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시중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앞두고 밝힌 '금융관'이다. 금융이 이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하는 일반 회사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 금융정책의 기본 방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미식 금융 모델을 따라가는 금융의 선진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다.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동북아 금융 중심지'라고 말만 약간 바꿨을 뿐이다.
하지만 '친기업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던 노무현 정부가 차마 넘지 못했던 '마지노선'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제돼야 하는 금융의 공공성과 공정성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가 산업은행 민영화와 금산분리 폐지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산은 민영화, 금산분리 완화가 목적?
28일 경실련과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한 '이명박 정부 100일 평가 4차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산업은행 민영화는 산은의 구조개편이라는 본래적 목적 이외에 여러 '이상한 유인'들이 첨가되면서 왜곡과 졸속이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산은 민영화의 본래 목적은 산은의 기능을 개편하고 대우증권 등 피지배회사를 조속히 매각한다는 것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금산분리 완화 및 한국투자펀드(KIF) 설립 등 명제가 추가됐다"며 현 정부가 산은 민영화에 주력하는 게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는 방안대로 민영화 될 경우 한미 FTA가 큰 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산은의 투자은행(IB) 부문은 민영화하고 중소기업 지원 등 정책금융 기능은 KIF를 설립해 이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 FTA를 통해 산은 등 현재의 국책금융기관을 통한 정책금융 지원은 계속할 수 있도록 합의했지만 KIF 등 새로 신설될 정부 소유 은행이 국책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산은의 공적 금융 기능에 대해 큰 불만을 제기했지만 어렵게 이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을 민영화하게 되면 미국에 이 문제와 관련된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지만 미국이 신설되는 KIF의 공적 기능 수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전 교수는 "산은 민영화가 '제2의 쇠고기 협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산은에 비해 기업은행의 매각이 훨씬 간단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민영화 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며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 그 자체보다 민영화를 명분으로 금융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재벌이 운영하는 증권사, 국제경쟁력 없다
결국 산은 민영화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막고 있는 금산분리를 완화 내지는 폐지하기 위한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 소유를 제한해야한다면서 금산분리 완화를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금융기관의 자산은 대부분이 유동성 자산이라는 점에서 부실을 계속 가져갈 수 있다"며 "무능한 경영자를 규율하는 기능을 가진 게 금융인데 규율의 대상이 되는 산업자본이 금융을 갖게 되면 영원히 망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금융기관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데 이미 산업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국내의 증권사가 국제경쟁력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증권사를 자기 회사의 자금조달 창구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금융은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얻는 너무도 오래된 비즈니스이며 그래서 경쟁적 비즈니스"라면서 "기업 경영 마인드와 경영 마인드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단 10%의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당장의 성과를 욕심내서 2-3%의 투자만 늘려도 바로 부실로 이어지는 게 은행이라는 것. 따라서 20-30%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 성공할 수 있는 제조업의 도전적 경영 마인드는 금융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돌격전투하듯이 비즈니스를 하는 실물경제 마인드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용건 전국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은행을 제외한 금융산업에 이미 산업자본이 다 들어와 있다. 금산분리가 아니라 은산분리라고 표현해야 한다"며 "산업자본인 모기업의 이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금이 무리한 확장이나 위험한 투자에 과도하게 동원된다면 해당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위협하게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시중은행 중심으로 운영되던 신용카드업계에 엘지와 삼성이 들어와 이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서 결과적으로 2002년 카드대란이 일어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말로는 신자유주의, 실제는 관치금융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 혼란'도 문제로 지적됐다. '강만수 경제팀'이 겉으로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성인 교수는 "과거 사고틀을 가진 과거 사람들이 겉으로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새로운 경제여건을 과거의 정책수단으로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이 의구심이 사실이든 아니든 풀어야만 시장의 신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는 철학과 원칙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철학의 부재와 아마추어리즘의 악조합의 결과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금융센터지수 53위, 금융허브 될 수 있을까 전창환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의 금융허브 구상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전 교수는 "금융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그 상에 대해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의 발전이 금융자본의 지배 및 그 지배력 강화를 의미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금융허브 전략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런던시티공사가 지난 2007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서울은 2007년 43위, 2008년 53위를 차지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전 교수는 "우리보다 훨씬 순위가 처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상하이가 24위, 베이징이 36위를 차지했다. 도쿄는 9위를 차지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홍콩(3위), 싱가포르(4위)와 함께 아시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겠냐"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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