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혹시나'가 '역시나'된 경찰청과 비정규노조 만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혹시나'가 '역시나'된 경찰청과 비정규노조 만남

고용직공무원노조 25일 경찰청 경무기획국장과 면담

"농성 72일째입니다. 단식했던 조합원은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고, 아이가 있는 조합원에게는 '엄마 언제 와'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옵니다. 경찰청이 하루빨리 우리의 절박함을 이해해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상경투쟁을 시작해 25일 현재 농성 72일째에 이른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최혜순) 한 조합원의 말이다.

노조는 줄기찬 경찰청장 면담 요구끝에 25일 오후 어렵사리 홍영기 치안감(경찰청 경무기획국장)과 만날 수 있었다. 비록 허준영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경찰청내 서열 3위이자 인사 관련 최고실무책임자인 경무기획국장이 면담에 나온다는 소식에 조합원들의 기대는 컸다.

***힘찬 발걸음으로 시작**

숙식장소인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를 뒤로 하고 50여명의 조합원 전원은 이날 정오 경찰청이 위치한 서대문으로 향했다. 지난달 2일부터 매일 오전11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하는 경찰청 인근 '결의대회'를 위해서가 아니였기에 발걸음이 남달랐다.

한 조합원은 "하루아침에 경찰청이 입장을 바꾸기야 하겠습니까"라며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기대감에 가득찬 표정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기대 때문인지 오후 1시 서대문 전철역 부근에서 진행된 '결의대회'는 여느 때보다 활기차고 목소리가 높았다.

집회가 30분가량 진행됐을 무렵, 김미숙 부위원장 등 노조 대표자 5인이 면담을 위해 조합원을 뒤로 하고 경찰청 청사로 향했다. 조합원들은 "면담 승리하고 오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힘찬 박수로 대표자들을 북돋았다. 기자도 대표자들과 동행했다.

***두달째 민노당 당사 생활, "민노당 당직자에게 미안할 따름이죠"**

경찰청 청사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들이 대표자 5인만 출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들어가기로 '약속'받았다는 공공연맹 곽노충 조직부장과 기자들의 출입은 '허락'받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청측 설명이었다. 경찰청은 "사진촬영도 힘들다"며 언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출입문 앞에서 10여분의 실랑이 끝에 대표자 이외 인원은 민원실에서 대기하기로 합의를 보고 대표자 5인들만 면담장소로 향했다. 기다리면서 함께 따라온 박미경 노조 법률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박 팀장은 지난해 강원도 춘천에서 올라왔다.

박 팀장은 먼저 두달째가 되는 민노당 당사 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이들은 지난해 12월31일 직권면직되기 전에는 자신들이 속한 각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에게 지속적인 감시와 추적을 받고 있어서 신변보호를 위해 12월 중순 경부터 민노당 당사를 거점농성장으로 삼고 있다.

박 팀장은 "집회 등 공식일정을 제외하고는 영상물을 시청하거나 율동을 배운다"며 "대부분 여성 조합원이다 보니 율동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즐거워 한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라고 말했다.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노동가요 '바위처럼'에 맞춘 기본 율동이 전부였던 이들은 벌써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율동이 대여섯가지는 된다고 자랑했다.

박 팀장은 또 농성이 장기화되자 민노당 당직자들에게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녁식사는 주로 만들어 먹는데, 김치냄새를 폴폴 낼 수밖에 없어 당직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 가득하다"며 "그래도 당직자들이 눈치는커녕 먹을거리를 자주 챙겨줘 조합원들이 무척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개선안 없이 시종일관 자기 입장만 설명**

예상보다 면담시간이 길어지자, 면담장 밖에서는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커져갔다. 면담 시작 2시간30분여만에 대표자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김미숙 부위원장에게 면담 결과를 물었다. 그는 "경무기획국장은 경찰청의 입장만 시종일관 설명했다"며 "기존 경찰청 방침에서 조금도 개선된 안을 내놓지 않아 입씨름만 오고갔다"며 허탈해 했다.

이들 전언에 따르면, 경찰청은 ▲9월 기능직 공개채용 시험에 응시할 경우 고용직 근무 경력을 참조하겠다 ▲ 경찰서 일용직 일자리 알선을 위해 노력하겠다 ▲사기업 구직시 돕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연초부터 경찰청이 제시했던 협상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일용직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 가고 싶은 경찰서를 골라봐라'는 경무기획국장의 말에 '국장님보고 순경하라고 하면 하시겠어요'라고 반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기능직 정원을 89명 확보하면서 직권면직된 87명 고용직 노동자들을 기능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경찰청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면담 결과를 들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허무함과 실망감이 가득했다. 늦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노상에서 결의대회를 2시간 넘게 가졌지만, 별무성과였기 때문이다.

곽노충 공공연맹 조직국장은 "경찰청이 입장을 고수하기로 한 만큼 더 이상 '예의'를 갖춘 투쟁과 항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청 문제를 총연맹 차원에서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총연맹이 대의원대회와 비정규 관련법 처리 저지 문제로 너무 정신이 없었다"며 "조만간 총연맹과 공공연맹이 함께 대책회의를 개최해 경찰청 전면 대응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노당사로 돌아가는 조합원들의 발걸음은 올 때와 달리 무거워 보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