 표출이란 지적이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노동부에 입성한 김대환 장관**
김대환 장관은 지난해 2월 노동계의 기대와 암묵적 지지 속에 노동부에 입성했다. 노동계의 기대는 김 장관이 장관 재직 전에 보여줬던 행보를 근거로 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한국산업노동학회 부회장 등의 이력에서 보듯이 김 장관은 개혁 세력 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김대중 정부의 산업·노동정책에 대해 일관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양심적' 지식인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김 장관은 교수신분 당시 저서 <한국재벌개혁론>에서 '재벌해체'를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다른 예로 김 장관이 인하대 교수 재직시절 한 지역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IMF 외환 위기 이후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통렬히 지적하면서, 사회복지정책의 획기적 강화를 주장했다.
"구조조정에 따라 사회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구조조정이 곧 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식에 찬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결국 이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별도의 사회정책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생산적 복지나 신노사문화와 같이 구조조정의 부차적 지위에 머물러 있는 부분적인 정책이 아니라,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적어도 구조조정과 대등한 지위를 갖는 사회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2001년 12월7일 영남일보 기고칼럼 <구조조정이 곧 개혁은 아니다>에서)
또한 김 장관은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모든 부분의 구조조정이 '개혁'이란 이데올로기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개혁의 허구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의 '개혁피로' 현상을 운위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개혁을 많이 해서 국민이 피로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들은 개혁과정에서 배제되어,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다"(2001년 11월19일 영남일보 기고칼럼<개혁이 성공하려면>에서)
"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하는 식의 안이한 발상과 부분적인 문제가 있다고 갈팡질팡하면서 개혁의 일관성마저 훼손하는 식의 시행착오가 더이상 개혁의 땅에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 철저한 준비와 민주적 절차를 바탕으로 한 끈기있는 개혁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개혁은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성공하기가 힘들며, 비록 성공으로 선전되더라도 그 베일은 곧 벗겨지게 마련이다.(같은 글)
과거 김 장관의 이런 시각은 거센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노동계를 비롯 진보적인 학계·시민단체의 관점과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시절 노동·산업·복지를 담당하는 경제2분과 간사로 들어설 때나, 장관 취임당시 노동계는 기대, 재계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실제로 김 장관은 취임 이후 노사정 대표자회의등을 강력히 추진, 그동안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에서 한 발 벗어나, 참여정부의 '사회통합적 노사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김대중 정권 내내 대화에서 소외돼 장외 투쟁 일변도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노동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파국의 시작**
하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된 지 불과 몇 달만에 오늘날 노정관계의 파국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지난해 7월 LG칼텍스(현 GS칼텍스)·지하철 노사분규에 대해 신속한 직권중재 결정하는 한편, 9월에는 기간제·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노·정 갈등은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노·정 갈등은 때로는 정책 차원의 대립을 넘어 인간에 대한 불신을 포함한 감정적 대립 양상으로 나아갔다. 감정 대립은 김 장관의 발언에서 잉태됐다.
한 예가 지난해 12월 김대환 장관이 입각 전 재직했던 인하대 졸업생들이 낸 신문광고에 대한 김 장관의 발언이다.
당시 인하대 졸업생 2백27명은 한 일간지에 '김대환 교수, 당신이 부끄럽습니다'란 제하의 광고에서 "취임 이후 공무원노조·비정규노동자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이 온갖 독설로 정부의 '노동자 죽이기'정책에 나팔수 노릇을 하시는 모습을 봤다"며 "개혁적 학자로서 가졌던 원칙과 소신조차 지킬 수 없다면 장관직에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나에게 직접 배운 제자는 없고, 제대로 공부도 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모른다"며 제자들의 충언을 제자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대응했다. 당시 김 장관 지인들 사이에서는 "김 장관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치지 않는 독설**
김 장관의 '독설'의 정점은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 표명에 대한 김 장관의 비판에서 터져나온 발언이다.
인권위가 '사용사유제한', '동일노동동일임금명문화' 등 사실상 정부법안의 골간을 뒤집는 의견표명을 하자 김 장관은 인권위에 대해 "균형잃은 정치적 행위", "인권위의 월권", "단세포적 발상"이라는 말에 이어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더니..."라며 다분히 감정섞인 비난을 퍼부어댔다.
노동계, 시민단체 등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물론 김 장관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신발언'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김 장관에게는 '오만', '독선'이란 표현이 따라붙기 시작하면서 노·정 간의 불신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대환 장관, 노동계의 최대 근심거리**
하지만 양대노총이 공동으로 김 장관 해임을 공식 요구하게 된 결정적 배경은 지난달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사고에 대한 김장관의 발언과 노동부의 태도에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16일 한 조찬모임에서 김 지부장 사고에 대해 "나와는 무관한 사건이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일어난 사건이다"라는 발언과 함께 "분규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다. 노동부 직원들도 현장에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에 대한 보도가 나가자 노동부 측은 긴급 해명 자료를 통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지만, 한국노총 측이 증거 자료를 제출하고, 김 장관의 발언을 들은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르자 꼬리를 내리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김태환 충주지부장 사망사고에 대한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귀를 의심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노동계와 원수를 지자는 말인가"라며 "노동부 장관이 노사분규 현장에 가지 않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물 건너 갔다. 격한 대립과 투쟁만이 남았다"며 격앙된 목소리가 난무했다.
결국 김대환 장관에 대한 노동계의 '공분'은 '해임요청'으로 표출됐다. 또한 한국노총은 중앙-지역단위의 각종 사회적 대화 기구에 단계적 탈퇴를 선언하면서 노동행정 대란마저 예상되는 상황이다.
장관 취임 1년6개월째 인 현재,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 장관은 노동계의 최대 근심거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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