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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퀜틴 타란티노 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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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퀜틴 타란티노 류승완

[뷰포인트] <다찌마와 리> 배틀리뷰

<다찌마와 리>는 한 편의 완결된 영화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장르에 관한 영화다. 필연적으로 메타-영화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 리>에서 성취한 것에 대해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오마쥬와 패러디가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들 역시 원 텍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원 텍스트로 삼고 있는 60년대 ~ 80년대 한국 및 한·홍(한국·홍콩) 합작 액션영화들은 DVD나 비디오 등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유통되고 있지도 못하고, TV에서 이른바 '땜빵'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던 것도 90년대 말 내지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끝났다. 과거와의 단절, 나아가 과거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은 근현대사 전체에 대해 현대인들이 갖는 무의식적인 욕망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영화사가 경험하는 과거와의 단절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특히 액션영화의 경우 우리가 홍콩에 기술을 전수해줬음에도 오히려 한동안 홍콩무협의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원류가 어딘지 밝히고 이를 끊임없이 현대의 화면에 불러내는 류승완 감독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는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부정하고 싶어했던 과거의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이것이 실은 멋진 것이라고 확인시켜 준다. 현대의 눈으로 봤을 때 더없이 촌스러워 보이는 것들조차,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웃으며 즐기고 이것을 뛰어넘으면 되는 거라 말해준다.
다찌마와 리
그런데 류승완 감독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이런 노력이 그저 최근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가 타란티노 감독의 아류로 호명하기까지 한다는 것.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과거 액션스타들을 스크린에 다시 불러왔다고는 하지만, 그가 보다 본격적, 적극적으로 과거 한국 액션영화들의 '장면'들을 불러낸 것은 <짝패>이고, 홍콩 무협영화의 공식을 플롯으로 재현한 전작인 <짝패>는 타란티노 감독의 전작인 <킬빌> 직후에 나온 게 사실이다. 류감독이 일찌감치 만든 인터넷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 영화의 조잡함을 의도적으로 살린 지금의 장편영화 <다찌마와 리>는 분명 비슷한 형식 실험을 시도했던 <그라인드 하우스> 이후에 나왔다. 게다가 과거의 스타를 불러내고 과거영화의 플롯을 빌어오는 정도의 수준은 타란티노가 일찍이 <펄프픽션>에서부터 줄곧 해왔던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행적은, 그가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타란티노의 실험과 시도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아무리 따져봐도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와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분명 전혀 다른 별개의 영화들이지만, 타란티노 영화의 '영감'이 전방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 뿐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 역시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통해 <다찌마와 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방법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던 개별 영화의 일부 장면을 따는 패러디 수준이 아니라, 장르 자체의 속성과 코드를 재현한 화면, 혹은 키치를 즐기는 방식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류승완 감독이 고유하게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타란티노가 선수를 쳤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영화적 야심을 밀어부친 결과, 과거 한국액션영화 고유의 특징을 부활시키고 계승함으로써 이의 적자가 바로 자신임을 선언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화미학을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들의 이름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과거 '액션씬'을 가리키던 영화업계의 은어로부터 시작해 호금전의 여자 협객, 한국 액션영화에서 등장한 첫 여형사까지. 한국어 간판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리를 홍콩의 어드메라 우기던 것도 한홍 합작액션에서 자주 등장하던 화면인데, <다찌마와 리>에서도 로케이션에 관한 농담은 다양한 장면에서 나온다. 아무리 김지운 감독이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를 인용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만들었다 한들, 만주활극의 전통을 제대로 부활시킨 건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아니라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후반부다. 다소 개연성 떨어지는 플롯을 의도적으로 재현한 것을 비롯해 '촌스러운' 패션과 문어체 대사들, 조잡한 로케이션, 후시녹음 등을 되살리면서 '과거 영화에 대한 거대한 농담'을 주축으로 삼으면서도, 액션씬만은 대단히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들어냈다. <서극의 칼>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후반부 만주벌판 씬은 <서극의 칼>이 그랬듯 <외팔이 검객>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류승완 감독이 계속해서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들어온 특유의 액션 리듬이 살아있다. 호금전 감독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액션이나 장철 감독의 짧게 끊어치는 날카로운 액션과는 구분되는, 정말로 몸과 몸이 부딪히는 느낌을 전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있는 액션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서구적인 신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동선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체구도 장점으로 살려내는 액션이다.
다찌마와 리
나아가 <다찌마와 리>는 '영화광의 영화'로서 그 위상을 보다 또렷이 한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보다는 과거 영화들의 전통을 적극 인용, 변형시키는 한편 이를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언제나 서구의 영화들만을 레퍼런스 목록에 올려놓으면서도 선배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 감추고자 했던 소위 '인텔리 출신' 감독들과 명확히 차별되는 이런 특징은, 굳이 누벨바그 감독들에 비유하자면 고다르보다는 트뤼포 쪽에 가깝다. 한국의 수많은 감독들이 모두들 스스로 고다르가 되고자 했을 때(그리고 대부분 실패했을 때) 류승완 감독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적극 만들기의 영역으로 전환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다찌마와 리>는 이것이 최고조로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승완 감독이 비록 한국영화사에 있어 획기적이고 새로운 화면을 '발명'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영화가 언제나 압도적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인지 모른다. 여기서 다시 문제는, 류승완 감독이 인용하고 끌어온 원 텍스트들이다. 영화제에서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도저히 확인하기가 힘든 그 영화들, 그나마도 몇 년 반짝 유행을 타다가 근래 들어 주춤해진 그 영화들은 여전히 일반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영상자료원을 찾지 않는 한 비디오로 확인해 보는 것도 요원한 일이 돼버렸다. 과거의 한국영화들이 활발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재발굴되고 담론에 오르내리는 때에라야 <다찌마와 리>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찌마와 리>에 대해 나오고 있는, 또한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계속해서 반쪽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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