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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스캔들' 주인공은 바로 이용훈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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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법 스캔들' 주인공은 바로 이용훈 대법원장"

[기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고함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심 끝에 내놓은 뉴딜(New Deal)법안들이 번번이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특히 1935년의 경제재건법 위헌 판결에 평소 자신을 지지한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마저 가담한 사실을 알고는 충격과 울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종신직인 연방법관직의 속성상 연방법원의 노령화가 필연적이라는 사실에서 연방법원, 특히 대법원의 보수화 근거를 찾아냈다. 1936년 말의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로 재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70세가 넘는 고령법관의 수만큼 연방법관 정원을 늘리는 법원재편법안(court packing bill)을 1937년 2월 5일 의회에 제출한다.

법원재편법안이 통과되면 루스벨트는 무려 6인의 대법관과 44명의 연방판사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신규 임명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연방대법원이 루스벨트의 개혁 법안을 무효화할 가능성도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야심찬 법안은 루스벨트에게 불명예와 상처만 남기고 곧바로 폐기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론 주도층 사이에서 반대와 조롱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민주당 성향의 진보적 대법관들도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루스벨트의 법원재편법안은 지금도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침해 시도의 하나로 회자된다. 루스벨트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은 셈이다.

계엄 아래서도 '코드 배당', '코드 배제'는 절대금기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입법과 행정 조치는 심지어 비상계엄 상황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비상 사태라고 해도 계엄정부가 제멋대로 법원 조직을 뒤흔들고 재판부를 재구성하는 따위의 일은 금지된다는 것이 확립된 비상 사태 통제법리의 일부다. 그나마 이와 같은 법적 제약마저 없으면 모든 쿠데타 정부는 평소 미운털이 박힌 법관들을 마구잡이로 해임하거나 주요 재판에서 배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특정 판사에 대한 '코드 배당'과 특정 판사에 대한 '코드 배제'는 이처럼 계엄통치 아래서도 금지되는 사법 세계의 절대금기다.

사실 분쟁 당사자 간에 사생결단으로 싸우다가도 법관의 판결이 나는 순간 그것을 고분고분 따르는 걸 당연시하게 만드는 재판 제도의 위대한 마술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한시도 유지될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이 법관의 판결만은 신주단지 모시듯 일단 받아들이는 이유도 법관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재판할 것이라는 헌법상의 보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특정 법관에게 특정 사건을 특별히 배당하는 '코드 배당'과 특정사건에서 특정 법관을 특별히 배제하는 '코드 배제'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공적 신뢰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 신뢰를 좀먹는 최악의 사법 파괴 행위이자 국기 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삼성 재판과 촛불 재판에서 대법원과 중앙지법이 이러한 절대금기를 정면으로 위배한 사실이 지난 2월 말부터 언론의 집중 취재를 통해 드러남으로써 전례 없는 사법 파동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미 법원행정처 진상 조사단이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을 위시하여 관련 판사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돌입했을 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신대법관의 용퇴촉구 등 자성과 자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탓에 모두들 현 사태가 과연 제5차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것인지를 예의주시 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봄·여름의 촛불 시위 관련 사건을 처음에는 특정 성향의 판사에게 몰아주었으나 소장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자 서둘러 전자배당 방식으로 바꿨다. 그 후 박재영 판사의 야간 집회 금지 위헌심판 제청으로 촛불 사건 담당 판사들이 동요하자 당시 법원장이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 위헌심판 결과를 기다릴 것 없이 야간 집회 금지 법규에 따라 촛불 재판을 계속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 '촛불 재판 개입 스캔들'의 요체다.

▲ "지난해부터 이어진 촛불 집회 관련 재판은 촛불 정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대법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 사태가 과연 제5차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것인지를 예의주시 중이다." ⓒ뉴시스

야간 집회 금지 위헌심판 제청이 낳은 파장

지난해 8월부터 촛불 집회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검찰과 경찰은 본격적인 처벌 국면에 돌입한다. 촛불 시위 참가자에 대한 법원의 구속여부와 처벌강도는 따라서 촛불 집회의 정당성 및 지속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범죄 혐의와 적용 형량만 놓고 보면 단독판사가 처리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사건들이지만 촛불 정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던 것이다.

문제는 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작년 10월 9일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면서부터 발생한다. 박재영 판사의 위헌심판 제청은 중앙지법은 물론 전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촛불 형사 재판 모두를 중단시킬 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형사법규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이 있으면 문제 조항의 적용 여부가 걸려있는 동종 사건들의 재판부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판결 때까지 사안 심리를 중단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종 사건에 대한 심리 계속이나 문제 조항에 따른 판결 선고를 금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경우 헌재의 위헌 판결로 문제 조항이 무효가 되면 재심 청구 등으로 사태가 복잡하게 꼬인다. 따라서 어지간히 배포가 좋은 판사들이 아니면 일단 재판 진행을 중단하고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 조항에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고 판단하는 판사들은 그 때문에 구속된 피고인을 과감하게 보석으로 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 관행에 따라 대부분의 판사들이 촛불 재판의 진행을 중단하게 되면 촛불 집회 시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헌재 결정 시점까지 불가능해진다. 더불어 '촛불' 형사 처벌을 통한 위하(威嚇) 및 예방 효과도 사라질 판이었다. 믈론 이러한 상황 전개는 당시 촛불 국면의 조기 진화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올인하던 1년차 이명박 정권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대외비도 모자라 '대내비' 강조한 법원장의 이메일

당시 중앙지법원장의 이메일 내용은 이런 특수 상황을 배경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법원장의 거듭된 메시지는 위헌심판 제청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중단하지 말고 현행법(야간 집회 금지조항)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라는 것. 법원장의 이런 이메일 지침은 조금만 뜯어보면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문제투성이다.

내용적으로는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할 위헌심판 제청에 따른 재판 중단 여부에 대해 간섭한 것이다. 더욱이 법원장은 대법원장도 같은 의견임을 강조했다. 마지막 이메일에서는 2월의 정기 인사 이동을 상기시키면서 그 전까지 사건 처리를 마쳐서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달라고 호소했다. 심지어 구속 사건이 아닌 이상 현행법(야간 집회 금지조항)에 따라 유죄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 내외부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

형식적으로는 친전 이메일의 '대내외비' 요구가 걸린다. 기자들이나 국민들에게 대외비로 하자는 뜻까지는 알겠는데 '대내비'는 다소 엉뚱하고 낯설다. 취지는 물론 중앙지법의 다른 판사들, 특히 똑같은 이메일을 받았을 동료 단독판사들한테도 비밀로 해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동료 단독판사들과도 법원장의 '밀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는 것.

만약 '현행법'에 따른 조속 처리 당부가 법원장의 공식적이고 떳떳한 사법행정 권한의 범주에 속하는 사항이라면 대내비는 물론 대외비를 신신당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법원장의 뜻이 헌재를 포함한 법원 내외부의 일치된 의견, 특히 대법원장의 의견과 같다면 그 방침을 정정당당하게 공표하면 될 일이었다.

대법원의 스캔들은 삼성 재판으로 이어진다

중앙지법원장의 촛불 사건 개입과 본질적인 성격에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난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특정 대법관 코드 배제다. 대법원장은 삼성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고집하며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한 특정 대법관을 향후 심의 과정에서 눈 딱 감고 배제함으로써 전례 없는 코드 배제의 주인공이 됐다. 다시 한 번 삼성 사건에 걸려 넘어진 셈이다.

삼성 재판에 관한 배당 관련 스캔들은 대법원의 재배당 스캔들이 처음이 아니다. 심각한 코드 배당 의혹이 삼성특검사건에 대한 중앙지법의 1심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었다. 요체는 사안의 성격상 형사24부나 25부로 가야 마땅한 경제범죄 사건이 이례적으로 형사23부에 배당됐다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형사23부 민병훈 부장판사는 에버랜드의 저가 발행은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법리적 소신을 삼성 사건을 맡기 1년 전에 중앙지법 기자실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삼성 사안이 민 부장에게 돌아간 것은 결국 민 부장의 배임 무죄 소신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1심 판결 후에 불거진 코드 배당 의혹의 요지였다.

물론 이러한 의혹은 사실이더라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검찰이 '미네르바'나 <PD수첩> 사건을 수사하듯 저인망식으로 철저하게 수사한다면 특별히 밝혀내는 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기자실에서 공공연하게 거론할 정도로 법리적 확신이 강한 민 부장판사가 각종 모임에서 거침없이 소신을 피력했을 것이고 이를 들은 주변 인사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만에 하나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민병훈 부장판사가 그런 법리적 소신이 있는 사람인줄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1심 공판을 몇 번 방청하면서 민 부장판사의 당당하고 모범적인 재판 진행 방식에 매료돼 재판 결과를 낙관한 편이었다. 만약 중앙지법원장이 민 부장판사의 무죄 소신을 직간접적으로 인지한 상태에서 형사23부에 특별 배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필자를 포함한 방청인들은 이미 결론이 나있는 재판 아닌 요식행위를 구경하며 공연히 마음 졸인 셈이다.

만약 이런 배당 의혹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무슨 정의가 있겠는가. 설령 민 부장판사의 법리 이해가 내용적으로 정확한 것이라 해도 특정 결론을 미리 낸 코드 판사에 대한 특별 배당은, 정의는 행할 뿐 아니라 보여줘야 한다는 저 오래된 법언에 위배된다. 게다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희 회장 등 피고인들과 변호인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일반 국민만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지방법원장에게도 알려진 담당 재판부의 오랜 소신을 관련정보 수집에 혈안이 됐을 삼성측 정보 안테나가 놓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 "중앙지법원장의 촛불 사건 개입과 본질적인 성격에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난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특정 대법관 배제 행위다." 법원을 나서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 ⓒ뉴시스

이용훈 대법원장이 주도한 사법 스캔들

이제 와서 굳이 삼성특검사안에 대한 1심 배당 의혹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준)사법 절차에서는 사건이 누구에게 배당되는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당연히 사건 배당을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공식절차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이목이 쏠린 중대사안의 배당 권한을 특정결론을 유도하거나 특정인을 봐주기 위해서 법원장이 남용하기 시작하면 사법부는 머지않아 제 무덤을 파게 된다. 임의배당권의 폐지 등 배당권의 자의적 행사 방지장치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향후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0순위 사법개혁이다.

대법원의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코드 배제 스캔들은 하급심에서 발생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법 스캔들이 대법원에서, 그것도 삼성 재판과 관련하여, 더욱이 대법원장의 주도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각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재판부 3개의 인적 구성을 대폭 변경한다. 부의 재구성 혹은 인적 구성 변경은 대법관의 퇴임이나 신규 임명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에 불가피하게 인정된다. 재판부의 구성원이 바뀌면 계류 중인 사건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의해 확인된 재배당 관련 경위와 의혹은 이렇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에버랜드 저가 발행 배임 사건에서 허태학 피고인 등 삼성측의 1심 변호인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이 2심을 거쳐 대법원에 올라오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변호인으로서 에버랜드 사건에서 배임무죄 주장을 폈던 대법원장은 에버랜드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되면 사건 심리 자체를 회피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대법원장이 자신의 전력으로 말미암아 중대 사안의 재판에서 빠지는 사법 사상 최초의 진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태학 피고인의 에버랜드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2부는 이미 여러 차례 합의 과정을 거쳤으나 그 중 대법관 1인이 소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지난 1월 중에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주심대법관은 무슨 이유에선가 한 달 이상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꾸물거리는 사이 대법원장이 재판부 재구성을 단행했는데 공교롭게도 소수 의견을 고집한 특정 대법관을 배제한 채 삼성 사안을 새로 구성된 두 개의 부에 새로 배당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말의 언론 보도는 삼성 사안과 에버랜드 사안을 담당한 1, 2부 소속 대법관 총8인이 모여서 몇 차례의 합의 과정을 거쳤는데 1인을 제외한 나머지 7인의 대법관은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대법관이 빠진 현재의 삼성 재판부는 8대0으로 의견 일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이때 삼성 사건은 전원합의부에 갈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의 전력 때문에 삼성 사건을 회피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문제의 대법관은 삼성 사안에 대해 소수 의견권을 개진할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눈 딱 감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선택

이제 이용훈 대법원장의 삼성 사건 재배당 스캔들의 핵심에 도달했다. 대법원장의 지난 18일자 부 변경권 행사의 백미는 삼성 사안에 대해 소수 의견을 가진 특정 대법관을 삼성 사안 심리에서 밀어낸 데 있다. 에버랜드사건을 심의한 대법원 제2부의 합의결렬사실 및 이 과정에서 특정 대법관의 역할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법원 내부의 공지의 사실. 특히 부 구성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 삼성 사안과 같이 중대한 사안의 합의 진행 상황을 몰랐을 리는 없다. 부 변경권 행사로 인한 재판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주요사건의 합의 진행 상황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용훈 대법원장은 코드 배제를 결정할 때 최소한 다음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첫째, 특정 대법관의 소수 의견으로 말미암아 에버랜드사안을 심의한 2부에서 의견 불일치가 계속된 사실, 둘째, 그 결과 2부에서 전원합의부 회부를 결정한 사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사안의 주심대법관이 전원합의부 회부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 넷째, 1부에서 다룬 삼성 사안에 대해서도 합의 과정이 끝났다는 사실, 다섯째, 만약 이런 상태에서 부 구성을 변경하면 실질적으로 합의 과정이 종료된 두 개의 삼성 사안을 모두 처음부터 새로 심리해야 한다는 사실, 여섯째, 이것이 쓸데없는 심의 중복과 결정 지연을 초래하고 특검법의 위반 상태를 장기화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고 불신을 받지 않으려면, 당연히 비서실장을 주심대법관에게 보내서 부 변경 예정일까지 전원합의부 회부 결정 이행을 당부했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전원합의부에 삼성 사건이 오게 되면 막상 재판장인 자신은 재판을 회피해야 한다는 점. 여기서 대법원장은 일대 딜레마에 빠진다. 이미 결론이 난대로 전원합의부에 회부한 후 당당하게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의 대법관을 배제하고 새 부를 구성한 후 그래도 합의가 안 되는지를 지켜볼 것인가. 햄릿의 고민이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대법원장의 선택은 눈 딱 감고 문제의 대법관을 삼성 사건 재판부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사법폭거 자행한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이런 자기중심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용훈 대법원장은 첫째, 자신의 전력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부 심리 사건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둘째, 이런 부담 때문에 삼성 사건이 전원합의부로 넘어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 셋째, 삼성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부 회부를 강제한 특정 대법관을 향후 논의 과정에서 배제하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이런 소망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어떤 면에서 대법원장의 속 보이는 행태보다 더욱 절망스러운 건 이번 부 변경 사태의 전말과 함의를 뻔히 알면서도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대법원장의 불법과 전횡을 눈감아주고 있는 대다수 대법관들의 비겁함이다. 특히 삼성 사건을 다뤘던 1부와 2부 소속 대법관들은 주심 대법관의 직무유기 책임을 준엄히 물으며 늦게라도 삼성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를 촉구했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합의 과정이 다 끝난 삼성 사안을 새로 구성된 재판부에 다시 맡겨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7대1을 8대0으로 바꿔서 전원합의체 회부를 막는 것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법원장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동료 대법관에 대한 배제와 모욕을 수수방관하는 셈 아닌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본인의 권위를 위해서는 물론 사법부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삼성 사안을 더욱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혹시 모를 세간의 의혹과 우려를 말끔히 불식해야 할 엄중한 책무가 있다. 대법원장이 이렇게 행동해야만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삼성 재판의 결과를 국민들이 승복할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이 대법원장은 삼성 사건 처리 과정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결단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사법권력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각각 연루된 역사적 재판에서 법과 양심에만 따라서 재판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코드배당'과 '코드배제'로 특징지을 수 있는 촛불재판과 삼성재판의 변칙 진행은 승진이나 체면 따위의 사익추구를 위해 서슴없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사법부 수뇌부의 부끄러운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국민의 속마음에는, 촛불과 삼성 사건처럼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사건에서도 공정한 절차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건에서는 오죽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있다. 망국적인 사법 불신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과 삼성관련 재판 스캔들이 동시에 불거져 나온 현 국면은 후진적 법관 인사제도가 뿌리내린 한국적 사법 관료제의 폐단을 혁파할 다시없이 좋은 기회다. 만약 사법부가 철저한 자성과 발본적 개혁을 통해 만연한 사법불신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를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허무의 늪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수뇌부의 추태가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이 '코드 사법'을 바로잡고 사법정의를 바로 세울 최적의 기회다. 이를 위해 촛불재판 스캔들을 넘어 삼성재판 스캔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성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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