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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아파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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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바보야, 문제는 아파트야!"

[화제의 책] 허의도 <낭만아파트>

"안녕하세요, 전에 뉴타운 문제로 뵈었던 OOO라고 합니다. 이번에 구청 앞에서 시위를 할 건데요…. 이 사람들이 조합 의견만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잖아요. 법보다 조합이 위에 있는 거예요. 와주셔야 해요."

한 제보자의 전화를 받으며 '문제는 아파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언제부터였나를 정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아파트가 우리를 변하게 했다. 뉴타운 문제로 조합원과 세입자가 갈라져 싸우는 이유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단지 때문이다. 빨리 세입자 문제를 처리해야 개발이득을 누릴 수 있는 조합원에게도, 임대아파트 입주권이라도 받아야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세입자에게도 아직 생기지 않은 아파트가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

욕망을 가득 담은 우리의 아파트는 이웃과의 연대를 사라지게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아파트 부녀회에서 흔히 얘기되는 "이번에 우리 아파트는 얼마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습니다. 부동산중개업소에도 확실히 압력을 넣어야 해요"라는 따위의 집단이기주의였다.

어느새 아파트는 뒤틀린 우리의 오늘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강남 대치동 아파트단지는 신분 상승의 욕구와 기묘한 교육열을 반영한다. 강북권에 밀집한 아파트단지 사람들은 '성공시대' 욕망을 싣고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서울지역을 싹쓸이하게 만들었다.

잘 사는 사람이건, 못 사는 사람이건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모든 구성원이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솟은 아파트를 선망한다. 이러니 어떤 경제정책도 아파트값 상승을 막지 못한다. 서민들의 기대를 잔뜩 안고 출발했던 노무현 정권이 결국 강남 아주머니들의 뚝심에 무릎 꿇어 '강남 사람의 지지를 받는 정권' 따위로 희화화의 대상이 된 것은 상징적이다.

너무 위험하다. 더 이상 아파트가 넘치는 우리의 욕망을 투영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낭만아파트>(플래닛미디어 펴냄. 허의도 지음)에서 저자는 다분히 반어적인 책 제목을 통해 "욕망의 아파트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진짜 '낭만아파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무현 정권 초기 정책특보로 일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가 사이버 공간에 남긴 글을 인용한다.

"(이제 투기에 관한 한)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 (나아가) 영적 차원에서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4월, 미국 2위의 덩치를 자랑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무너졌다. 이 회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던 금융 시스템 근간이 요동쳤다. 알트A 등급 모기지 업체도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각 은행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자 실물 경제도 위기를 맞았다. 근사한 정원이 딸린 집이 텅 빈 채 경매딱지가 붙어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집값이 폭락하자 미국에서는 부동산 매입을 위한 새로운 관광 상품이 선을 보이기도 했다.

명문 MIT 졸업생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에 광고판을 건 채 직장을 찾는 일이 화제가 됐다. 급기야 '시장보다 나은 건 없다'던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대출보증업체에 쏟아 붓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금융기관도, 정책 당국도 아직 우리에게 그 정도의 위험 신호는 없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믿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는 그것(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좀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 온통 아파트와 땅에 광란했던 우리의 선택, 그 후유증을 놓고 다시 또 누굴 탓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새로운 경고음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일본의 부동산 폭락 사태를 지켜본 바 있다. 90년대초까지 극을 달리던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85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이라면 "그래, 차라리 다 꺼져라! 그래야 나도 집 한 채 장만해보지" 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강남 아파트값 거품은 어느 정도 제거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불행한 것은 이런 아파트가 우리 경제에 있어 시한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파트 외부불경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새로운 아파트 거품 만들기는 단순히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매국적 행위에 다름없다.

따라서 연착륙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한다. 아무리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더라도 "아파트는 불패"라는 공식은 정상적인 시장경제 국가라면 깨져야 마땅하다. 저자도 여기에 고민의 초점을 맞춘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우리 경제를 일대 타격으로 몰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른 것을 바로잡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것을 한국 경제의 성장통이라고 하자. 곧 아파트 거품이 가라앉고 예측불허의 성장통도 멎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자."

아파트 광시곡의 끝은 쓸쓸했네
▲<낭만아파트>(허의도 지음, 플래닛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지금 우리네 아파트는 과연 서민을 위한, 중산층을 위한 주택인가. 임대아파트는 그럴지 모른다. 서울 외곽도시 일부나 강북권, 서남권에 밀집한 아파트단지 사람들 대부분이 중산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최첨단 경비시스템을 구비한 초호화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전용 195㎡형은 57억 원에 거래돼 사상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아파트는 지난 60년대 서울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무허가 판잣집을 대체하기 위해 건설했다.

군사정권 시절, 아파트 건설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저자는 당시 서울시장을 지낸 '불도저(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다)' 김현옥 서울시장의 말을 빌려 그 때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도시 한복판까지 파고든 무허가 판잣집과 얼마 되지도 않은 차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도로 사정 등 도무지 수도 서울의 체신은 말이 아니었다. 부임 직후 서대문 판자촌을 시찰하면서 머리는 복잡했다. 누더기처럼 어지러운 판잣집에 당시 막 시작 단계였던 시민아파트가 오버랩되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다. 난민촌처럼 드러누운 판잣집을 일으켜 세우자!"

그러나 아파트는 곧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게 한 중앙난방 시스템과 수세식 화장실, '부엌'이 아닌 '주방'의 존재 등은 새 시대 자체였다.

여기에 70년대 시작된 강남 개발이 기름을 부었다. 1975년 10월, 강남구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곳으로 주요 시설물들이 줄지어 이전했다. 자연히 아파트 분양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복부인이 활개를 치고 다녔고 특혜 분양 사건이 줄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뽕나무밭에 불과했던 압구정에 초호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강남을 동서로 관통하는 테헤란로는 강남의 동맥 역할을 하게 됐다.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투기꾼은 아예 이삿짐을 풀지도 않은 채 잠시 머물다 인근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사람들은 투기에 물들어가고 나라 역시 투기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판'이었다. 광란의 수십 년을 보내고 나니 서울은 어느새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렸다. 아파트 공화국은 곧 '강남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 광란의 굿판이 남긴 유산이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저자는 외환위기는 단순히 정부의 실책 등으로 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우리의 광기 어린 압축성장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뜻이다.

"거품이 거품이 아니라 몸통이 돼 끝까지 굴러갈 수 있다면야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젠가는 그것이 거품임을 증명할 것이다. (…) 1997년 환란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것을 두고 누구의 책임론 운운한 것은 분명 난센스다. 그것은 한 마디로 30여 년 압축성장의 가도에서 우리 경제가 온갖 크고 작은 질병을 감추고 지내다가 마침 외환금고가 말라가는 줄 모른 채 잠시 방치한 사이에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우리 경제에 있어 아파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

이제 아파트는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핵심어다. 아파트값이 폭등하면 서민 죽어난다고 대책을 내놓고, 떨어지면 경제가 마비된다고 난리다. 지난 총선에서 봤듯 정치 행위마저 아파트에 종속됐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리 경제에 있어 아파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고 말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지난 대선 때 일어났다. 노무현 정권은 지지층의 기대와는 달리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했다. 강남불패 신화는 예상과 달리 노무현 정권에서 재입증됐다. 서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에 분노했다. 그들에게 아파트는 삶의 가장 큰 짐이자 존재 이유였다. 그 분노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로 표출됐다.

경제, 정치 영역만이 아니다. 책 뒤편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우리의 집단 의식구조, 생활양식, 빈부 구분의 잣대 등은 물론 개개인의 인성마저 아파트 문화에서 비롯된다.

결국 아파트가 중요하다. 저자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유행시킨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패러디해 "바보야, 문제는 아파트야!"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떠안은 모든 고민의 근원에 아파트가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아파트는 '천민성'의 아이콘이 돼 버렸다. 거품을 깔고 앉은 국가 운영 체제의 근원이 됐다. 결국 우리가 가진 천민성, 우리 경제가 가진 비경제성, 우리 사고가 가진 비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낭만'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 아파트는 양극화된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에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에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 아예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멀쩡한 집이 있는데도 전세를 놓기 위해 스스로 세입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양극화는 위기를 낳는다. 만약 경기침체기가 시작된다면 이는 다수 사람들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길로 스스로 걷게 만든다. 독재가 주인공이다. "경제 불황이 파시즘을 낳는다"는 말은 지난 과거에서 대체로 사실이었다. 물론 우리가 그런 길을 걷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 문화가 가진 '비정상성'은 이상한 생각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든다. 지극히 낭만적인 제목의 이 책을 읽고나면 의구심은 더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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