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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월가와 美노동자 기대를 한몸에…오바마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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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월가와 美노동자 기대를 한몸에…오바마의 선택은?

[오바마 시대] 한미 FTA, 자동차·노동 등 재협상 가능성

예상대로 미국은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택했다. 오바마가 외친 '변화'의 바람이 8년 묵은 공화당 정책의 뿌리를 뒤흔들어달라는 뜻이다.

4일(현지시간) 오바마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면서 한·미관계도 새로운 바람을 타게 됐다. 다만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 와중에 양국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까지 걸린 경제분야가 특히 그렇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두 정권에 걸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한·미 FTA에서는 일정 수준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오바마가 힘주어 강조하는 자동차 무역 부문에서는 재협상 가능성도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노동·환경 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정부와 기업계의 적절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지점이다.

다만 경제위기의 진앙으로 꼽히는 금융부문 개혁에서는 오바마든 매케인이든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대세다.

·미 FTA 재협상 가능성 높아져

오바마가 중앙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한 일리노이주는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가 특히 공을 들인 지역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도 미국에서 두 번째로 완성차 생산 공장이 많은 지역이다. 자동차 노조의 표심을 잡지 않고서는 이 지역에서 이기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정치 기반을 다지고 표심을 얻기 위해 한·미 FTA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오바마 측 발언을 종합하면 실제로 오바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례로 오바마는 지난 달 15일 TV 토론회에 나와서까지 양국 자동차 무역 불균형 문제를 거론했다.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 정책을 맡은 프랭크 자누지 보좌관도 지난 달 25일 한·미 FTA에 문제가 많다며 "(한미 FTA 개정 요구는) 전술적이거나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다"는 의견을 보인 바 있다.

김종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미주 전문연구원은 "'레토릭(수사)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만 아니라고 본다. 자동차 부문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노동·환경 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도 재협상 후보군"이라며 "우리 이익을 어떻게 관철시킬지 대응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례도 있다.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시절부터 추진되던 멕시코와의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벌였다. 미국이 콜롬비아와 FTA를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아가 부시 정부 시절보다 더 강력한 무역보복조치가 행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최근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를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당장 클린턴 정부 시절 민주당은 80년대 말 대표적 무역보복조치인 슈퍼301조를 부활시켜 세 번이나 발동시킨 전례가 있다. 슈퍼301조는 무역을 통해 자국 산업에 피해가 온다고 미국이 판단할 경우 일방적으로 교역상대방에게 무역상 보복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치다.

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초강력 경제블록을 쌓는 식의 보호무역주의로까지 회귀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미 FTA가 완전히 파기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으리라는 뜻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오바마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이상 재협상이나 부속협정(side agreement) 재조정 등을 검토할 가능성은 높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그가 미국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시절로 되돌릴 가능성은 낮다. 재협상 요구는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재생에너지 산업 영향은?

오바마 당선으로 가장 큰 영향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오바마가 한·미 FTA 재협상까지 거론한 근본 이유가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무역수지 차이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자동차 무역에서) 양국 무역은 자유무역주의가 아니다"라는 극단적 발언까지 하기도 했다.

자동차 부문만 놓고 본다면 그의 말이 맞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미국산 자동차 수입량은 지난 해 6235대(전체 수입차의 11.7%)였다. 반면 미국에서 팔린 한국차는 현지 생산분을 포함해 76만대가 넘었다.

오바마의 이런 인식 때문에 대미 자동차 수출길이 더 좁아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오바마가 자동차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을 간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한국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수출기업이 조금 더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처럼 양국 자동차 부문의 불균형이 심한 까닭이 한국에서 강력한 관세정책을 펴서가 아니라 미국 자동차 품질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오바마도 뾰족한 수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오바마가 부시 정부가 GM 등 완성차 업체에 2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한 것처럼 추가 금융지원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FTA로 관세부문을 건드린다 하더라도 그 실효성은 미미한 만큼 미국 자동차 업체의 가격경쟁력 확보, 품질개선 등 다른 방안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오히려 재생에너지 부문 규제 강화가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 업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바마는 재생에너지, 청정연료개발 등 친환경 산업에서 미국의 새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정책의 핵심은 석유의존도를 줄여 미국의 '석유병'을 치유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성 증대도 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구 온난화 등 환경이슈 해결을 위해 다자간 협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김종혁 연구원은 "미국은 부시 정부 시절에도 한국의 판단 이상으로 녹색성장에 큰 관심을 기울인 나라다. 오바마 당선으로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며 "교토협정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경우 국내 자동차 업체는 고전할 수 있다. 국내 업체의 대체에너지 차량 개발 속도는 일본 등 경쟁국가에 비해 느리다. 현대차의 경우 소형차인 아반떼급에서 LPG 하이브리드 차량이 내년 여름에 출시될 예정이다. 가솔린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 예정 시기는 2010년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업체가 나름의 경쟁력을 가진만큼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현지생산이 강화되는 중이라 오바마 집권이 미칠 영향은 낮다는 얘기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이미 내년 말이면 기아자동차가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공장 생산량까지 합치면 현지 생산대수가 전체 판매대수의 60%를 차지한다"며 "관세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오바마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양국 자동차 부문에 대한 교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세부협정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시대.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가장 격렬한 마찰이 일어날 경제현안이 양국 FTA 협정 문제다. 오바마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AP=뉴시스

국내 금융규제 완화 바람 잦아들진 않을 것

오바마가 집권하자마자 가장 시급히 손봐야 하는 부분이 바로 금융부문이다.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미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과 그로 인한 파생상품 시장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인이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 중 하나도 그에게서 이번 사태의 치유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한 후 금융부문, 보다 좁게는 투자은행 부문에 어느 정도의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오바마는 후보 때부터 규제강화를 줄기차게 주문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등장으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란 기대는 난센스라고 단언했다. 오바마든 매케인이든 이 부문에 한해서는 두드러진 정책 차이가 없었다는 뜻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오바마가 당선됐다고 미국의 금융제도가 갑자기 변화하리라는 기대는 곤란하다. 아직 투자은행 제도에 오바마가 어떤 식으로 손을 댈 것이라는 구체적 전망도 나오지 않았다"며 "지금으로선 공적자금을 부실 부문에 투입하는 동시에 투명성을 높이는 식으로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전부인데 이는 오바마가 아니라 매케인이라도 했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오바마 집권으로 한국의 금융규제 완화 분위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희박하다.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완화 등의 한국 내 금융 탈규제 현상은 오바마와 상관없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이명박 정부도 우려와는 달리 오바마와 큰 잡음 없이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성인 교수는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굳이 양분법적 논리로 평가하자면 케인즈주의에 가깝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도 말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실제 정책을 보면 정확하게 케인즈주의적인 정책도 실시한다"며 "어차피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달리 보면 오바마와 죽이 잘 맞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바마에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오바마도 자유무역주의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거부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장 헤지펀드계의 제왕 조지 소로스가 오바마를 지원한다는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해영 교수는 "오바마를 두고 '월스트리트의 총아'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도 기본적으로 미국 금권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며 "오바마는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적 비전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단기적 처방에 그칠 것이다. 지금이라도 오바마를 비판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부는 한나라당에서 시키면 열심히 따른다는 방침"

오바마의 당선으로 큰 폭의 한·미관계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예상은 금물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정부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정부에서 별다른 대응책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는 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이 확실시되던 지난 4일(한국시간)에도 매케인의 경제고문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를 만났다. 캠프 데이비드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오바마 측과 아무런 연줄을 놓지 않았다.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정부는 재협상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한·미 FTA 조기비준에만 목을 매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3일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었다. 비준안 조기 통과를 위해서다.

진석규 기획재정부 전략기획단장은 "정부의 기본 입장은 누가 당선되든 변함이 없다. 오는 17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비준동의안을 의결한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우리도 (비준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누가 먼저 추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빠른 시일 내에 비준동의안 통과를 이뤄내 오바마 측에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면 미국의 재협상 움직임을 저지하는 효과가 날 것"이라는 희망을 보였다.

달리 말하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는 다른 관계자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기획재정부 FTA 국내대책본부 관계자는 "대비책은 저희보다 한나라당에서 열심히 세우고 있다. 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재정부에서는 한나라당에서 시키면 그것을 열심히 따른다는 방침이다. 특별한 것은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아직 부시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한나라당 역시 큰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비준동의안 통과를 계획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오는 10일 비준안 상정 뒤 12일 공청회를 열어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는 방침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오바마 측의 재협상 움직임을 저지하고자 하는 물밑 작업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쪽 인맥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관측된다. 의원 일부가 이번 달 중 방미에 나서는 게 근거다.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인 정몽준 최고위원은 오는 12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를 초청해 리셉션을 가진 후 미국을 방문키로 했다. 국회 외통위 위원장인 박진 의원도 이달 내에 방미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이 FTA 비준안 통과를 서두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전성인 교수는 "쉽게 말해 바뀐 시어머니가 혼수 마련해오지 않으면 결혼 못 시킨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라며 "지금은 섣불리 비준하겠다고 나설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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