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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직접 해보니…"바람이 못 넘을 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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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직접 해보니…"바람이 못 넘을 산 없다"

[오체투지 33일째] '下心'으로 세상을 보다

"지잉~"

징이 한 번 울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이제 그만.' 징 소리가 세 번 연달아 울렸으면 좋겠다. 징이 세 번 울리면 휴식이다. 이전 휴식 후 겨우 세번째 절이건만, 기자는 벌써 휴식 징 소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순례 인원이 많은 날엔 지관 스님은 죽비 대신 징을 친다. 시끄러운 도로에 순례 행렬 끝까지 들릴 수 있도록.

무릎을 쓰지 않고 올곧이 어깨 힘에 의지에 몸을 일으켜야 순례 행렬의 속도에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그새 기자의 어깨는 후들거린다. 무릎을 땅에 대고 어깨에 쏠린 힘을 분산시켜 보는 사이, 다른 순례 단원들은 이미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떼고 있다. 기자는 허둥지둥 세 걸음을 뗀 후 다시 땅에 몸을 던진다.

서둘러 세 걸음. 그리고 또 몸을 땅에 던진다. 두 팔을 뻗고 고개를 숙여 최대한 땅과 밀착한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이랬을까.' 어느새 평화가 밀려온다. 아득히….

거친 숨을 고르는데 지나는 차가 내뿜는 연기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으헉.' 또 징이 한 번 울리고 기자는 서둘러 고개를 든다.

"직접 오체투지를 해보겠다"는 기자에게 전종훈 신부는 "매일 아침 '아이고' 소리로 일어난다"며 만만치 않은 길이라고 겁을 줬었다. 하지만 내심 자신만만했었던 기자는 100m만에 슬그머니 다시 수첩을 들고, 볼펜을 꺼내 들었다. 취재를 핑계 삼아 순례 행렬에서 빠져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진행 팀원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벌써 그만 두게?" 그는 살짝 웃었다. 순간 체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곧 죽어도 오늘 순례 종료 때까지는 하자.' 이런 생각 끝에 다시 순례 행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또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입에선 어느새 "아이고" 소리가 흘러 나온다.

사람과 생명, 평화를 찾아나선 오체투지 순례 길이 지난 4일로 31일째. 지난달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어느새 전주까지 올라왔다. "느릿느릿 자벌레처럼 땅을 기어 어느 세월에 계룡산까지 가냐고"들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이들은 묵묵히 순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그들의 순례 행렬에 직접 뛰어 들어 함께 했던 3시간 여의 시간은 그들의 한 달 순례 길의 고단함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었다. 또 앞으로 가야 할 한 달여는 얼마나 더 까마득한 길일까.

"무념무상…오직 이 순간만"
▲ 순례 인원이 많은 날엔 지관 스님은 죽비 대신 징을 친다. 시끄러운 도로에 순례 행렬 끝까지 들릴 수 있도록. ⓒ프레시안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이 또 지금 이 순간이다. 한 달의 순례 동안 오직 절을 하는 이 순간만 있었다."

한 달 동안의 순례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경 스님은 선문답을 내놓으셨다.

'한 달 순례 동안 오직 절하는 순간만 있었다고?'

수경 스님이 던진 화두에 생각이 많아진 기자는 오체투지 도중 징 소리를 놓쳐 버렸다. 허둥지둥 일어서 다음 징이 울림과 동시에 몸을 땅에 던졌다. 당황해 마음의 평형은 깨졌고 그 다음 절을 할 때도 허둥지둥, 마음 속 평정을 다시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체투지를 하면 무언가 복잡한 일에 대해 생각이 정리되고, 그러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과 달리 마음의 평정은 수경 스님이 던진 화두를 잊는 데서 시작됐다.

무념무상. 생각을 하게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대지와 최대한 몸을 밀착시킬 수 없게 된다. 땅과 좀 더 떨어져 있는 사람이 빨리 일어설 것 같지만, 오체투지는 그 반대다. 땅에 '철퍼덕', 대지와 최대한 밀착하는 자가 힘들이지 않고 금방 일어선다. 정말 모든 생각을 다 버려야 했다.

그리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무념무상. 한 달의 순례 길에서 오직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라던 수경 스님의 말이.

하심(下心)…"생명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

▲ 오체투지의 묘미는 '하심'에서 나온다. 몸을 낮추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오체투지의 묘미는 '하심(下心)'에서 나온다. 몸이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할 때 마음도 가장 낮아지는 것일까.

실제 몸을 낮추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고 들렸다. 땅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고르는 사이 눈 옆으로 지나쳐가던 대형 트럭의 커다란 바퀴는 오금이 저렸다. 눈 앞에 보이는 차바퀴에 눌려 터져버린 지렁이는 다시 생명을 생각하게 했다.

혹 느리게 살아가는 이 땅의 무수한 생명들에게 인간의 속도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것은 아닐까.

문규현 신부는 휴식 시간, "빠르면 다 외면하기 마련이지"라며 지나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못 넘을 산이 없다"
▲ 실제 이날 어린 조카를 데리고 나온 한 1일 순례단원은 "지난 새만금으로 3보 1배를 할 때는 그냥 차만 타고 옆을 지나쳤었는데, 너무 미안했다"며 "오늘은 순례단이 여길 지난다고 해서 꼭 들러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욕망에 대해 내 안에도 그런 욕망이 있음을 먼저 돌아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이날 오후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의 가게에서 나와 쉬고 있는 순례단에 소리를 쳤다.

"왜 전북에서 이런 걸 하나, 경상도 가서 해라. 전북 경제 다 죽어 가는데 또 새만금 때처럼 반대만 하려고 이곳에 온 건가. 돈 없이 뭐가 된단 말인가.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 힘든데 경제 어려울 땐 이런 것도 참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부터 나라 정책엔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역정을 내며 한동안 순례단 옆을 떠나지 않은 그를 보며 문규현 신부는 "다 버리면 가볍다"라고 말했다. 문 신부는 소리 친 중년 남성에 대해 "우리의 모습"이라며 "경제, 개발 이런 것은 이명박 정부가 외치는 것이고, 그걸 호응한 것이 국민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이 무언가에 막히면 넘어가지, 바람이 산을 밀어내는 것을 보았나. 바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버리면 가볍다. 그러면 바람이 된다. 명박산성에 부딪치면 그걸 넘어가야지 밀어낼 수 있나."

전종훈 신부 또한 "오체투지의 기본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길"이라며 "모든 게 돈의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돈이 행복지수가 아니란 걸 알고 사람이 자기 길을 찾아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렇게 자기 내면의 무한한 욕망을 다 버리고 가벼워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 순례 길, 사람들은 다 버리고 가벼워져 바람이 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바람이 지금 우리 사회에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이날 어린 조카를 데리고 나온 한 '1일 순례단원'은 "새만금 반대를 위해 이 분들이 3보 1배를 할 때, 차를 타고 옆을 지나쳤던 것이 너무 미안해 들렀다"며 "우리 사회의 욕망에 대해, 내 안에도 존재하는 욕망을 돌아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나눔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 순례 길
▲ "오체투지 순례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는 길이 듯 순례단 밥 차도 끊임없이 비우는 길을 가고 있다."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과일들은 순례단에서 다 먹지 못해 1주일 마다 어린이 집으로 보내고 있다. 나눔은 나눔을 낳고 순례 길은 사람 사는 훈훈한 정이 넘쳐나고 있다. ⓒ프레시안

순례단의 점심은 풍성했다. 준비한 손길과 그것을 맛있게 먹는 이들은 음식을 나누며 더욱 풍성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점심에는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도의정(30) 씨가 직접 싸 온 과일을 온 순례단원이 나눠 먹었다. 직접 포도 한 알 한 알을 따고, 메론과 사과를 깎고, 큰 찬합 4개에 가득 가져온 그의 정성은 감동스러웠다.

이런 나눔은 순례단의 '밥차'에도 있다. 이날 점심 식사는 자장면. 순례 31일 동안 진행 팀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조항우 씨와 김희연 씨는 순례단 뒤에서 묵묵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릎 수술로 지방을 되로록 피해야 하는 수경 스님을 위해 김치찜에 들어간 고기 기름을 다 제거해 식사를 마련하기도 하고, 도로의 분진이 순례자들의 몸속에 들어오는 걸 생각해 이를 없애는 데 좋다는 묵밥을 종종 만들어 봉양하고 있다.

이들은 "오체투지 정신을 따라 순례단 밥 차도 끊임없이 비우는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과일을 1주일 마다 어린이 집으로 보내고 있었다. 나눔이 다시 나눔을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돈에 대한 욕망, 경제지상주의 모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해 더욱 삭막한 사회를 만들고 있지만, 오체투지 순례 길에는 여러가지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모두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내 안에 촛불 있다"

100여 명에 이르렀던 지난 3일 참여 인원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날도 50여 명이 넘는 많은 1일 순례단원들이 함께 했다.

이들 중 많은 이에게서 '촛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수원에서 온 회사원 허민(38) 씨와 도의정 씨는 이날 처음으로 만나 '촛불 집회' 얘기를 하며 친해졌다.

이들은 "둘 다 언론으로 봤을 때는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며 단순히 안타까워했지만, 현장에 오면 그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삶에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촛불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고, 그 마음을 기억하며 찾은 오체투지에서 다시 그 마음을 새로운 사람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원인 김성한(38·가명) 씨도 촛불 집회를 통해 만난 여자 친구와 함께 순례단을 찾았다. 김 씨는 "회사에서 경쟁이 지나쳐 삶이 힘들었다"며 "이것저것 답을 얻고 싶어서 오체투지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그는 "삶에 답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순례 휴식 중간 중간 리코더를 불며 순례단에게 음악을 선물해 줬던 '오거리 악단'은 거대했던 촛불의 물결이 지나간 뒤에도 전주 시청 앞에서 꾸준히 촛불을 이어 온 사람들이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파동 이후 열린 촛불 집회가 만들어 낸 악단이었다.

전종훈 신부가 "순례 동안 두 가지만 한다. 하나는 나를 끊임없이 비워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길 끝에 희망이 샘 솟을 것이란 기대"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 아닐까. 평화로운 촛불의 마음을 간직한 오체투지 순례의 끝에 희망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이날 순례단은 전북 전주시 아중역에서부터 호성동 사거리 현대오일뱅크 앞까지 지난한 순례를 이어갔다.
▲ 5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날 순례에 참가했다. ⓒ프레시안

▲ 수경 스님은 무릎 수술로 무릎이 완전히 굽혀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이날 참석한 장애인들은 도로의 턱 때문에 순례 길이 불편했다. ⓒ프레시안

▲ 순례단원들은 각자 도시락을 싸왔다. 이날 한 참가 단원이 과일을 싸와 단원들의 나눔이 풍성해졌다. ⓒ프레시안

▲ 점심 시간. 안마하는 두 성직자. ⓒ프레시안

▲ 촛불 얘기로 더 친해진 순례단원들. ⓒ프레시안

▲ 오체투지 순례 후 '오거리 악단' 사람들은 전주 시청 앞 오거리에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와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 촛불을 들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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