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한미 FTA 문제도 '생명'의 문제"
- 정부의 예상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수입 제한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낭설'이라고 국민에게 말한다. 국민들이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나. 거기다 대통령이 기름을 들이부었다. '값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으라'고 하니 국민들의 분노가 커진 것이다. 집회가 앞으로도 꽤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본다."
- 미국이 왜 이렇게 쇠고기 수출에 집착하나?
"지난 2003년 12월, 광우병 발병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됐는데, 당시 우리나라에 수입되던 미국산 쇠고기 물량이 8억 달러어치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미국 축산업자들이 재개방 압력을 넣는 것은 당연하다. 돈이 되니까."
- 이번 쇠고기 문제의 단초는 결국 노무현 정권이 제공한 것 아닌가?
"그렇다. 노무현 정권이 무리하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집착하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의 빌미를 마련했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추진을 위해 미국 정부에 매달렸는데, 느긋한 입장이었던 미국이 4대 선결 조건 양보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그 뒤 양국이 FTA 비준만 남겨놓은 상태가 되자, 미국이 재차 완전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시장 개방 의지로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나?
"물론 월령별 제한 문제 등에서 노 정권과 지금 정부의 차이는 있다. 그렇다고 노 정권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작년 3월 29일 쇠고기 시장 개방을 놓고 부시 대통령과 전화를 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수입 확대 조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지금 '설거지' 문제로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이 싸우고 있는데 그 정도로 중요한 차이는 없다고 본다."
- 정부에서는 일관되게 한미FTA 문제와 쇠고기 수입 문제는 별개라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부의 공식 입장이 변하는 것을 보라. 4대 선결조 건을 부정하다 선결 조건과 FTA가 연계됐음을 증명하는 문서가 나오니 말을 바꾼다. 이번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중 타결됐다. 뻔하지 않나?"
-한미 FTA는 결국 우리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한미 FTA를 추진하는, 혹은 그에 동조하는 세력을 보라. 대기업, 경제 관료, 그리고 보수 언론이다. 이른바 '지배 3각 동맹'이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도 미국과의 FTA를 추진한 세력은 지배 세력이었다. 그들이 FTA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구히 이 나라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권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바뀔 것이 없다. 한미 FTA는 사실상 우리나라 지배 3각 동맹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 쇠고기 문제는 생명에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을 국민들이 가져 이렇게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한미 FTA 문제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한미 FTA 문제도 결국 '생명'에 직결된 문제다. 정부의 태도를 보라.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려 했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부랴부랴 보류 입장을 밝혔다. 의지가 있다는 얘기다. FTA를 비준할 경우 약값 폭등은 불을 보듯 번하다. 백혈병 등 난치병에 쓰이는 약값이 더 비싸질 것이다. 교육 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도 모두 같은 선상에서 'FTA 체제'를 위해 이뤄지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다. 국민도 이를 깨닫고 다시 나서게 될 것이다."
- FTA는 먼 문제고 생명은 가까운 문제다. 거리가 있어 보인다.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한미 FTA 체결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기 위해 활동을 해왔다. 매우 힘들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FTA와 생명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당장 이번 쇠고기 문제에 분노를 느낀 국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PD수첩>을 보라. 유전자 조작 작물(GMO) 문제, 의료 보험 민영화 문제 등의 현안도 언론이 성실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인식하게 된다. 국민들이 문제에 대한 인식만 한다면 쇠고기 문제처럼 '공동의 길'이 트일 것이다."
진중권 "저개발 정치에서 과개발 정치로 이행하는 과정"
-정부가 여론을 달래기 위해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홍보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는 비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부터 시식해보라는 말이 나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통령부터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이 잔뜩 든 미국산 쇠고기를 가족과 함께 먹어보라. 그래야 홍보다(웃음). MB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려 하기 전에 과연 자기 가족에게 먹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라. 오늘 방송 때 한 아이의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그 어머니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내 아이에게 없던 위험이 생기는 음식을 먹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게 정답이다. 정부는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다."
- 정부가 홍보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MB 때문이다. MB의 특징은 '나만 옳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국민을 개조의 대상으로 본다. '옳지 않은' 국민을 개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틀렸다. 자기만 바꾸면 된다."
-정부는 홍보와 함께 규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PD수첩>을 고소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가 포털사이트에 댓글 삭제를 요청한 것이 예다. 이를 어찌봐야 하나?
"진압 작전이다. 말 그대로 80년대스럽다. 정부의 진압 작전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이뤄지는 듯하다. 첫 번째로 경찰을 동원해 '음모'의 배후 세력을 찾고 있다. 유언비어 유포죄는 법에도 근거가 없는 것인데 저런다. 준법 정신이 없다. 두 번째로 교육감을 동원해 애들을 빨갱이로 몬다. 세 번째 포털사이트의 댓글마저 없애려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 과정에서 공무원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공무원이 대통령의 머슴이 돼버렸다."
-실제 누리꾼들은 분노와 함께 위기의식을 느끼는 듯하다.
"그렇다. 노무현 정권 때와 다른 현상이 하나 느껴지는데, 누리꾼들이 나를 걱정하는 댓글을 올린다는 거다. 누리꾼들이 무의식적으로 정부의 위협에 노출됐음을 느낀 것이다.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는 않고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으니까. 자기와 반대되는 세력을 모조리 말 못하게 만드는 게 민주사회인가? 자기가 뭔데?"
-그런데 분노한 누리꾼들이 모인 집회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마치 콘서트장 같다.
"그렇다. 축제다. 투쟁으로서의 정치 시대가 지나가고 있고 '놀이로서의 정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저개발 정치'에서 '과개발 정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 저개발 정치는 뭐고 과개발 정치는 뭔가?
"저개발 정치는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때의 우리 정치다. 과격한 투쟁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과개발 정치의 시대를 십대와 누리꾼 등이 열었다. 놀이를 하러 나온 것이다.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켜버렸다. 여기에는 이념도 없고 '선동질 때문에 패닉에 빠진 사람'도 없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이랜드 노동자들처럼 아직도 생존의 위협에 처해 저개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저개발 정치와 과개발 정치가 혼재하는 상황이다."
- 이번 집회 과정에서 특이했던 점 중 하나는 10대가 나선 반면 20대는 조용했다는 점이다(이날 집회에는 20대가 많이 참여했다). 이를 두고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아직 파악이 안 된다.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조심스럽긴 하지만, 20대가 보수화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20대들이 박정희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박정희 밑에서 살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그럴까?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보수·진보의 틀에 맞지 않다."
- 첫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냉정하라'고 주문했다. 이들이 냉정을 지키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다만 이 사람들이 조직화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다보니 의견이 정제되지 않은 면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다. 괴담을 퍼트리지 마라. 광우병 위험을 불필요하게 전파하지도 마라. 이 두 가지를 정부와 조·중·동은 빌미삼아 역공을 펼친다. '논리적으로, 안전하게' 가야 한다. 길거리 집회의 경우, 통제가 어려우니 '자율적으로' 자제해라."
-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말을 아꼈던 것도 그 이유인가?
"그렇다. 나는 통상 전문가도, 쇠고기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독설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나는 차분하게,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안전선'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나갔다. '30개월 이하 소의 SRM을 수입하는 문제나 30개월 이상된 소를 수입하는 문제, 정부가 대책이 없다는 문제 등이 안전선이다. 그 범위 내에서 사람들은 마음껏 말해라."
-전에 지식인의 중요성을 언급한 이유도 그것 때문인가?
"전문가, 지식인이 대중의 '사수대'가 돼야 한다. 대중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이 마음껏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끔 그들이 도와줘야 한다. 대중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 보수 언론은 계속해서 색깔론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옆에 있는 학생을 가리키며) 누구의 사주 받았나? (웃음) 학생들은 성숙하다. '빨갱이'의 사주에 현혹될 애들이 아니다. 아직도 그들은 학생들이 대중을 이끌고 길거리로 나온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두 달 만에 노 전 대통령보다 더 낮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이 국면을 어떻게 해야 넘어설 수 있을까?
"결렬시켜라.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국민들은 이제 쇠고기 수입, 한미 FTA 추진 등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고 느끼고 있다."
-정부가 그렇게 잘못했나?
"현실을 보라. 부시와 브이자 그리며 사진찍는 방미 선물 얻기 위해 국민 건강을 다 포기했다. 특히 다섯 가지가 문제라고 생각된다.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게 됐다.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게 됐다. 30개월 미만 소의 경우 SRM을 들여온다. (진 교수는 나머지 두 가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강화된 사료 금지 정책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 점, 도축장을 모두 미국 정부가 지정할 수 있게 한 점, 연령 표시 의무를 면제해 준 점 등도 이번 협상의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 편집자) 고스톱 판에서 돈 잃고 개평 얻어온 셈이다. '삼청동 조기축구회 얼리버드 팀'이 나가서 미국에 5:0 스코어로 진 것이다. 지금 정부가 웃긴 게 이 따위로 대패하고서는 '말레이시아보다 잘했다'고 자랑하는 거다."
김부선 "연예인이 대중을 선동한다고? 매맞을 짓이다"
- 늦었다. (김부선 씨는 약 9시 40분 경 도착했다)
"강남에서 영화 촬영이 있었다. 영화계에 진보적 인사들이 많아 집회에 참여한다니 모두가 격려해줬다."
- 그 동안 대마초 문제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본 연예인이다.
"대마초를 미국에서는 의약품으로 판다. 이번 대선의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도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개처럼 잡아간다. 너무나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려, 대마초를 수면제처럼 이용했다. 그래서 8개월 감옥형을 선고받았다. 대마초를 피는 연예인이 위험한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부가 위험한가?"
-이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비판적이었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날 곧바로 '안티MB' 카페가 만들어졌다. 나도 그날 곧바로 카페에 가입했다. 나 카페에서 거의 운영자급이다. 정부와 보수 언론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두고 배후자를 찾는다고 하는데, 내가 배후자다." (웃음)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몇몇 연예인들의 광우병 우려 발언을 두고 '선동'이라고 표현했다.
"진짜 선동한 게 누구인가? 정부와 조·중·동이다. 그들이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들은 '구타 유발자'들이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해보자'는 듯한데,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스타가 애들보고 '모여라'한다고 애들이 모이나?"
-연예인의 정치 참여가 앞으로 활발해지길 바라나?
"당연하다. 사실 그동안 연예인은 정치 문제에 대해 아주 바짝 엎드려 있었다. 소비자(대중)를 잃을까봐 몸을 사린 것이다. 연예인을 하찮게 보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문제가 '내 일' 임을 인식하자 그들도 길거리로 나오게 됐다. 진짜 우리 일이다. 길거리에 안 나오는 연예인은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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