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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말로 하는 경제 대통령? 나도 하겠다"

[현장]총파업 건설기계 노동자 "차라리 죽여라"

"말로만 '경제 대통령' 하면 뭐합니까? 말로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안 그렇습니까?"

인천에서 덤프트럭 운전기사 일을 한다는 황진수(50·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황 씨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먹고 살기 팍팍해 죽을 지경인데, 경제 살려준다니까 좀 기대를 했죠."

그런데 그 대통령의 취임 4개월도 못 돼 그는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경제 살리겠다'고 말만 하는 건 누군들 못하겠냐"고 대통령에게 날을 세웠다.
▲ "미친 기름 값에 서민 노동자 울부 짖는다!" ⓒ프레시안

황 씨가 얼마 전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16일 0시부터 시작된 총파업에 참여한 이유다. 이날 오후 대학로에서 만난 황 씨는 뜨거운 뙤약볕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못하면 차라리 현상 유지라도 되야죠. 이건 뭐 살 수가 없습니다. 경유 값은 계속 오르는데, 현장에서 표준임대차 계약서 작성은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지. 게다가 우리도 일 때문에 기름 쓰는 건데, 정부 대책에서도 빠졌어요. 이건 말 그대로 죽으라는 얘기 아닙니까?"

황 씨의 옆에 있던 또 다른 덤프트럭 운전 기사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깐 차라리 죽이라 이 말입니다."

'차라리 죽여라.' 대학로에 모인 2만5000여 명의 건설기계 운전기사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쉽게 끝날 파업이 아님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 '차라리 죽여라.' 1만4000여 명의 건설기계 운전기사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쉽게 끝날 파업이 아님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프레시안

화물연대 이어 건설기계노조 무기한 총파업 돌입…비조합원 3만 명 동참
▲ 지난 13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에 이어 16일 건설기계 운전기사들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1만8000명의 조합원은 물론이고 비조합원까지 가세하고 있다. 화물연대와 마찬가지 양상이다. 이번 파업이 말 그대로 '생계형 파업'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지난 13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에 이어 16일 건설기계 운전기사들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1만8000명의 조합원은 물론이고 비조합원까지 가세하고 있다. 화물연대와 마찬가지 양상이다. 이번 파업이 말 그대로 '생계형 파업'이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모두 4만7000여 명의 덤프·굴삭기·레미콘 운전기사들이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연히 대부분의 공사 현장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오희택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오전 집계 결과 판교신도시, 송도국제도시 등 전국 현장의 90% 이상에서 작업이 전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 요구사항의 핵심은 '건설기계 표준임대차 계약서'가 현장에서 안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시행된 법에 의해 계약서 작성의 의무가 있지만 현재는 법 따로 현실 따로다. 이 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 월 200시간 근무 △유가의 건설회사 공급 의무 등이 다 담겨있다. 임대차 계약서만 제대로 이뤄지더라도 건설기계 운전기사들의 고통은 일정 부분 해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회사는 부담을 줄이고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정부도 감시·감독 의무를 소흘히 하고 있다. 지난해 법 시행 이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적발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은 이를 보여준다. 특히 "지난 11일부터 건설노조와 국토해양부가 함께 실시한 현장실사조사에서도 표준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지난 15일 진행된 건설노조와 국토해양부의 실무 교섭에서 정부는 관급공사 현장에서라도 표준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때문에 노조는 예정했던 덤프 트럭 서울 상경 투쟁도 취소했다.

하지만 관건은 개별 현장별로 진행될 교섭이다. 백석근 건설노조 위원장은 "1박2일 상경 투쟁 후 18일부터 각 현장으로 내려가 건설사와 교섭을 벌일 것"이라며 "여기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총파업은 계속 진행된다"고 밝혔다.

"고질적인 다단계 하도급, 덤프일 하면서 빚만 늘었다"
▲ 이들이 정부 약속만 믿고 총파업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건설현장의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발주처나 원청인 대형 건설회사는 언제나 "책임이 없다"며 발 빼기 일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이들이 정부 약속만 믿고 총파업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건설현장의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발주처나 원청인 대형 건설회사는 언제나 "책임이 없다"며 발 빼기 일쑤기 때문이다. 건설현장도 결국 화물연대의 운송료 인상 협상이 대기업들이 나서야 하는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다.

경남 밀양에서 왔다는 이덕수(53·가명) 씨는 건설 현장의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을 이렇게 말했다.

"원청이 일을 주면서 60만 원을 비용으로 지급한다는데 중간에 다 떼어가고 내 손에 떨어지는 돈은 30~35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요즘은 기름 값만 20만 원이 나간다."

가뜩이나 보험료, 타이어 값, 차 할부금 등으로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많다. 이 씨는 "건설회사에서는 우리는 줄 거 다 주는데 왜 못 받아 먹냐고 그런다는데 그 말 들으면 열통이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발주처가 대기업일수록 하도급 구조는 더 중층적이다. 이 씨는 "대기업 일을 할수록 돌아오는 건 더 적다"고 설명했다. "덤프 일 하면서 빚만 늘었다"며 이 씨는 말을 접었다.

"자세하게 묻지 마이소. 가슴 애린다 아입니꺼"

같은 밀양에서 올라왔다는 김수성(41) 씨는 일할수록 적자 인생인 건설기계 운전 기사들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마이너스 통장 있잖아예. 덤프 모는 사람치고 그거 없는 사람 없습니더. 하루 일하면 손에 겨우 3만 원 정도 떨어지는데 그걸로 우예 삽니꺼. 게다가 타이어도 3~6개월마다 갈아야제, 고장이라도 나면 목돈 들제. 주변에 신용불량자 무지 많습니더."

김 씨는 "할부로 차를 산 뒤 차 값을 못 내서 도로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도 덧붙였다. 15톤 트럭은 7000만 원, 24톤 트럭의 차 값은 1억 6000만 원 정도다. 빚을 내서 산 차로 일하는 사람들이 차를 빼앗기면?

"노숙자 되는 기죠 뭐. 아니면 인력시장에 나가서 노가다를 하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개인적인 일로 트럭 일 못 나갈 때 하루 차 빌려서 일하든가."

김 씨는 20년 동안 덤프트럭을 몰았다. 지금 5학년, 3학년인 두 아들이 있다. "딸을 하나 더 낳고 싶었는데 돈이 워낙 많이 들어 포기했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가정의 수입은 김 씨가 혼자 버는 게 전부다. 아내가 몸이 아파 다른 부인들은 종종 하는 깨밭, 고추밭 일도 못 한다고 했다.

"밀양이 깨랑 고추가 특산물이거든예. 그 밭에 하루 일하러 가면 그래도 2~3만 원은 손에 쥔다 아입니꺼. 근데 몸이 아파서 그것도 못 해예."

김 씨는 "집안일 자꾸 소소하게 묻지 말라"고 했다. "생각하면 마음만 자꾸 에린다 아입니꺼. 그만합시다." 그러면서 김 씨는 자신이 들고 있던 깃발에 쓰인 글을 꼭 읽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씨가 들고 있던 깃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마누라가 애들만 놔두고 도망갔다."

▲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깰 열쇠는 결국 대기업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자하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프레시안

"나만 죽고 너희만 살지 말고 함께 살자"


이날 대학로에서 만난 건설기계 운전기사들은 하나같이 "이번에는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덕수 씨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까 해결해보자고 노조도 가입하고 이렇게 서울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지난 5월 말에야 노조에 가입했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는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조합원이 늘었다.

그만큼 현장의 민심은 팍팍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총파업에는 한국노총 소속의 건설기계 운전기사들도 함께하고 있다. 조합원이냐, 비조합원이냐나 소속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고통 분담'은 경제만 어려우면 기업이 내세우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건설기계 운전기사들이 대기업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나만 죽고 너희는 살지 말고 함께 살자"는 것이다.

취임 전부터 "경제 살리기를 위해 노동자들도 협조해 달라"고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마저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화주들의 책임을 언급하고 있는 마당이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깰 열쇠는 결국 대기업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자하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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