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미디어법 상정으로 촉발된 국회 파행은 결국 곳곳의 충돌로 번졌다. 휴일을 빼면 사실상 회기가 이틀 남은 가운데 '2차 입법전쟁'이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27일 점심시간을 틈타 국회 본청의 주요 출입문이 봉쇄되자 2시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규탄집회를 하려던 민주당 관계자들이 본청 진입을 시도하다 본청 정문 출입문이 파손되기도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정세균 대표가 잠시 출입을 제지당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본회의장 앞에서 열린 규탄집회에서 정 대표는 "민주정부 10년 간 대한민국 의회주의는 꽃을 피웠는데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주문하고 형님이 독려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하수인이 됐는데, 그 하수인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게 국회의장이냐"고 이상득 의원과 김형오 국회의장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은 소속의원 전원 명의의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와 국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의회쿠데타의 주범과 하수인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MB악법 날치기 처리를 온몸으로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영민 대변인은 "대통령 형제의 지시에 꼭두각시 춤을 추는 한나라당은 말로는 대화를 하면서 합의문도 부정하고 국회문도 닫아걸고 있다"며 "면전에서는 평화와 타협을 얘기하면서 등 뒤로는 비수를 갈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긴급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을 독려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에 미디어법을 포함한 쟁점법안에 대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이라도 요구해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며 "만약 이번에 매듭을 못 풀면 4월 국회에서도 인질이 되고 1년 내내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홍 원내대표는 "이번에도 다시 폭력으로 국회를 얼룩지게 하면 우리도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한마음이 돼서 2월 국회를 돌파할 수 있도록 집결해달라"며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박희태 대표도 "이젠 돌파가 필요한 때"라며 "사즉생의 각오로 지금 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세했다. 그는 "계속 밀면 아무리 강한 벽이라도 뚫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한나라당도 김형오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강하게 압박하며 물러설 태세가 아니어서 2월국회는 물리적 충돌 코스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돌파구 못 찾으면 충돌로 이어질 듯
다만 일시적 휴지기인 주말과 휴일을 거치며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관심사다.
노영민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위의장과 수석부대표들의 협상을 통해 쟁점 법안의 처리 시기와 방법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상당한 의견 접근을 봤는데 문방위 날치기 시도로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최대 쟁점인 미디어 관련법의 경우 이미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국회 내에 두기로 민주당이 제안했기 때문에 기구를 소위원회로 할 것인지, 특별위원회로 할 것인지 등 구체적 협상이 진행할 정도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경우 문안 수정 작업까지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MB악법'으로 분류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등도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낮추는 등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나라당은 법안 처리의 속도를 내고 싶어 했으나 민주당이 '4월 국회 처리'를 주장하며 법안소위 회부 등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어서 티격태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방위 직권상정 사태' 이후 민주당에선 기존의 협상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화 테이블이 새롭게 마련되더라도 기존 협상의 연장선으로 원점 회귀하기에는 국면이 달라졌다는 것.
한나라당도 당장은 대화를 통한 모색보다는 강행처리 쪽으로 무게추가 한참 기울어져 있다.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대비해 쟁점 법안들에 대한 수정안 마련을 지시해둔 상태.
특히 관건인 미디어 관련법의 경우,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대기업 지분제한을 기존의 20%에서 10%로 낮추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방안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어 한나라당의 수정안이 제출되더라도 직권상정의 부담을 덜기 위한 면피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어떤 식으로건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처리하면 18대 국회는 끝"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결국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2월 국회 파행은 물론이고 상당기간 정국 경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내에 '타협론'이 설 자리를 잃었고 김형오 국회의장마저 직권상정으로 가는 수순밟기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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