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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의 사과 받아내렵니다"

[인터뷰]복직 확정판결 받은 해고노동자 김석진씨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은 투쟁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오죽하면 운동가요 중에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을까. 현대 미포조선 해고노동자 김석진씨는 이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지난 1997년 사측 관리자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뒤 8년 째 복직 투쟁을 벌여 온 김씨가 22일 드디어 대법원에서 복직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걸어온 길은 수차례 언론보도에 등장했다. 43일간의 단식, 180일간의 철야노숙투쟁은 그가 복직투쟁 과정에서 겪은 고통의 단면을 보여준다. 힘들고 외로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김씨에게 가장 두려움을 준 것은 한 원로 변호사의 말이었다.

"최병모 변호사(민변 전 회장)가 그러더군요. 언론도 도와주고 여론도 호의적이지만, 대법원이란 곳이 하도 보수적인 곳이라 정작 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른다고요. 법조계 오래 몸담고 있으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간담이 서늘해지더라고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법원은 정의를 지켜줄 줄 알았는데…"**

김씨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두려움을 가진 것은 사실 대법원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거꾸로 돌아가도 법조계만큼은 양심과 정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는 얘기다.

"우리같이 많이 못 배우고 돈 없는 사람들이 기댈 곳은 신성한 법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 권모술수가 횡행하더라도 법조계 만큼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믿음이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씨는 자신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40개월이나 심리를 한 데 대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2000년과 2002년의 1·2심에서 잇따라 승소한 김씨에게 대법원이 40개월이나 판결을 미뤄 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법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흔들린 것도 이때부터다.

"사측이 2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영입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좀 놀라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대법원이 판결을 빨리 내리지 않자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전관예우', '전관예우' 하던데,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대법원도 양심과 정의 말고도 다른 잣대를 갖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법원장 사과 받아내겠다"**

김씨는 대법원 복직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다고 했다. 40개월 지연시킨 이유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 상고심의 경우 5개월 이내에 판결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199조가 왜 준수되지 않았는지 답변을 못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1인 시위를 계속할 생각이다.

"우리 같이 돈 없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예요. 40개월은 견디기 너무 힘든 시간이죠. 대법원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심정을 알지 의문입니다. 말도 안되는 대법원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1인시위를 당분간 지속할 생각이에요. 또 나같은 사람이 40개월동안 고생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김씨는 대법원장 공개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렸지만, 본인은 사과를 꼭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또한 40개월 동안 대법원의 무언의 폭력을 견딘 당사자로서 얻어내야 할 의무라고도 했다.

***"이제 사람 도리 한번 해 봐야죠"**

한편 김씨는 8년간 돌보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답할 생각이다. 특히 그에게는 치매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한번 모시지 못한 장인이 있다. 그는 복직확정판결이 나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어 장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말했다.

"8년간 복직 싸움한다고 너무 주위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장인 어른이 치매에 걸려 거동도 하기 힘드시지만, 병원 치료 한번 못해 드렸어요. 복직투쟁 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죠. 병원에 입원시키면 한 달에 85만원이 든다고 하더라구요. 조금 전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입원시켜 드리라고 말했어요. 이제 좀 사람 도리 해보려구요."

그가 돌볼 사람은 장인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는 중학교·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이 있다.

"아빠가 힘겨운 복직투쟁을 하는 걸 봐서인지 애들이 참 조숙해요. 또래들처럼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내일(23일) 울산 내려가면 애들한데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씩 사주려구요. 괜찮은 걸로…. 오랜만에 아빠 노릇 한번 해야죠."(웃음)

김씨는 8년 세월 동안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인사를 할 거라고 한다. 또 자신의 터전인 울산에서 노동자를 위한 작은 체육대회도 열 생각이다. 외롭고 힘들 때 지켜준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란다.

"옛 말에 10% 도움을 받았으면 10배로 갚으란 말이 있어요. 제가 여지껏 버틴 것도 알게 모르게 저를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지만…. 아내와 딸들을 서울에 데려와 인사하려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앞으로도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겠죠."

김석진씨는 인터뷰 내내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1월 처음 그를 만났던 기자로서는 김씨가 이처럼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다. 인터뷰 동안 여기저기서 김씨에게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런 저런 앞으로의 꿈들을 이야기하는 김씨를 보면서, 40개월이나 판결을 미룬 대법원은 과연 그 40개월 동안 김씨의 속마음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느 사실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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