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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제도화와 교육의 계급(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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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제도화와 교육의 계급(층)화

[MB정부 1년, 평가와 전망]<8> 공교육의 붕괴와 시장만능론의 강화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1년(2월25일)에 즈음하여 연속기획 '이명박 정부의 1년 평가와 2년 전망'을 마련했습니다. 12회에 걸쳐 이명박 정부의 국정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전망하려는 이 기획의 여덟 번째 글로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연재순서

1. 기대와 환멸의 이명박 정부 1년 (바로가기)

2. 실용적 리더십의 그늘 (바로가기)

3. 섬기는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가기)

4. 한국경제의 역주행 1년 (바로가기)

5.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혼돈에 휩싸인 노동정책 (바로가기)

6. 대외경제정책과 지역주의 기조의 실종 (바로가기)

7. 복지위기에서 사회위기로 (바로가기)



8. 탐욕의 제도화와 교육의 계급(층)화 (2월19일)

9. 환경정책 (2월20일)

10. 언론정책 (2월 23일)

11. 대미/남북관계 (2월24일)

12. 총괄 좌담 (2월25일)


이명박 정부 1년의 교육정책은 '탐욕의 제도화' 과정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사회적 강자들의 무절제한 욕망을 배타적으로 반영한 교육정책이 속속 도입되어 왔기 때문이다. 학교와 대학을 통해 세대 간에 안정적인 계급(층) 재생산이 가능한 조건을 마련하라는 부자들의 요구가 거침없이 관철되고 있다.

공교육재정을 감축하라고 정부를 압박해온 기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필요한 의식의 재생산에 학교와 대학이 무한 복무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명품유치원, 사립초등학교,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세칭 명문대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야단법석을 떨며 과실 챙기기에 바쁘다. 사정이 이럴진대 사교육시장의 창궐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부자 교육과 가난한 교육의 구분 강화

당파성이 강한 교육정책으로 인해 교육의 계급(층)화가 한층 격화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부자와 기업 그리고 서열의 꼭대기에 위치한 학교와 대학 일변도의 교육정책이 우리 교육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뜻이다. 부자 교육과 가난한 교육이 확연히 구분되어 하루가 다르게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세상으로 빠져든다.

학교와 대학이 '기회의 땅'이길 포기한 이상 사회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인간교육 등 교육 본연의 가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냉소 역시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오죽하면 중·고생들이 "미친 교육"이라고 성토하고 나설 정도였겠는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이 채 못 된 시점의 일로 이들의 통렬한 비판의 근거가 무엇인지 차분히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 ⓒ연합뉴스
먼저 '대입 3단계 자율화' 조치다. 이 정책은 정부 출범 직후 공론화 과정 없이 전격 도입되었다. 고교등급제 허용과 사실상의 본고사 부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조치를 '자율화'라는 미명 하에 강행한 것이다.

왜 그랬던 걸까? 평준화 폐지론자들이 보기에 고교등급제 금지 원칙은 어떻게 해서든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 조치가 존속하는 한, 자사고와 특목고(국제고 포함) 그리고 부유층 거주지역의 공립학교 등 말 그대로 부자학교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신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자사고보다 더 고삐를 풀어놓은 자율형 사립고 등을 도입하겠다고 천명한 게 바로 이명박 정부다. 때문에 집권 초기 힘 있을 때 한껏 밀어붙여 계층 차별적인 학교정책 추진을 위한 여건 조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찍이 논술을 빙자하여 사실상의 본고사를 실시해온 세칭 '명문대' 내지 '주요 대학'들의 행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대학들의 관심사는 일찌감치 점수 높은 아이들을 뽑는 데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높은 점수에 더하여 가정 배경이 좋은 아이들을 마음대로 골라 뽑아야겠다는 것이다.

시장적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관철되는 교육 조건에서 그것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다. 높은 점수로 자기 대학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사회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될 배경이 든든한 아이들이 고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욕심을 채워줄 장치로 고안된 것이 바로 '통합논술'이었는데,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그런 편법을 '내신과 수능의 변별력 없음'으로 정당화하였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의 문제점

다음으로 '4.15 학교 자율화' 조치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정책에서 '자율화(성)'이란 말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가히 '자율화(성) 전성시대'라고나 해야 할 것인데, 그 알맹이가 공교육 시장화(marketizing)라는 사실을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지방교육행정의 내실화다. 이 조치로 시·도교육청에 자율권을 대폭 이양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의 목표는 전혀 다른데 있다. 보통교육 단계에서 국가가 떠맡았던 재정 책임을 지방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한편, 자율형 사립고와 같은 부자학교를 교육감 판단만으로 인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려는 것이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의 두 번째 의제는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 도입 계획에서 보듯 계층 대응적인 학교서열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중을 구태여 숨기지 않고 있다.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를 도입함으로써 학교를 입시에 완전히 종속시키겠다는 발상도 노골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학교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4.15 학교 자율화' 조치와 '대입 3단계 자율화' 조치가 서로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자율형 사립고 등을 원활하게 도입하자면, 고교등급제 금지 등의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추론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4.15 학교자율화 조치'의 세 번째 품목이 바로 '대입 3단계 자율화' 조치다.

이렇게 해서 부자들의 탐욕과 그것을 충족시키는데 관여해온 학교와 대학의 무절제한 욕망을 반영한 정책의 골격이 마련되었다. 외고출신자 특혜로 표현되는 고려대의 입시 파행은 탐욕의 제도화가 교육현장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가늠케 해주는 일종의 시금석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청와대, 교육과학기술부, 서울시가 공조하여 국제중 설립을 강행하였다. 학교서열화 정책을 중학교 단계까지 확장하여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부자들의 학교계통을 완성시켜야겠다는 구상이다. 뒤에 다시 언급하고 있지만, 일제고사를 부활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학교 서열화를 촉진시킬 기제를 확보하자는 것도 현 정부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다. 역사교과서 수정 지시는 학교와 대학이 사회적 강자의 세계관에 따라 학생들의 의식을 재생산해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의 연장선상에서 취해진 조치다.

교육정책의 계급적 성격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다른 무엇보다 정치적 지지층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분명한 목적에서 마련된 것이다. 당파성이 강한 교육정책으로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한편, 일부 중산층에게는 '부자들만의 리그'에 참여할 수 있고 또 승리할 수 있다고 부추겨 같은 패거리로 묶어둔다. 반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자율화(성)' 등의 가치나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습니다'와 같은 허황된 슬로건을 동원하여 계층 차별적인 정책의 본질을 은폐하는 식의 정치적 선동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획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장만능론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다. 그런 점에서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은 한,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이명박 정부가 교육계급(층)화 정책을 한껏 밀어붙일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개혁' 강박증에 시달려온 그들이다. 지난 1년간 우리 모두가 경험한 독단적이며 속전속결 식 정책 추진 행태는 이런 병증에서 나온 것이다. '문민정부' 시절 자신들이 입안한 시장만능론적 개혁 정책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좌절 내지 미진했다는 판단 하에 마침내 집권했으니 한껏 밀어붙여야겠다는 심사다.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상황이 되자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세칭 1급을 대상으로 일괄 사표를 강요하였다. 군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미친 교육"에 대한 중·고생들의 항의로 시작된 촛불정국으로 낙마했던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으로 전진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다. 향후 훨씬 '속도감' 있게 부자들만을 위한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앞에서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최근 불거져 나온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 조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낙오방지'(NCLB, No Child Left Behind) 정책에서 베껴온 것이다. 일제고사의 시험 성적을 공개하고, 일정 기간 뒤처진 학교에 대해 지원한 뒤 끝내 변화가 없으면 학교 폐쇄 등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남기 위한 학교 간 경쟁을 유발시키면, 자연스레 교육의 질이 향상될 거라는 게 이 정책의 골자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NCLB 정책의 전면 수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교육의 질 제고는 고사하고, 계층 및 인종간의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판단 때문이다. 파행적인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에 비(반)교육적인 행태를 만연시켰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참모들은 십수 년 전 영국과 미국에서 수입해온 낡은 정책 가설을 부여잡고 있다.

범민주진영의 대응 전략

이제 남는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교육의 계급(층)화를 격화시키는 현실에 대한 범민주진영의 대응이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소극적인 차원에서의 반대운동은 물론 적극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가능한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향후 정치일정과 관련하여 보다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 하나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2010년 6월로 예정되어 있는 지방 동시 선거에서 교육감 및 교육의원을 제대로 선출하는 일이다. 주민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범민주진영은 완패했다. 지방 정치-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교육 정치-행정이 "일당독재" 상태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탐욕의 제도화"를 통한 "교육의 계급(층)화" 기도를 막아내기 어렵다. 때문에 지금 당장 교육의제를 중심으로 한 광범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적어도 무언가를 준비한 상태에서 교육감 및 교육의원 선거를 맞이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자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명박 정부는 '항상 자기편일 것'이란 전제 하에 교육감에게 학교 설립권 등을 이관하였다. 그러나 범민주진영이 16개 시·도 가운데 적어도 서너 곳 많게는 여덟 곳 이상 교육감을 배출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도하는 "탐욕의 제도화" 기도를 무산 내지 교란시킬 수 있는 탄탄한 진지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16개 시·도에서 범민주진영의 교육의원이 대거 진출할 경우 이명박 정부와 교육정책을 놓고 생산적인 경합을 벌여나갈 수 있다. 많은 제약이 뒤따르겠지만, 교육감과 교육의원이란 성채를 활용하여 과연 어떤 교육정책이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에 필요한 동량(棟梁)을 육성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통합적 교육정책이 교육도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살찌우는 길이라는 점을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참모들이 낡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탐욕스러우면서 시대정신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모쪼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차게 준비하는 가운데 다가올 시간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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