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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기억의 덫에 걸린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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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기억의 덫에 걸린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MB정부 1년, 평가와 전망]<11> MB정부, 과거로부터 벗어나라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1년(2월25일)에 즈음하여 연속기획 '이명박 정부의 1년 평가와 2년 전망'을 마련했습니다. 12회에 걸쳐 이명박 정부의 국정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전망하려는 이 기획의 11번째 글로 박순성 동국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연재순서

1. 기대와 환멸의 이명박 정부 1년 (바로가기)

2. 실용적 리더십의 그늘 (바로가기)

3. 섬기는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가기)

4. 한국경제의 역주행 1년 (바로가기)

5.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혼돈에 휩싸인 노동정책 (바로가기)

6. 대외경제정책과 지역주의 기조의 실종 (바로가기)

7. 복지위기에서 사회위기로 (바로가기)

8. 탐욕의 제도화와 교육의 계급(층)화 (바로가기)

9. 토건국가의 덫에 빠진 이명박 정부 (바로가기)

10. 풀 것은 막고 막을 것은 푼 언론정책 (바로가기)

11. 냉전 기억의 덫에 걸린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2월25일)

12. 총괄 좌담 (바로가기)

1. 되돌아간 남북관계, '잃어버린 10년'을 뛰어넘다

남북관계의 악화, 한반도의 긴장 고조, 외교의 실종. 이명박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1년 정책 결과를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는 현재의 상황이다. 물론 통일·외교·안보 분야는 정책의 직접적 상대가 있다는 점에서 모든 성과나 실패를 어느 한편의 공과로 완전히 돌릴 수만은 없지만, '상생·공영의 대북정책'과 '실용주의 외교'를 정책기조로 내건 정부이기에 1년의 성적표가 너무 초라할 뿐만 아니라 전혀 뜻밖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정부가 내놓는 국정구상이나 정책홍보의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다소 거친 표현도 등장하는 선거전이나 정치시장에서 유통되었던 구호들을 살펴보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이 즐겨 내세웠던 '잃어버린 10년', '북한에 끌려 다닌 남북관계', '대북 퍼주기' 등의 표현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되새겨보면, 이명박 정부가 받은 성적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아니, 그냥 이렇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10년 전이 아니라 1970년대로 되돌아왔다. 남한의 대북정책에 맞춰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남정책도 고스란히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당연히 한반도 정세는 냉전시대의 모습을 띠고, 남한 내부의 정치·사회 분위기도 반공주의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정책목표의 초과 달성. 당연히 이제는 새로운 정책을 펴야할 때이다. 그러나 아직도 더 기다리겠다는 대통령과 참모들, 정책책임자들의 끈기, 아니 '배고픔'에는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잃어버린 10년'의 후유증으로 보아야겠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직전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에는 깊은 탄식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선제공격, 보복공격 등이 대북군사행동의 중심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외교가 아닌 무력에 기반을 둔 안보가 대북정책의 핵심 목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준다.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한 조롱은 공허하고, 위험한 현실은 우리에게 진지한 태도를 요구한다.

지난 10 년 동안 남한 사회에서는 두 가지 의식이 형성되었다. 하나는 두 번의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이 가져다준 전쟁 공포로부터의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위기와 남한의 대북 지원에 따른 남한 우위의 세력불균형에 대한 확신이다. 바로 이 두 의식의 결합은 역설적으로 무력충돌의 가능성과 위험성, 무엇보다도 통제할 수 없는 무력충돌의 확산 메커니즘에 대한 경각심을 무디게 만들었다. 사회의식은 빠르게 개인들의 무의식이 되고,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군사중심의 안보논리, 전쟁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우리에게 몰아닥친, 앞으로 더 심각하게 진행될 경제위기는 우리의 시야를 더욱 좁히고 절망적 돌파구에 눈을 돌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누가 경적을 울릴 것인가?
▲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장관 ⓒ연합뉴스

2. 복원된 한미동맹, 방향을 잃어버리다

위기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정책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복원된 한미동맹'이라는 정책의 성과도 기대와 달리 이명박 정부가 이미 부딪쳤으며 앞으로도 부딪쳐야만 할 대외정책의 딜레마를 보여줄 뿐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한미동맹은 복원되어야만 할 상태에 있었는가?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정책연구에서 많이 제기되었던 반미감정, 반한감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러한 감정의 존재 때문에, 한미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 위기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의 기지이전 협상 완료와 전략적 유연성 인정, 한미FTA 추진 등은 한미동맹이 외양적 불안정과 달리 '잃어버린 10년'동안 내용적으로는 한 단계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의 기본 노선에 대한 진보·개혁 진영의 비판도 제기되었다.

만일 한미동맹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면, 한미동맹의 복원은 어느 시점을, 또는 어떤 상태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가? 한미동맹은 결코 혈맹이라는 말에 걸맞은 탄생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공세적 대미정책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낸 이승만 정권의 멸공통일정책은 주한미군에게 이중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직면했던 미국의 대한정책은 남한의 최고지도자에게 끊임없이 외교적 과제를 던졌다. 사실 한미관계에서 가장 협력적이었고 생산적이었던 시기는 김대중 정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한미동맹의 복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대외정책의 기본 목표는 한미관계의 복원 또는 강화라는 의미보다는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를 한미동맹의 논리에 맞춘다는 의미가 더 강하였다. 한미동맹의 복원이란 남한의 대외정책이, 대북정책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따라 결정되고 집행되어야만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대외정책의 기조 변화는 냉전시대에 대한 잘못된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 남한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반발과 부시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에 대한 지지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구호는 사실 기묘한 역사의 산물이다. 세계사적으로 불행했던 9·11테러-반테러전쟁 시기에 남한에서는 50년간 유지되었던 냉전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위협을 받던 남한 사회의 냉전의식은 부시 정부의 근본주의와 결합하면서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구호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복원하려고 하였다. 냉전의식에 바탕을 둔 대북적대정책, 근본주의와 군사주의가 결합된 미국의 특정한 외교노선의 추종, 그리고 이 둘을 결합시키는 한미동맹과 국제질서에 대한 독특한 관념, 바로 이것이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이름에 담겨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 노선인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남한 대통령의 방문 시기에 맞춰 한미동맹을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했을 때, 외교적 결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전달하고 싶었던 중국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대외정책의 고민은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정책기조가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바뀌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부시 정부 2기부터 시작된 '외교의 시대'는 마침내 9·19공동성명을 가져왔고,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2·13합의와 10·3합의에 따른 북한과 미국 사이의 상호조치들이 진행되었다. 2008년 북·미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도 조금씩 수정되어야만 했다. 오바마 정부의 등장을 앞두고 9·19공동성명의 2단계 과정이 마무리되지 못하였지만,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협상 실패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남한 정부의 역할이었다. 남한 정부는 북·미 관계의 빠른 진전을 막기 위해 부시 정부에게 대북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고, 이는 자연히 남북관계의 악화를 가져왔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이명박 정부에게 더욱 큰 어려움을 안겨 주고 있다. '부시 이전, 부시 이후'를 강조하면서,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남한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내지는 무시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 국무부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관계 개선 및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추진해 나갈 수도 있음을 밝힘에 따라 남한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합의되어 있는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부정적 태도는 한미동맹을 빠른 시간 안에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무현-이명박 플랜'의 실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3. 과거로부터 벗어나라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 남한 사회를 뒤흔든 최대 사건이 촛불시위라고 한다면, 현 정부의 위기는 대외정책의 실패, 더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 복원에 사로잡힌 정책 판단의 착오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변화된 국민 의식과 대외관계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정부는 어떻게 국민들이 반미구호 하나 없이도 한미관계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현상을 고쳐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남한 국민들은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먼저 동맹국으로부터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국민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대외정책의 물적 기반은 단순히 정치·경제·군사 차원의 힘에 있지 않다. 유행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외교, 법률, 문화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소프트파워는 대외정책의 실질적 힘이 된다. 현재 남한의 대외정책에서 실질적으로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외관계에서 한미동맹이 남한의 핵심적인 외교·안보 자산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남한과 중국 사이의 경제관계가 깊어지고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면서, 한미동맹은 안보·군사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한편으로는 남한 대외정책의 '자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교·안보 자산에 대한 복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마치 남북관계의 발전이, 한중관계의 발전이 한편으로는 남한 정부의 외교적 힘이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외교적 과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미동맹도 이제는 이명박 정부가 믿고 싶어 하듯이 단순한 혈맹이 아니다. 비록 남한과 미국 사이에 국력의 차이가 존재하고 미국이 세계최강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한미동맹에서도 복잡한 동맹의 정치가 작동한다. 더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끝날 때 국제질서의 기본 구조가, 동북아의 세력질서가 어떻게 바뀌어있을지를, 나아가 동북아에서 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

오히려 대외정책의 힘은 내부로부터, 민주적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이것이 대외정책과 관련한 촛불의 교훈이다. 때로 시민사회의 대중은 정부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혼란, 인식의 장애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민주적 소통은 혼란과 장애를 제거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대외정책에서 과거의 기억에 집착할 때, 우리가 그동안 애써 쌓아온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전받은 민주주의의 거센 파도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이제 이명박 정부가 변화된 현실과 타협할 때가 되었다. 이 정부는 실용주의 정부가 아니던가?

※ 이명박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더 구체적 평가로는 정세현,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한다 - 되돌아본 남북관계 1년(바로가기)"(2008. 12. 22),

이남주, "네오콘 유령에 발목 잡힌 외교통일정책"(바로가기), 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25-6(2009. 2. 2), 홍현익,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평가, 전망 및 대책"(바로가기), 민주주의연구소 외, <이명박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2009. 2. 18) 발표 논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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