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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한·중·일 공동펀드' 띄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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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한·중·일 공동펀드' 띄우는 이유는?

3국 금융정상회담까지 제안…"신중해야" 평가도

이명박 정부가 연달아 한·중·일 3국 공동펀드 조성을 위한 바람잡이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이 3국 공조체제 구축을 위한 재무장관 회의 추진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기획재정부가 또 다시 브리핑에서 이 논의를 들고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3국 정상회담 개최 제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아시아공동기금 논의를 들고 나오는 이유는 뭘까? 단기적으로는 국제 금융위기가 갈수록 확산되는 조짐이 보임에 따라 아시아 역내 외화유동성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은 것이다. 보다 크게는 이 논의가 아시아통화기금(AMF), 즉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 설립 논의로 이어질 수 있어 아시아 역내 금융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의 의욕이 자칫 민감한 외교 문제를 정치적 이용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기구 설립 논의가 발전하더라도 당장 시장에 긍정적 신호로 이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10년 묵은 논의, 금융위기타고 급진전

아시아 역내 금융안정기구를 만들자는 논의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짧게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동북아금융허브 전략의 일환으로 거론된 바 있고, 길게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지난 1997년 일본이 이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아세안+3(아세안 10개 국가와 한중일) 재무장관회의다. 일명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로 불리는 이 방안은 아시아 역내 상호 자금지원 체계를 구축해 외환보유 공유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배경은 달러 결제 수요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인 아시아에 외환유동성 공급라인을 갖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데 있다. 경제력이 갈수록 급성장하는 아시아가 실물경제 뿐 아니라 금융 부문에서도 국제적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여기에 녹아 있다. 게다가 이미 유럽(EU)과 북미(NAFTA), 남미(MERCOSUR) 등 세계 경제블록화가 급진전하는 상황에서 아시아도 역내 블록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각국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설립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8월 말 현재 1조8088억 달러)과 2위 보유국 일본(9967억 달러)이 기금 운용의 주도권을 놓고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올해 들어 본격화됨에 따라 논의는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아시아 재무장관들은 800억 달러 규모의 금융안정기금 조성 합의를 구체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논의 자체는 긍정적 신호라는 의견이 대세다. 800억 달러에 달하는 아시아공동자금이 설립된다면 지금과 같은 달러난에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뿐더러 논의의 추가 발전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아시아공동자금 논의는 양자간 협력하던 외화스왑 논의를 13개국이 동시에 참여하는 다자간 협정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라며 "설립된다면 역내 경제 안정화에 큰 기여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국제금융질서에서 차지하는 아시아 경제의 영향력 확대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 3국의 아시아공동기금 논의에 주도권을 잡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6월16일 제주 서귀포 ICC제주에서 열린 제8차 ASEM 재무장관회의 개막식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도권 잡으려는 정부…시장 안정 효과도 노려

정부는 최근 들어 활발히 이 논의를 여론화하고 있다. 당장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5일 "내년 5월 재무장관회의에 앞서 결정을 끝내는 것이 목표다. 합의에 속도를 내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3국 재무장관 회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현실적으로 재무장관회의 주최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음에도 재정부는 "차관급 회의가 가능하다. 장관회의도 한국-중국, 한국-일본으로 이을 수 있다"며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아시아공동기금 조성을 위해 나서는 이유는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기금 운용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슈퍼파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인데다 아세안 국가들과 역사적·외교적으로 크게 부딪힐 일이 없는 만큼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줄곧 거론된 바 있다.

국내 정치적 의도도 섞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차기 아세안+3 전체회의의 공동 의장국 지위를 얻는 상황에서 내년 5월 회의에 앞서 정부가 논의의 진전을 이끌 수 있다면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불안감이 지속되는 외환시장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지속된 정부의 유동성 공급 방침에도 불구하고 국내 환시장은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윤 연구위원은 "13개국의 공동 보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나라가 드라이브 한다고 논의가 진전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외교 문제가 포함됐기 때문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이 논의를 주도하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논의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사항이라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한국이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를 세련되게 풀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미국이 펄쩍 뛸 얘기"성급한 추진 삼가야

오히려 정부가 지나친 과욕을 부린다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아시아 다른 국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기구 설립의 핵심인 중국과 일본이 한국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너무 적극적인 행보는 자칫 외교적 주도권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질서에 맞서는 듯한 인상을 보이는 이 논의에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지나치게 적극성을 보이는 데서 오히려 외교부문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시아공동기금에서 더 발전한 논의인 아시아통화기금은 감독 기능이 없을 뿐 사실상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판 기구라는 점에서 아시아 역내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어떻게 보면 미국이 펄쩍 뛸 이야기에 정부가 적극성을 보이는데서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아시아 주도권'을 아시아 인접국가에 홍보해버린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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