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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증권가 고위관료 영입경쟁은 '바람막이용'?

자통법 시행 앞두고 생존경쟁 치열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감독 당국의 초점이 '증권사 관리'에서 '생존 경쟁'으로 맞춰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갈수록 경쟁이 격해지고 있는 증권업계의 관심도 시장 재편에 대비한 생존으로 옮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증권사들의 잇따른 전직 고위관료 영입도 만약을 대비한 '바람막이용' 성격이 짙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자통법은 내년 2월 발효될 예정인 새 금융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하나의 금융회사에서 다양한 금융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 선물회사, 종금사 등 그 동안 각 금융거래 영역에 따라 나뉘어 있던 법이 자통법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현재 증권업은 증권거래법의 규제를, 보험회사는 보험업법의 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제2 금융권(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권)은 이 법의 통과에 따라 골드만삭스, 모건과 같은 대형 투자회사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밥상에 달려드는 놈이 많으니 배가 꺼질 수밖에"

지난 9일 금융위원회는 총 8개사의 증권업 신규 진출을 승인했다. IBK증권, SC제일투자증권은 종합 증권업체로 뛰어들게 됐다. 2002년 BNP파리바를 마지막으로 신규진입이 끊겼던 이 시장에 6년 만에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한 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증권회사는 총 62개사로 늘어나게 됐다. 주식거래규모가 2007회계연도에 전년대비 69% 가량 늘어나긴 했지만 경쟁 강도도 그만큼 강해진 것이다.

특히 고객 수 확대를 위해 일선증권사들이 앞 다퉈 위탁매매 수수료율을 낮추는 중이라 증권사간 경쟁은 생존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난 2일 증권업협회·증권선물거래소·증권예탁결제원·선물협회 등 4개 유관기관이 증권·선물회사로부터 받는 수수료율을 20% 일괄 인하하기로 한 데 따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첫 신호탄은 하나대투증권이 쏘았다. 지난달 하나대투증권이 온라인거래 수수료율을 0.015%로 낮춘데 이어 한국, 동양, 이트레이드증권 등이 연이어 같은 수준으로 수수료율을 낮췄다.

대형증권사들은 한동안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증권유관기관의 수수료율 인하 방침에 따라 삼성, 현대증권이 지난 13일 온·오프라인 수수료율을 모두 낮추기로 했다. 지난 15일에는 대우증권도 동참했다.

안 그래도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생존 능력 시험에 들어간 증권사들 사이에서는 추가 인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말 그대로 '박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16일 "밥상에 달려드는 놈이 많으니 덩치 큰 놈이 자기 밥그릇 안 뺏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라며 "덩치가 작은 놈은 밥상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기업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시각에 동의한다. 푸르덴셜증권 성병수 연구원은 "수수료율 인하 경쟁에 대형증권사까지 동참하면서 덩치가 작고 위탁매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온라인 증권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확보 고객이 적거나 수익구조 다변화에 더딘 증권사부터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말이다.

자통법 시행 앞둔 자연스러운 과정…"시장 경쟁 유도"
▲ 미국 증권사 총 수익 중 위탁매매 비중은 1975년 이행된 수수료 전면 자율화 조치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수익구조가 다변화됐음을 뜻한다.ⓒ굿모닝신한증권

금융 감독 당국은 이 같은 변화를 방관하고 있다. 어차피 내년 2월 자통법이 발효되면 일어날 지각변동의 전조라는 해석이다.

한 감독당국 관계자는 "증권시장 경쟁 격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시장 자율에 맡겨 살아남는 업체의 역량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 위탁 영업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리스크 중심의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감독 방향을 설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 담당 연구원 또한 "정부 입장은 자통법 발효 전에 경쟁력 없는 증권사는 일찍 도태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수수료 자율화 경쟁을 유도하는 쪽으로 스탠스(입장)를 맞추는 분위기"라고 언급했다.

수수료 자율화 경쟁은 다른 나라에서도 대형 투자은행화로 가는 길목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지금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의 박선호 수석연구원은 지난 3월 21일 낸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1975년 수수료 자유화 시행 이후, 위탁매매부문의 수익성이 낮아진 데다 주식시장 침체까지 겹쳐 많은 증권사가 도태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증권사는 대형 투자은행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증권사 "실력은 부족하고…'바람막이' 두르자"

하지만 위탁매매로 편하게 돈을 벌어온 국내 증권사들이 과연 업계 내 경쟁만으로 얼마나 '선진화'할 것이냐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실력 없는 증권사가 덩치만 커진다고 선진 금융 기법을 선보일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당장 대우조선해양 매각 주간사 선정 과정에서도 국내 증권사는 골드만삭스에 밀려 명함을 내밀지도 못한 게 현실이다.
▲ 자통법 시행은 증권가 이합집산을 이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쟁구도 강화와 수수료 인하 경쟁 등에서 이미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미래가 그만큼 더 불안해진 것이다.ⓒ뉴시스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 극단적으로 위탁매매에 쏠려 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 수수료 수입 가운데 위탁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었다. 특히 현대증권의 경우 80%가 넘었다. 대우증권도 76%대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솔직히 위탁영업 말고는 할 능력도 없는 게 현실인데 덩치만 키운다고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다들 비슷한 실력의 증권사끼리 '도토리 키재기' 하다 외국계만 좋아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들이 앞다퉈 전직 고위관료를 영입하는 것은 이 같은 현실에서 증권사들이 선택한 '위험관리'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불투명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바람막이'를 치자는 것이다.

특히 증권사가 스카우트하는 관료 중 일부는 증권업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도 있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일부 재벌 기업들이 기업 고유 업무와는 상관없이 전직 법조인, 고위관료 등을 쓸어가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바람은 대부분 증권사에서 일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투자증권의 최대주주인 한국금융지주는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신임 회장으로 내정했다. 현대증권은 최경수 전 조달청장(차관급)을 새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동양종금증권은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대신증권은 김성호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새 사외이사로 예정했다. 한화증권은 김종민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키움증권은 오영호 전 산자부 차관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이밖에 SK증권과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등도 전 금감원 출신 인사를 줄줄이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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