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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땡기는 세상, 낮술이나 마셔야 되는 세상

[뷰포인트] 노영석 감독의 독립영화 <낮술> 리뷰

최근 실연한 혁진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정선행 여행을 결정한다. 하지만 다음 날, 정선 터미널에 도착한 사람은 혁진 혼자 뿐. "모레 갈 테니 기다리"라는 친구 때문에 혁진은 낯선 곳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지만, 계속되는 음주와 함께 갈수록 상황이 꼬이고 오해가 겹치면서 그의 여행은 점차 악몽으로 변해간다. 문제는, 당사자에겐 끔찍할 악몽이 보는 사람에겐 박장대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코미디라는 점이다.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단돈 천만 원으로 13일만에 총 11회 촬영으로 찍은 초저예산 장편영화다. 예산이 영화의 표현을 제약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한계를 이야기의 재미와 상상력으로 뚫고 나오는 영화도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영화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인디포럼 등에서 상영되며 관객들을 전혀 기대치 않았던 웃음바다로 몰아넣었고, 전주영화제에서는 JJ-Star상과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해 2관왕이 됐다. 그리고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및 배급 활성화를 위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한 달에 한 번씩 마련하는 독립장편영화 쇼케이스에서 6월 상영작으로 선택돼 상영됐다.
낮술
종종 초점도 나가고 카메라 앵글과 편집이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순전히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낮 야외촬영으로 일관했다는 감독은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모험들을 매우 유기적으로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데에 성공한다. 혁진에게 거듭 찾아오는 우연들은 억지로 선택돼 짜맞춰진 우연이라기보다는 '여행지'에서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으로 여겨지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어리버리하고 찌질한 혁진의 반응이 사건을 계속되는 '반전'으로 몰아간다. 순진하고 소심하면서도 나름 음흉한 구석이 있는 혁진의 기대는 번번이 잔혹한 현실 앞에서 배반당하며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바로 그 지점들이다. 노영석 감독은 코미디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긴장과 웃음의 리듬감을 매우 훌륭하게 이어나간다. <낮술>에서 보이는 다소 기술적인 어색함과 단점들이 보완되고 조금 더 넉넉한 예산이 투입되었을 때 노영석 감독이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가 높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재주꾼'인 노영석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과 촬영, 미술, 편집은 물론 음악도 담당했다. 혁진이 처음 정선 땅에 발을 내딛고 계속 '걸을 때' 나오는 서정적인 기타곡들, 그리고 그가 버스에서 만난 엽기녀 '란희'가 그에게 들려주는 뽕짝리듬 편집의 우스꽝스러운 곡(이 곡은 엔딩 타이틀에서도 다시 한번 나온다) 역시 노영석 감독이 직접 작곡, 연주한 것이다. 감독 자신은 예산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적절한 스탭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직접 했다며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서 퀄리티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지만, 빡빡한 예산 때문에 음악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없어 음악을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기 일쑤인 독립영화치고 음악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음주 씬들에서 나오는 수많은 대사들과 주사들 역시 매우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혁진의 친구인 기상 역의 육상엽은 연기를 했다기보다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를 캐릭터에 투영시켰다면서, 실제로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밝힌다. 음주씬에서의 수많은 애드립 역시 그대로 영화에 살았다고 한다.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했던 이들이 영화에서 크고 작은 역을 맡아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스크립터이면서 영화에서 작지 않은 비중의 란희 역을 맡은 이란희는 주인공 혁진 역을 맡은 송삼봉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낮술>의 개봉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독립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개봉을 하고 관객을 만나는 것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한 이후로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영화계 안팎에서 입소문이 나고 화제를 모으면서 상업영화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고, 앞으로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될 예정이라 하니 앞으로 상영 기회가 아직은 열려 있다. 앞으로 '장르물'을 꼭 해보고 싶다는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 '독립영화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며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상업영화로든 다시 독립영화로든 그의 재능이 발휘된 또 다른 다른 작품을 머지 않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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