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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사악함, 내 안의 공포로 영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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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사악함, 내 안의 공포로 영화 만든다"

[핫피플] 8년만의 신작 <실종> 내놓은 김성홍 감독 인터뷰

9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이었던 김성홍 감독은 '실질적인 첫 데뷔작'인 <손톱>을 내놓았을 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지지하는 이든 비판하는 이든, 모두 그가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생소하고 낯선 스릴러 영화를 개척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지지자들은 그가 장르영화에 대한 편견 때문에 터무니없이 평가절하되었다고 주장하고, 비판자들은 연출력이 떨어짐에도 장르영화 감독이란 이유만으로 과대평가되었다고 비판하는 식이다.

▲ 그간 김성홍 감독은 팬들 사이에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평가절하된 감독'으로 칭해지기도 했다.ⓒ프레시안

사실 김성홍 감독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손톱>을 만들었을 때는 마침 국내에서도 막 페미니즘 비평이 본격적으로 봇물을 터뜨리던 때였다. <손톱>이나 이후 만든 <올가미>는 모두 영화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가 아닌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 전에,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으로 억압을 당하는 여자들이 사회나 남자를 향해서가 아닌 자기들끼리 싸운다는 '설정'에서부터 비판과 공격을 받았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확대재생산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신장개업>은 충무로에 샛별처럼 나타난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과 비교를 당하며 깎아내려졌고, <세이예스>의 경우 코믹한 이미지의 박중훈이 무서운 사이코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작품 한가운데로 들어가 진지하게 분석과 평가가 이뤄졌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김성홍 감독이 다시 자신의 주요 장기를 살려 스릴러 <실종>을 들고 돌아왔다. 자신의 제작사를 차리고 박용우, 김명민을 주연으로 <스턴트맨>을 80%까지 촬영해놓고 결국 엎어지면서 시련의 시간을 거친 뒤다. <세이예스> 이후 8년, 김성홍 감독에게 <실종>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다. 그는 자본과 흥행의 법칙이 충무로 전체를 유일하게 지배하는 지금, 과거 아무리 흥행감독이었다 해도 <실종>이 실패하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 처음부터 <실종>에 대한 평론가와 기자들의 평에 민감한 반응을 내비쳤다. 영화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영화를 평한다며 성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평단에 대한 적대감이라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예술가로서 갖는 자부심이자, 장르영화가 미진했던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보였다.

▲ "피해자의 공포와 고통에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프레시안
내 영화는 스릴러, '긴장'의 리듬감 잘 살리는 게 본분

"혹자들은 문성근의 연기는 뛰어났지만 영화는 별로라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배우의 연기도 결국 감독이 연출하는 것이고, 배우가 뛰어나다는 얘기는 결국 그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아닌가. 일반관객들이야 내 영화를 보고 불편하다, 역겹다, 재미없다고 얼마든지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나 평론가라면 달라야지. 스릴러 영화는 무엇보다 '긴장'이 중요하고, 감독들이 가장 만들기 힘들어하는 장르가 스릴러인 것도 긴장의 리듬을 영리하게 계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시간 가까이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무서웠다면서 영화가 별로라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감독인 만큼 내 영화의 부족한 점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그리고 정확히 안다. 하지만 내 영화가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점들은 그런 것들과는 언제나 차이가 있다. 표피적인 수준에서 얄팍하게 이해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더라. <손톱> 때만 해도 심지어 포스터가 촌스럽다고 욕을 먹기까지 했다. 정작 그 포스터에 대해서 '한국영화가 이렇게 세련돼졌을 줄 몰랐다'는 팬레터를 받기도 했는데."

피해자의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

"내 영화를 보고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불편하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다. 오히려 나는 더 막가고 싶은 걸 참은 것도 있다. 실제로 내 영화엔 피도 별로 안 나오고, 강간 씬도 멀찍이서 얼굴만 보여주지 일부러 자세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얼마나 짐승같은 짓인지,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 분위기로 전달하려고 했다. 연쇄살인범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만 떠들지 피해자가 겪었을 공포나 고통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실종>을 연결짓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시나리오를 쓴 건 훨씬 전부터고 지금이 비수기이기 때문에 개봉일을 잡은 것뿐이다. 도리어 그런 식으로 연결되는 건 내가 싫다. 초반에 보도자료가 그런 식으로 나간 것도 내가 막았다."

영화는 현실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강호순 같은 사이코패스가 나온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런 후기 산업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걸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그간 우리나라에 그런 사이코패스가 없었던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식동물이었기 때문일 거다. 문학에서도 서양에선 스티븐 킹이 있고 한데 우리는 안 그렇지 않나. 하지만 지금 바뀌고 있다. 이미 많이 바뀌었다. 나는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그런 사이코패스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시나리오로 쓰고 영화로 만들었는데 마침 강호순 사건이 터져버렸다. 스릴러에 무수한 서브 장르가 많은데도 유독 지금의 한국에 스릴러-호러가 더 많은 이유? 사회가 그만큼 끔찍하기 때문 아니겠나? 영화는 현실의 끔찍함을 넘어서지 못한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영화는 그것을 반영할 뿐이다."

▲ 영화 <실종>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문성근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판곤'을 섬뜩하게 연기해냈다.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말이 통하는 존재도 아니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세상에 자기 혼자 존재하고 자기가 왕인 그런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도 가끔은 누군가 자신을 죽여서 자신의 짓거리를 말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가끔씩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죄책감을 느낄 때 자살을 할 거다. 그러나 그들은 남을 죽일지언정 절대로 자살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피해자가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이었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영화가 초반에 집중한 것도 그것이다."

연쇄살인범의 모습, 나한테도 있더라

"영화의 판곤(문성근)의 캐릭터는 나와 문성근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만든 캐릭터다. 어릴 적부터 머리도 좋았고 동화 대신 [현대문학]을 읽고 자랐다. 촌에서 그렇게 자라다가 서울에 와서 대학도 다니고 연애도 했고 감독까지 됐다. 하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내 길을 찾지 못했다면 나도 그런 놈이 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예술가가 되어 내 안의 사악한 면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은 거지. 하지만 만약 그럴 길이 없었다면? 그렇게 가정하고 나니 비로소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문성근도 내 얘기를 듣고 판곤이란 캐릭터를 이해하더라. 그 역시 자신의 그런 부분을 반영시켜 판곤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어떤 인간에게나 있을 수 있는 가장 사악한 면을 극대화시켜 만든 캐릭터인 셈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강하고 섬세하며 선하다

"여자에게 그런 식의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이야말로 가장 끔찍하고 나쁜 범죄다. 실제로 내 영화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불쾌해한다. 남자들이 다 그런 식으로 매도된다는 거다. 하지만 남자들이 실제로 못돼먹은 건 사실 아닌가. 찔려서 그러는 거다. 술자리에서도 여자를 놓고 남자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섬세하고 강하다. <손톱>이나 <올가미> 같은 영화도 실은 여자들의 그런 섬세함과 풍부한 감정을 놓고 만든 영화다. 사실 나는 여자들이 참 좋다. 여자를 예쁘게 그리는 게 내 능력이기도 하다. 추자현도 세다, 강하다라곤 하지만 정말 예쁜 배우다."

▲ "내 안의 사악함과 내가 느끼는 공포, 그것이 내가 만드는 스릴러 영화의 동력이다."ⓒ프레시안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하고싶은 영화

"많이 벌리고 수습을 못 하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쏘우>처럼 한정된 예산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단순하게 상황이 주어지는 가운데 임팩트가 강한 영화들이다. 스릴러라는 게 이야기를 강화시키거나, 설정과 캐릭터를 던져놓고 시작하게 되는데 전자는 너무 문학적이다. 오히려 후자가 영화적이다. 영화라면 문학적으로 이야기를 꼬고 만들어 설명해 나가기보다 비주얼적인 면을 효과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난 <투캅스> 같은 권력 풍자 코미디를 쓰기도 했고 연출을 하기 위해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나 <열일곱 살의 쿠데타> 같은 영화도 만들었다. 하지만 내 본령은 스릴러다. <손톱>이 내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내 영화의 동력은 폐쇄공포증

"내가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사악한 면이 드러나는 스릴러를 주로 만드는 것은 실은 내가 공포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폐쇄공포증이 심하다. 집에서도 방문을 약간 열어두어야 한다. 가위에 눌리기도 일쑤다. 욕조나 수영장 같은 물의 이미지가 자주 나오는 것도 물 그 자체보다는 물 안에 갇히는 공포를 그려내는 것이라 보면 된다. 공포를 너무나 많이 느끼기에 공포를 다루는 영화를 주로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잘 쓰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다

"헐리웃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 곧바로 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내가 최초이자 마지막일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나리오 작가가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연출부나 조감독을 거쳐야 하지 않나.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의 전체를 꿰며 연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외국이야 장르영화의 밑거름이 될 다양한 문학과 예술의 기반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시나리오 작가가 다 처음부터 고안하고 창작해야 한다.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육성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같이 썼다 해도 각본 이름에 내 이름을 빼고 후배 이름만 박아넣곤 한다. 그런 식으로라도 시나리오 작가를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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