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고시 연기 소식은 사람들을 더 들뜨게 했다.
경찰의 폭행도 방해가 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자신하고 있었다. 한 시민의 말대로 "아무리 막으려 해봐도, 시대의 흐름을 막진 못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온 몸으로 느끼는 듯 보였다.
폭우 뚫고 모인 3000명 시민 "이명박은 민심을 보라"
2일 저녁 시간이 지나면서 빗줄기는 점차 굵어졌다. 조심스레 걷기만 해도 신발이 금세 젖어들었다. 시청 앞 잔디광장은 고인 물로 질척였다.
그럼에도 3000여 명의 시민이 여전히 촛불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비도 오지 않는 날에 모인 인원이 300여 명이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직장인 오영석 씨(38·인천시 부평구)는 "비가 와서 사람이 안 모일 것 같아 도장이라도 찍고 간다는 생각으로 왔다"며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도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는 "아마 여기 모이는 대부분 직장인이 하루 두 번 출근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양모 씨(20·숙명여대 2학년)도 "비가 온다고 우리 뜻을 알리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부를 반대하는 시민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도 역시 "처음 왔다"는 사람이 많았다. 집회가 장기화되면서도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이유는 새롭게 참여하는 시민이 계속해서 늘어나기 때문으로 보였다.
직장인 김모 씨(38)는 "처음 나왔는데 직접 보니 정말 시민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오는 날일수록 더 모여야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김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민심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여기 모인 시민들이 할 일이 없어서 이 시간에 비를 맞고 있겠나"며 "애들도 나오는 현장의 분위기를 대통령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루탄만 사용 안할 뿐이지 80년대와 다를 게 뭐냐
이날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지난 주말 있었던 경찰의 강경 진압을 강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평온한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시민들이 격앙되는 순간이 경찰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였다.
직장인 오영석 씨(38·인천시 부평구)는 "90학번이라 강경 진압에는 익숙하지만 21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며 "집회 문화는 첨단을 걷고 있는데 경찰은 여전히 구시대에 사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오 씨는 "최루탄만 안 사용할 뿐이지 90년대와 다를 게 뭐냐"며 경찰에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여행사 직원인 문효임 씨(24·서울시 강남구)도 "전·의경의 눈을 봤는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며 "어떻게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방패로 내리찍고 발로 짓밟을 수 있냐"고 경찰을 성토했다. 문 씨는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단체로 폭행한 것을 지적하며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대학생 단체인 '미친 소 반대 경기도 시국회의(시국회의)'에서 왔다는 박선영 씨(25·대학교 4학년)는 발언대에 올라 "언론에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우리 회원을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며 "경찰서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수갑을 채워 엎드리게 한 후 발로 밟은 상태에서 지문 날인 작업을 했다"고 폭로했다.
박 씨는 "너무나 분해 시민 15명이 연행된 구로경찰서 앞에서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경찰은 비웃듯 우리를 지켜봤다"며 "어청수 청장은 즉각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를 비롯한 시국회의 회원은 지난달 31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따로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경찰은 인도에 섰던 이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경찰의 강경한 진압은 오히려 집회 참가자를 더 늘리고 있었다. 시민은 경찰이 어떤 일을 해도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남 진주시에서 올라온 김상재 씨(27·대학원생)는 "새벽에 인터넷 생중계를 보던 중 경찰에 너무나 큰 분노를 느껴 곧바로 새벽차를 타고 올라왔다"며 "경찰의 무력시위를 보고 이 정부와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 진압 전까지만 해도 이번 집회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는 김 씨는 "집회 참석을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생활을 하는 전·의경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꼭 그렇게 때려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막으려해도 시대는 흐른다
문화제는 오래 열리지 않았다. 한 시간이 약간 지난 오후 8시 20분경 시민들은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평화로웠다. 시민들은 도로 한 켠을 차지하고 신호등을 지키며 행진을 했다. 경찰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전과 같이 극심한 교통통제는 하지 않았다.
행진이 시작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미 쇠고기 문제는 이명박 정부를 거부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었다.
행진을 이어가는 시민들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이들을 격려했다. 시민들을 보며 "이게 87년도와 똑같다"고 중얼거리던 평화통일시민연대 박재국 이사(67)는 "시민들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며 "대통령은 당장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을 하는 시민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도, 정부의 고집도 두렵지가 않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시민들은 "연행자를 석방하라"며 정부와 함께 경찰도 비판했다.
시위대는 광화문사거리를 지나 종로, 남대문로를 거쳐 다시 시청 앞 광장으로 들어왔다. 약 10시가 돼 공식적인 이날의 행사는 끝났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될 때까지 함께 하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행사 후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 등 민주화 운동의 힘이 돼 주었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시청 앞에서 친구와 함께 노래들을 신명나게 따라부르던 양모 씨(42·중소기업 대표)는 "예전에는 운동하는 사람과 시민이 달랐는데 지금은 경계가 사라졌다"며 "너무나 뿌듯하다"고 감격해했다.
양 씨는 "시민들을 봐라. 정부와 경찰이 아무리 역사를 후퇴시키려 해도 시민들이 제동을 걸고 있다"며 "어떠한 발악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집회는 평화롭게 끝났다. 한 40대 남성은 "40대 모여라"고 외쳤다. 뒤이어 50대가 이를 받았다. 다른 쪽에서는 "20대도 모이자"는 함성이 나왔다.
비가 오고 시간이 지나도 시민들은 계속해서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힘이 든 사람은 알아서 쉬고 새로운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리로 나와 초를 들었다. 시민들은 이러한 자발적 흐름에 정부가 현명한 답을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격려금을 지급한다고?" 시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강한 동질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경찰은 강하게 불신했다. 이날 이들을 가장 자극한 주체는 경찰이었다. 특히 어청수 경찰청장이 집회 관련 부처에 오는 3일 격려금을 지급한다는 소식은 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기 충분했다. 김상재 씨는 "조폭이 사람을 패고 상 받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경찰이 이제는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직장인 최모 씨(33·서울 용산구)도 "경찰이 완전히 미친 모양"이라며 "지금 경찰은 시민을 전쟁터의 적군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기자는 근본적으로 믿지 못할 존재'라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뿌리깊게 박힌 것 같았다. 한 번도 집회에 빠지지 않았다는 유대수 씨(29·성남시)는 발언대에 올라 "지난달 28일 연행돼서 46시간 동안 강남경찰서에 갇혀 있었다"며 "경찰서에서 TV를 보며 언론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는지 느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민들의 불신 때문에 취재를 거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예비군은 기자가 명함과 기자증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언론 취재를 거절한다"고 답했다. 역시 예비군에게 취재를 요청한 한 언론사 기자도 취재를 거절당해 돌아서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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