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윤지원(가명·24) 씨는 "취업하기 힘드냐"는 질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대답과 함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윤 씨는 올해 8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소재 모 사립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소위 말하는 '스펙(학점, 영어점수 등 학생의 실력을 증명하는 수치)' 관리도 열심히 했고 다방면에 경험도 쌓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최근 정규직 채용 대신 인턴사원 선발을 늘리는 기업 분위기를 고려해 그는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정규직 전환을 노릴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어디까지나 비정규직일 뿐이다. 인턴으로 입사해 수개월 간 열심히 일한 그의 친구 한 명은 정식고용 취소통보를 받고 다시 구직자 신세로 전락했다.
윤 씨는 어쩔 수 없이 취업 눈높이를 조절하게 됐다. 자신의 적성을 알아보기 위해 고용지원센터에서 심리·적성상담까지 받았다. 그는 "요즘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어차피 6개월 정도는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졸업이 두렵다"
경제위기가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반영되는 문제 중 하나가 일자리 문제다.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비용 절감 조치가 고용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달 취업자수 증가폭은 11만2000명으로 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올해 초부터 7개월 연속 정부의 목표치인 20만 명을 밑돌고 있다.
이는 그나마 구직활동을 한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낸 수치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제외한 결과다. 이 때문에 지난 달 3.0%에 불과했던 실업률에 구직을 아예 포기한 사람까지 감안할 경우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특히 청년 실업난이 갈수록 심화하는 게 문제다. 20대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인 6.0%에 달한다. 이들 중 비경제활동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대 실질 실업률은 두자릿수에 달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올 지경이다. (☞ 관련 기사 : 실업률 줄어든다는데 왜 나는 고용 안 될까?)
취업한파가 점차 거세지면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서류는 닥치는 대로 집어넣고, 공부 동아리를 꾸려 취업 준비를 따로 할 정도로 열심히 매달려도 졸업식날 학사모를 쓸 때 친구들, 가족들 앞에 뿌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서울소재 한 4년제 대학에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임경수(가명·27) 씨는 "방금 원서를 넣은 한 회사에서 서류전형에 불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다. 아무리 노력해도 서류통과 자체가 쉽지 않다. 서류통과 확률이 30% 정도면 높은 편인 것 같다고 친구들과 얘기한다. 이제 학생 신분도 끝나가는 데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졸업해 실업자가 되느니 돈을 더 쓰더라도 취업이 확정될 때까지 졸업을 늦춰버리는 학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모 4년제 대학 사회학부 학생회장인 이기명(가명·23) 씨는 "아직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1년 더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자릿수 경쟁률은 기본…MB정부 들어 공무원 채용도 줄어
대학생들이 이처럼 불안에 떠는 현실을 통계가 증명한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시중은행 입사경쟁률은 최대 200대 1을 넘었다. 지난 달 30일 신입행원 서류 접수를 마친 외환은행에는 70명 모집에 1만5231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218대 1이다. 상반기만 해도 167대 1로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용난이 심해지면서 제 때 취업을 하지 못한 구직자 적체현상이 더 심각해졌음을 입증한다.
최근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파리 목숨'이라는 농담이 다시 회자되는 증권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반기 100명을 채용하는 한국투자증권에는 1만2027명이 지원해 사상 최고 수준인 12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신입사원 60명을 모집하는 LG파워콤에는 1만822명(180:1)이 몰렸고 인삼공사, 수출보험공사 등 공기업 입사 경쟁률도 모두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직원 100명 이상인 34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구직자 100명 중 최종 합격한 사람은 3.8명에 불과했다. 기업 입사 지원자 100명 중 겨우 3명 만이 취업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한 때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예전에 비해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 정부 들어 '작은 정부' 바람이 확산되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도 대기발령이 나는 경우가 많고, 새 인원을 뽑는 지자체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충청남도가 지난 5월 공무원 103명을 감축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도 시작됐다.
이 때문에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 중 일부도 취업 경쟁에 뛰어들었다. 모든 곳에서 신규 인력 채용이 줄어드는데 매년 일정 수의 졸업자는 쏟아지니 경쟁이 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2년 간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올해 들어 사기업 취업시장으로 눈을 돌린 문지원(가명·29) 씨는 "공부한 내용이 잘 맞을 것 같아 경영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하지만 영어실력 등을 제대로 쌓지 못한 데다 졸업한 지도 1년이 넘어 자신이 없다.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하고 싶다는 좌절감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고령자 취업난도 심각
상대적으로 대졸자 문제에 가려져 있지만 비정규직이나 고령자 등 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이들의 취업난도 심각하다.
서울 광진구의 한 중화요리점에서 주로 재료준비를 하던 2년 경력의 중화요리사 김진우(가명·28) 씨는 얼마 전부터 오른손이 퉁퉁 부어오르는 이상 증세를 겪었다. '괜찮겠거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심해지다 피가 나기 시작했다. 사장은 그를 해고하며 고용지원센터를 소개해줬다.
그나마 그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실직 전 임금의 50%(실업급여)를 앞으로 3~8개월가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요리사들은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해고당하는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영업자나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자는 해고를 당하거나 폐업할 경우 안전망에 안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 씨는 "6개월 전에 4대 보험이 적용되는 회사로 옮겼기에 실업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3%에 불과하다(3월 기준). 81.7%에 달하는 정규직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들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감원 태풍'의 첫 번째 대상이다. 신규취업 자리는 줄어드는 데 인력감축이 진행될 경우 이들의 실업은 곧바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청년들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니, 고령자 재취업의 어려움 역시 쉽게 예상되는 일이다. 20일 서울 시내 한 고용지원센터에서 전북 전주시에 있는 한 건설사에 이력서를 팩스로 전송하던 이형철(가명·62) 씨는 건축기사 출신으로 20년이 넘게 현장소장으로 일하다 지난 6월에 정년퇴직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다시 구직활동에 나섰는데 나 같은 사람을 데려다 쓰려는 곳은 아파트 경비가 공사장 청소 같은 잡일 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국민의 상당수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예순이 넘어도 건강을 유지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500만 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이들의 57.1%는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데 반해 고령자를 위한 복지기반은 부족해 경제활동을 다시 해야만 여생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풍부한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식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부모를 풍족하게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수다. 이 씨는 "아들이 75년생이고 딸이 82년생인데 둘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손 내밀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취업난, 연말에 본격화"…실업 급여 신청자 10% 늘어
전문가들과 취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9월 들면서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난이 취업 시장에 본격 반영되는 시기가 올해 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용지원센터 구인·구직부문에서 일하는 윤경의 상담사는 "일하면서 느낀 바로는 경기침체가 심각해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3~4개월이 지나서 실업자 증가가 피부로 와닿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이 각종 자구책을 마련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급여체계가 연봉제로 정착된 것도 '연말 실업대란설'에 힘을 실어준다. 매년 11~12월이나 연초에 새 연봉계약에 대부분 직장인이 사인하기 때문에 이 때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소리다. 구조조정을 결심한 회사는 연봉계약 기간에 '경영상의 사정'을 이유로 재계약을 포기할 수 있다.
이미 실업급여신청자 수는 예전에 비해 확실히 늘어났다.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급여 수급자격 인정자를 심사하는 김영리 상담사는 "예전에 비하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이 확실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고용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62만9397명이던 실업급여신청자 수가 올해는 70만5131명으로 증가했다. 한해 전에 비해 12.0% 늘어난 것이다. 성북구와 중구, 종로구를 담당하는 고용지원센터의 경우 작년 9107명에서 올해 1만385명으로 14.0% 증가했다.
당장 사정이 급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궁여지책으로 인턴채용이나 공공근로 일자리라도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외환위기 때처럼 단기적으로 청년인턴십이나 공공근로사업 일자리를 정부가 지원해 늘려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이 약화된다면 내년 들어 실업에 의한 심각한 빈곤 문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증적 요법일 뿐이다. 장기적 노력 또한 지속적으로 병행돼야 한다고 금 선임연구위원은 조언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내수시장 약화와 재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수진작이 필요하고 기업과 기업 간 재취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기업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대학 졸업생 수가 워낙 많아 취업시장 신규 진입자의 기대수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근본적으로 조정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모든 사업의 최우선점에 고용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금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재정지출사업 등을 추진할 때 고용영향평가제도를 시범적으로라도 실시해야 한다. 정책 결정 시 고용효과를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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