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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피운 꽃인데…겨울로 돌아가나"

[복지국가SOCIETY]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칼럼을 공동 게재합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회원이 돌아가며 쓰는 각 분야의 깊이 있는 칼럼을 <프레시안>을 통해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실현하고자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명적 정책을 추구하는 자발적 모임입니다. (☞바로 가기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영구 집권의 길을 열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총칼로 억압하는 한편, 의회와 정부는 발췌개헌안을 만들어 공고 절차도 없이 기립 표결로 가결시켰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폭력과 협잡의 과정을 지켜보던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라는 기사를 <런던타임스>에 실었고, 이후 상당 기간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치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21세기 한국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근대화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화(경제성장)와 민주화(시민적 권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근대화의 모델이 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액이 결정된 이후에야 정부 예산을 수립할 수 있었던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경제에서 지금은 경제 규모 12위의 무역대국으로 발전하였고, 반공을 빌미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였던 폭압적인 군사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굴복시키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였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집권하였던 지난 10년 동안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남북 화해의 길을 모색하여 남북 간 평화적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고작 1년 만에,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 화해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초반기의 연이은 실정(失政)으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연 7% 경제 성장을 통해서 국민소득 4만 불을 달성하여 7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던 '747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극심한 경제위기의 여파로 문을 닫는 기업들이 늘어가면서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빈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고용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자영자의 60% 이상이 적자에 허덕이며 폐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1년간 중산층은 붕괴되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88만 원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 가는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현 정부와 여당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부자들에게는 퍼주기로 일관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저소득 밀집 지역 공부방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여 방과 후에 갈 데 없는 어린 학생들을 공부방에서 추위에 떨며 배고픔에 시달리게 하는 한편으로, 부자들을 위해서는 각종 부동산 감세 정책과 부동산 투기 조장 정책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서민들의 타는 속을 더욱 까맣게 태우고 있다. 전체 국민의 1~2%에 해당하는 극소수 부자들을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시켰고, 강남의 자산가들을 위해 투기 지역을 해제하고 양도소득세를 대폭 인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현 집권층의 상당수가 이러한 부자감세와 부동산 가격 급등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익(公益)을 가장한 사익(私益) 추구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심정이다. 하기야 "땅을 너무 사랑해서" 탈법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였다는 이 땅의 지배계층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기대할 것인가?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고작 1년 만에,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 화해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프레시안(만평=손문상)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 집권층의 독선과 오만, 그리고 사익 추구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며, 때로는 저항할 수 있는 민주적 기관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피땀과 눈물로 이룬 6월 민주항쟁의 성과인 '강화된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성'은 지난 1년간 청와대, 행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의해서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게다가 소위 법과 질서의 유지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있으며, 공정방송을 외치는 언론인들을 구속하고,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야외학습을 허용한 선생님들을 무자비하게 파면시켰으며,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생명으로 하는 인터넷 광장에 족쇄를 채우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고 있다.

현 집권층이 강조하는 법치(法治)가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회가 인간에 의한 지배(人治)에서 벗어나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에 의해 지배되기 위해서는, 법치의 원리가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일관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약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법치란 단지 권력자의 폭압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법치를 그렇게도 강조하는 현 집권층은 집권하자마자 법으로 규정된 국가기관 기관장들의 임기를 무시하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해가며 중도 하차하게 만들었다. 즉, 자신의 구미에 맞을 때는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하다가도 정작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할 때는 법의 질서를 무시하는 전형적인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법치란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이고 부당한 권력 행사(人治)에 맞서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확립된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데, 현 정부는 오히려 국민들의 권리 행사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무기로 법치를 오남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그리고 신문 지상에서 자유롭게 의사가 서로 전달되고 소통되는 언로(言路)에 사법의 칼날을 겨누어 놓고, 권력에 불편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법의 이름으로 구속하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권리로 존중되고 있는 '의사 표현의 자유'는 바로 "틀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올바르고 정확한 정답만을 말하면서 살 수는 없거니와,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오히려 그 사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이 제시한 정답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과감하게 오답을 제시한 사람들이 오히려 역사를 발전시킨 경우가 무수히 많지 않았던가. 비록 대다수의 사람들과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견해와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다소 불편하게 하더라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 사회와 비교하여 민주사회가 갖는 다양성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현 집권층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 일제고사 거부 선생님들에 대한 파면, 인터넷 논객과 기자들의 구속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현 서울시 교육감을 출석시켜서 일제고사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파면된 선생님들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에서 서울시 교육감은 자신이 파면시킨 선생님들이 교원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여 주위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파면시켜 놓고서는 이들이 복직되길 기도하고 있다니, 사람을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유분수이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관대하신 하느님이라도 그 기도를 들으시면서 아마 꽤나 불쾌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필자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그 교육감은 이런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발언을 매우 태연하게 그리고 아주 진지한 태도로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현 서울시 교육감이 현 집권층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넓은 범위에서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코드가 맞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학업 성취에 따라 줄 세우는 경쟁 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서 일제고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면, 이를 거부하는 선생님들을 파면하는 추임새를 놓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성찰과 사유는 실종되고, 정작 교육의 주체인 선생님들은 교육 행정의 대상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행태가 비단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MB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예술계 등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권력의 입맛에 맞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갈리고, 갈려진 편끼리 서로 공격하는 파열음으로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고의 지지율 격차를 보이며 탄생하였던 당당한 합법 정부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모든 일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편집증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필자는 현 집권층이 집권 초기부터 우리 사회를 갈등과 불신, 그리고 상호 반목으로 내몰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공익(公益)에 대한 개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 집권층은 지난 70~80년대 고도성장 시기에 자신들의 입지를 세운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다양성이 결여되었던 그 시대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공익의 발전과 동일시되는 기묘한 시기였다.

예를 들어, 현대건설의 성장과 발전은 분명 사익 추구의 결과이지만, 한국 경제의 중추적인 산업체로서 현대건설의 발전은 곧 한국 경제의 발전이라는 공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상태에서 줄곧 성장해 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익 추구가 공익의 실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또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바로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고 좋은' 공익 추구가 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위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진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포용의 리더십은 70~80년대의 일그러진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아마도 현 집권층의 가슴 속에 짙은 향수로 남아있을 70년대식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다. 국민총화라는 미명 하에 다른 생각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들을 총칼로 억압하면서, 국민 총동원의 압축 성장을 시도하였던 그 시기는 어느 시인의 말 그대로 '겨울 공화국'이었다. 불모(不毛)의 겨울 공화국에서 대화는 실종되었고, 다양성은 거부되었으며, 포용은 단지 약자의 투항일 뿐이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이러한 겨울 공화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중이 피땀으로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장차 우리가 갈 길은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유린되었던 어두웠던 과거의 길이 아니라 실체적 민주주의인 '민생 민주주의와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희망찬 미래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소리 높여 민주주의를 다시 외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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