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은 김상기 교수가 "사진 속 윤 의사가 구타를 당했는데 얼굴과 옷이 깨끗한 것은 (<아사히신문>이) 이 부분을 지웠기 때문"이라며 "해당 사진은 당시 격화된 반일 감정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핏자국을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내용을 오는 17일 여는 '매헌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이 신문을 보면, 김상기 교수는 문제의 사진을 또 다른 <아사히신문>의 사진(1932년 5월 1일자),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에 실린 다른 사진(1932년 4월 30일자)과 비교해서 이런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최초로 사진 조작 의혹을 제기한 강효백 경희대 교수(국제법무대학원)는 "가짜와 가짜를 비교해 내린 틀린 결론"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 <아사히신문> 1932년 5월 1일자 1면에 거사 후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 사진. 최근 <동아일보>는 충남대 김상기 교수의 주장을 근거로 이 사진이 "진짜"라고 보도했다. ⓒ프레시안 |
다음은 강효백 교수와의 일문일답.
- <동아일보>에서 충남대 김상기 교수의 주장을 인용해 "가짜 논란 일축" 보도를 내보냈다. 어떻게 보는가?
"한 마디로 웃음밖에 안 나온다. 가짜와 가짜를 비교해서 틀린 결론을 내려놓고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이런 함량 미달의 주장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의도가 궁금할 뿐이다. 1999년 내가 이런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 지금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이 직접 편지를 보내 '강 선생 덕에 윤 의사에 대한 오류가 바로잡혔다'고 말했었다.
- 가짜와 가짜를 비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김상기 교수가 문제의 사진과 비교한 사진은 두 장이다. 하나는 <아사히신문> 1932년 5월 1일자에 실린 또 다른 사진이다. <아사히신문>에서 윤봉길 의사 사진이라고 보도한 가짜 사진 두 장을 비교한 다음에 '한 사진에는 핏자국이 없으니 진짜가 맞다'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는 이 사진이 '중국에서 발행한 영자 신문'에 실린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진 설명을 보면 명백하게 일본 통신사 니혼뎀포(Nihon Dempo)로부터 공급받은 사진이라는 게 명시가 돼 있다. 문제의 사진을 또 다른 일본 언론의 가짜 사진과 비교해놓고 역시 엉뚱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 1932년 4월 30일자에 실린 사진. 이 사진 설명 하단에는 분명히 일본 통신사 니혼뎀포(Nihon Dempo)로부터 공급받은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프레시안 |
- 그럼, 무슨 사진과 비교해야 하나?
▲ 김구가 1932년 5월 10일 공개한 거사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태극기 앞에서 찍은 윤봉길의 사진. 성형외과 의사는 "<아사히신문>이 공개한 사진과 얼굴 윤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
- 사전 정황을 자세하게 묘사한 기사와 사진이 다른 것도 조작 의혹을 제기한 중요한 근거였다.
"그렇다. <프레시안>에서 자세히 보도를 했지만, 한 번 더 <상하이타임스> 1932년 4월 30일자를 살펴보자. 참고로 <상하이타임스>는 미국 신문으로 굳이 기사를 조작해가면서 반일 감정을 조장할 만한 이유가 없는 매체다.
(폭탄이 터진 후)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군중들 사이에 조선 사람 윤봉길이 있었다. 그는 군경들에 의해 구타당해 쓰러졌다. 주먹, 군화, 몽둥이가 그의 몸을 난타했다. 만일 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바로 그 조선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곧 그 회색 양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땅에 떨어졌다. 잠시 후 그 한국인은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의 몸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총검을 가진 군경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에 비상 경계선을 치고 군중들로부터 그를 차단했다. 군경들이 비상경계선 안에서 그를 감시하였다. 곧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 조선인은 (일본군에 의해) 머리와 다리가 들려 짐짝처럼 통째로 차 뒷좌석에 구겨 넣어졌다.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바로 이게 거사가 일어난 직후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전쟁 중인 당시 일본 군대의 대장, 중장은 총리, 총독과 같은 위상이었다. 이런 인물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 희생되었다. 일본 군대가 <아사히신문>에 보도한 것처럼 신사적으로 윤봉길 의사를 연행해 갔을까? 아니면 <상하이타임스>에 실린 것처럼 참혹하게 유린했을까?"
- 최근 강효백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2008년 6월 15일 <SBS 스페셜>에서 방송한 '윤봉길은 이렇게 총살됐다'의 취재 과정에서 <아사히신문> 고위 관계자가 했다는 증언이다. 그는 '(이 사진은) 우리도 의문이 가지만 왜 그것이 그렇게 표현이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계속 검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문제를 시인했다.
정작 이 사진을 보도한 <아사히신문>마저도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판에 왜 한국 정부(국가보훈처), 유족(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언론(<동아일보>)이 나서서 가짜 사진을 옹호하는지 그게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방계 유족이 나를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는데, 담당 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른 후 일본국 폭행에 의해 만신창이가 됐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굴해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고소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바로 이것이 당시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이 윤 의사의 사진을 조작한 이유이다. 만약 만신창이가 된 윤 의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면 아마 반일 감정이 횃불처럼 일어났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높여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일제 강점기 일본의 간악함을 인정하는 것도 모자라 홍보까지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 방금 언급한 이들이 굳이 문제의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가 맞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유족이 윤 의사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아주 오래 전 어릴 적 잠시 윤 의사를 접한 적밖에 없는 유족의 주관적 기억력과 당시의 신문 기사, 성형외과 의사의 얼굴 윤곽 비교 등을 놓고 봤을 때 뭐가 더 신뢰할 만한가? 유족이 인정했기 때문에 조작한 사진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문제의 사진을 진짜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전임 회장이었다. 이런 게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자마자 국가보훈처가 문제의 사진이 진짜라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이 논란은 그런 정치적 해석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논란이다. 가짜를 가짜라고 판단하면 그 뿐이다. '사실(fact)'에 근거해서 문제의 사진의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면 그 뿐이다. 다만 국가보훈처가 경솔하게 문제의 사진을 진짜라고 판정한 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다."
- 지난 10년간 이 논란을 계속 끌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교과서를 비롯한 오만 군데에 이 문제의 사진이 윤봉길 의사의 것이라고 실려 있었다. 일본이 조작한 가짜 사진이. 그걸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섰을 뿐이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다만 일본이 조작한 사진을 합리적인 증거에 의거해서 가짜라고 판단할 만한 상식을 갖고 있다. 우리 국민도 그런 상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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