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여론 기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뉴스와 누리꾼 의견 등 수많은 정보가 집합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다시 '언론이냐 아니냐'는 논쟁에 휩싸였다.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이미 기성 언론사의 권력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는 보수, 다음은 진보"라는 의견은 누리꾼 사이에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인터넷 방송도 자생력을 높이고 있다. 누리꾼이 직접 현장 리포터가 돼 집회 중계를 이어가고 있고 누리꾼들이 휴대전화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화가 이뤄지는 공간'이라는 주장에 '온갖 괴담의 진원지'라는 비난이 맞서고 있다.
아고라, 부글대는 인터넷 여론의 장
포털사이트 '다음'은 이번 쇠고기 논란의 최대 수혜자다. 뉴스 중심으로 게시판이 제공되는 '네이버'보다 다음의 아고라 사이트가 광범위한 여론을 쉽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클릭' 조사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문제가 이슈화되던 지난 4월 이후 아고라의 트래픽 수는 전달에 비해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수많은 누리꾼이 아고라에서 정보를 나눈다. 새로운 뉴스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아고라 토론게시판에 올라온다. 누리꾼들은 언론사 사주의 성향에 맞춘 뉴스보다 아고라에 오르는 정보를 더 신뢰한다. "'조·중·동 끊는 방법'이 소개되고 <한겨레>, <경향신문> 구독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도 아고라다.
이곳에서 누리꾼들은 수동적으로 뉴스를 퍼 나르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방면에 전문지식을 갖춘 누리꾼이 자신의 의견을 토론게시판에 자유롭게 올린다. 즉석에서 새로운 글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된다. 많은 누리꾼의 지지를 받는 글은 '베스트' 글에 뽑혀 다음 첫 화면에 기성 언론사 뉴스와 함께 오른다. 자연히 더 많은 사람이 그 글을 보게 된다.
28일 현재 토론 베스트에 오른 한 누리꾼(박수창)의 글 '[5월 26일] 방금 시위에서 돌아왔습니다'에는 기성 언론에서 보기 힘든 생생한 목소리가 살아 있다. 그는 글에서 "현수막 앞에서 꼬마가 태극기를 들었다"는 사실과 "어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던 시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참가자 대부분이 어린 사람들이라 숙련된 경찰의 대응에 당황하는 모습, 막상 경찰 앞에 서니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하나'는 두려움이 전파되는 상황도 예상 가능하게 설명됐다. 경찰과 시민이 물을 나눠 마신 일, 참가자가 경찰에게 "다치지 마라"고 말을 건네는 일도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새벽 집회 자체를 보도하지 않거나 참가자들을 '특정 세력'으로 모는 기성 언론에는 절대 실리지 않는 글이다.
무명의 시민이 올린 글이 하나의 여론으로, 새로운 정보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문화방송>의 간판 토론 프로그램 '100분 토론'은 아고라 토론게시판에 오르는 글을 방송 중간 '누리꾼 의견' 코너에서 적극 반영한다. 김이태 책임연구원이 정부의 4대강 정비 계획이 대운하 추진이었음을 폭로한 곳도 아고라 토론게시판이었다.
아고라는 누리꾼들의 '말'만이 오가는 곳이 아니다. 누리꾼들은 아고라에서 서명을 통해 청원 운동에 나선다.
이제는 유명인사가 된 고교 2학년 '안단테'군은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1000만 명을 목표로 지난달 6일 시작된 이 운동에 28일 현재 133만여 명이 서명했다. 김이태 연구원의 양심선언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태 연구원을 지킵시다"는 서명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아고라는 사방에 흩어진 누리꾼 여론이 구체화되는 최종 장소 중 하나다. 이곳은 말 그대로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고대 그리스의 야외 집회장. 직접 민주주의가 일상에 녹아들던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는 "더 이상 인터넷 여론은 '괴담'이라는 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방송 등으로 진화하는 데다 다양한 언론사의 정보를 모아 사실을 전달하는 능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중파 송출이 끝나도 인터넷은 On Air
집중 촛불 집회일이었던 지난 토요일. 옛 동아일보 사옥 앞에 진보신당의 '칼라TV'가 자리를 잡았다. 진보신당 홍보대사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당원 '컬트조'가 익숙한 자세로 마이크를 들었다. 이들은 집회 내내 지나가는 시민을 현장 섭외해 카메라 앞에 앉혔다.
집회가 끝난 다음에도 카메라는 꺼지지 않았다. 진중권 교수는 마이크를 들고 도로 농성에 나선 시민 사이로 뛰어들었다.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인터넷으로 중계됐다. 같은 시각 케이블 뉴스채널 <YTN>에는 이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TV를 끄고 모니터를 켰다.
인터넷 방송사이트 '아프리카'에는 칼라TV 방송을 생중계하는 방이 순식간에 수십 군데 개설됐다. 수천 명의 누리꾼이 새벽 내내 방송을 시청했다. 새벽 3시가 지나서도 많은 누리꾼이 전화를 걸어 의견을 제시했다. 공중파 TV의 토론 방송에서나 보던 모습을 누리꾼들은 자연스럽게 재현했다.
방송의 효과는 사실 전달에만 그치지 않았다. 방송 중계가 원활하지 않자 즉석에서 누리꾼이 "중계 방송 채널을 바꿔보라"고 요구했다. 진행자는 말을 따랐다. 경찰의 진압 모습을 보고 흥분한 누리꾼 일부는 "현장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방송에서 들리는 격앙된 리포터의 목소리와 현장 상황을 전달하는 문구에 몇몇 누리꾼이 택시를 타고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말 그대로 방송과 시청자의 상호 소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26일 집회에서 만난 대학교 3학년생 이모(25) 씨는 "가장 믿을만한 방송 매체가 아프리카TV인 것 같다"며 "다른 방송사는 시민이 경찰에 맞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데 아프리카TV에서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방송의 위력에 제작자들도 적잖이 고무된 모습이다. 칼라TV 제작진은 집중 집회(매주 수요일, 토요일) 때마다 카메라를 돌린다. 아프리카는 칼라TV의 성공 사례를 보고 방송 시청 인원을 2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렸다. 아프리카는 아예 칼라TV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도 원활한 TV 중계를 위해 이전에 일하던 관련 인력을 다시 영입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인터넷 여론은 과연 선동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 인터넷 게시판에는 어떤 언론사 기사보다 더 생생함이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전혀 편집이 되지 않은 방송이 새벽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다양한 의견이 인터넷 여론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괴담이 떠도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방송>은 전날 '9시 뉴스데스크'에서 인터넷 여론에 대해 "누리꾼의 참여를 높이지만 유언비어의 통로로 쓰이는 역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언론은 아예 인터넷을 '괴담'의 배후세력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경제>는 다음 아고라를 이번 시위의 '컨트롤타워'로 지목하며 "사실상 시위를 전면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역시 아고라를 '선동적인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 인터넷 여론의 심각성은 여러 번 거론된 바 있다. 지난 2005년 서울중앙지검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70% 이상"이라는 점을 들었다. 누리꾼의 쏠림 현상이 사법적 근거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른바 '마녀 사냥'식 여론 몰이의 위험성도 있다. '개똥녀 사건'으로 한 개인은 온 누리꾼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다. 감성적인 누리꾼들의 악플이나 개인정보를 훼손하는 수준의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도 여러 번 일어났다.
그렇지만 이런 일부 사건을 이유로 인터넷 여론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민 교수는 "언론이 '마녀 사냥'이란 말을 함부로 가져다 쓰는데 마녀 사냥은 사실을 왜곡할 때나 쓰는 말이지 단순히 여론이 집단성을 띈다고 해서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마녀 사냥이란 말로 인터넷 여론의 힘을 꺾으려 하지 말고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과잉 처벌 우려를 줄이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민경배 교수는 오히려 정보의 편향성은 주류 언론이 더 강하다고 비판했다. 누리꾼의 이해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민 교수는 강조했다.
"모든 여론은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누리꾼이 인터넷을 통해 '골고루'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과장된 정보나 흔히 말하는 '괴담'이 나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개개인에 맡겨야 하며 일부 사례를 근거로 누리꾼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누리꾼은 특정 매체만으로 세상을 읽는 과거 세대에 비해 훨씬 더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오히려 언론사의 게이트키핑이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그렇지 않은가? 일정한 팩트를 뺀 상태에서 보도가 나갈 수 있고 내용 자체를 왜곡해버릴 가능성도 높다. 인터넷은 다르다. 누리꾼의 개인 방송으로 우리는 집회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게 됐다. 인터넷 여론의 강세 현상은 일부 언론이 특정 사안을 입맛에 맞게 몰아가는 것을 훌륭히 방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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