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밝히기 위한 삼성 특검이 지난 10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풀어야할 의혹 가운데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요, 사실 확인을 위해 홍라희씨가 사들인 미술품들이 무엇인지, 또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사들였는지 등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려면 미술품의 소재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정확한 장소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삼성가의 미술품들,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리포트>
만화의 한 장면 같은 이 그림은 팝 아트의 대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입니다.
지난 2002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따져 70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비자금 일부가 이 그림을 포함한 고가의 해외 미술품을 사들이는데 쓰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자금으로 그림을 사들인 사람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 등 삼성가의 여인들이라고 지목했습니다.
<녹취>김용철(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 : "홍라희 여사와 신세계 그룹의 이명희, 이재용씨의 장모인 박현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인 신연균 등이 비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습니다."
김 변호사가 재직했을 당시에도 홍라희씨가 그림을 사겠다며 자주 찾아와 비자금 담당자가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는 겁니다.
<녹취>김용철(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 : "저도 그렇고 여러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 그림값에 대해서.. 하도 값이 터무니없으니까 사기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도 했었죠."
삼성가가 사들이는 미술품 대금이 한 해 수백 억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얘깁니다.
그렇다면 화랑들로부터 사들인 미술품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각종 놀이기구들을 즐길 수 있는 경기도 용인의 삼성 에버랜드입니다.
에버랜드에서 위로 한창 올라간 야산 중턱에 대형 창고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일반 자재 창고로 보이는 철골 구조의 건물입니다.
이 창고 몇 개에 삼성가의 미술품들이 비밀리에 보관돼 있다고 현장을 직접 가본 한 미술품 중개인 김모씨가 KBS에 밝혀왔습니다.
<녹취>김 0 0(제보자) : "그 창고 열어보면 엄청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림에 따라 달라요. 이 공간에 1억 불도 보관할 수 있는 겁니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돼 있습니다. 우선, 창고로 진입하는 길목에 검문소가 있어
방문 목적과 신원을 확인받아야 합니다.
검문소를 통과해 창고 단지 앞까지 간다고 해도 창고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창고 단지 출입구에 경비 인력이 대기하고 있는 데다 각각의 창고마다 보안장치가 설치돼있다는 겁니다.
<녹취>제보자 : "들어갈 엄두가 안나요. 여기 세콤 경비원이 지키고 있고 문 열 때 세콤 경비원이 입회할 거거든. 여긴 다 세콤이 걸려 있어요, 문이..."
관계자나 그림을 싣고 온 차량만이 창고 문을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제보자 : "그림을 내려야 하는데 차는 다 들어갈 수 있게 돼있어요. 문이 슬라이딩이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문이 아니고 문 한 짝이 벽 길이 만해요."
창고 안에는 도서관의 책장처럼 그림을 놓아두는 선반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제보자 : "안에 그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선반으로 돼 있지. 그림 사이즈에 맞춰서 그림을 보관해야 하는데, 한 점 놓고 선반이 있고 또 한 점 놓고. 작품끼리 부딪치면 상하니까."
선반에는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쌓여 있었다는 게 제보자의 말입니다.
<녹취>제보자 : "유영국, 박수근.. 에드워드 켈리 것도 있던 것 같고 리히터 것도 있던 것 같고 그래요. 해외 있는 작가랑 국내 있는 작가랑 엄청 많은데.."
그런 건물들이 여러 동. 작품 수도 많지만 워낙 고가라 이 미술품들의 가치를 합치면 조 단위가 될 거라는 게 제보자의 추산입니다.
<녹취>제보자 : "에버랜드 창고에 조 단위가 넘어간다고. 그러니까 엄청나게 그림 많은 것 같죠? 많기도 많지만 그림이 어지간한 경우는 1억, 2억이 후딱후딱 넘어갑니다. 10억, 20억 짜리도 있잖아. 70억, 80억, 700억짜리고 나오기도 할 것 아닙니까?"
보안과 경비가 철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겁니다.
<녹취>제보자 : "진짜 무서워요. 마지막으로 지켜야할 장소가 거기라면.. 지켜야 하는 곳이다. 알라바바의.. 판도라의 문 개봉한 것처럼 파장이 크겠지."
김씨는 또 인근의 자동차 박물관이 한때 해외 미술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고 밝혔습니다.
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하기 직전 미술품을 실은 차량이 건물 뒷편에 도착하면 차량 통째로 안에 들어가도록 한 뒤 작품들을 2층으로 나르게 했다는 겁니다.
<녹취>제보자 : "무진동 차가 저 안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어요. 여기는 주로 해외 미술품, 그런 게 이 안에 들어왔고.. 왜냐하면 박스 자체가 해외에서 수입돼오는 박스들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2층 일부 공간에 자동차들이 전시돼 있어 작품들이 같은 층 다른 공간에 보관돼있거나 또 다른 제 3의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다른 제보자 이 모씨는 에버랜드 야산에 또 다른 의문의 건물이 들어섰다고 알려왔습니다. 앞서 소개한 그림 창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녹취>이 0 0(제보자) : "에버랜드 가기 좀 전이고요, 산골짜기 같은 데.. 산 사이 같은 데로 깊숙이 들어가 있고.."
이 씨가 건물에 가본 건 지난 2002년 신축공사가 끝나자 마자입니다.
<녹취>제보자 : "창고 식으로 지은 것이고.. 벽돌 같은 게 아니고요. 판넬로 대서 1층, 2층 돼있고 엘리베이터가 두 대 있고요."
이씨는 신축공사를 담당했던 삼성중공업의 현장 소장으로부터 이 건물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 주차장이고 세계의 명차들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녹취>제보자 : "소장 말로는 우리가 살면서 못 볼만한 차들이..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를 수집하는.. 그런 게 있어서 그런 차들을 한 군데 다 놓고.."
이건희 회장은 몇 년 전 한 대 수십 억원하는 부가티 르와이얄을 국내에 들여왔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런 차량을 120대나 수용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과연 이건희 회장 개인 주차장으로 지어진 것일까? 제보자 이씨는 당시 건물 내부의 습도, 온도, 먼지농도 등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삼성에서 요구한 항온, 항습 정도가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나 필요할 정도로
무척 정밀한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녹취>제보자 : "얼마나 비싼 차들이 들어오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고요. 그리고 뭔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었고."
해외 미술품들을 한때 자동차 박물관 창고에 보관한 점을 떠올리면 이곳에도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합니다. 이씨는 현장에 이르기까지 경비가 매우 삼엄해 의아했다고 합니다.
<녹취>제보자 : "제가 군대 있을 때.. 공병대 아시죠? 그거해서 전방에 신원조회하고 들어가고 해봤는데.. 그것만큼 힘들더라고요. 주민번호, 주소, 이름 해서 그쪽에서 확인 조사 거쳐서 들어갔어요."
이에 관련해 삼성측은 해당 건물들이 삼성화재가 운영하는 안내견센터와 축사, 그리고
에버랜드 행사용 도구를 넣어두는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에버랜드 관계자 : "안내견.. 개 키우는 곳 있잖아요? 맹인 안내면.. 그게 축사가 거기 있어요. 나머지는 뭐 우리 에버랜드 행사 때 쓰이는 창고.. 퍼레이드 행사 때 쓰는 창고.."
검찰은 지난해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에서 17억원이 국제 갤러리로 이체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국제 갤러리의 대표는 지난 11월 해외 출장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국제 갤러리 관계자 : "지금 휴대전화 잃어버리시고 연락이 되질 않거든요. 저희도 잘 연락 못드리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국내 최대 화랑으로 손꼽히는 현대 갤러리 등도 삼성가에 그림을 판 정황이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관련 화랑들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현대 갤러리 관계자 : "서미 갤러리랑 국제 갤러리까지는 그 얘기가 나왔는데 저희랑은 상관이 없어요."
<인터뷰>홍송원(서미 갤러리 대표) : "기자세요? 그럼, 전화 끊을게요. 죄송합니다."
올해 초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삼성 특검은 검찰 수사 때와는 달리 비자금 용처로 지목된 미술품도 주요 수사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랑 관계자들이 소환돼도 화랑계에 영향력이 막강한 삼성가에 대해 쉽게 입을 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김 00(제보자) : "화랑은 절대 콜렉터(그림 수집가)를 배반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여태껏 세금 안내고 벌어온 게 얼만데. 화상과 콜렉터는 서로 공생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삼성의 미술관들은 지난 1965년 개관한 경기도 용인의 호암 미술관을 비롯해 서울의 호암, 로댕 갤러리, 리움미술관 등 4곳으로 모두 삼성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미술관이나 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작품들은 극히 일부만 공개돼 있을 뿐입니다. 관계당국에 회계보고도 하고 있지 않아 재단의 미술품이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렇게 개인 소유인지 재단 소유인지 불명확한 고가의 미술품들은 재산상속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녹취>김 0 0(제보자) : "현금은 10억 원 넘겨주면 각종 증여세나 각종 상속세가 부과되지만 그림은 없어요. 그런 그림 100점 들어가면 천 억인데 세금이 없는 거예요."
<인터뷰>이성민(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간사) : "실질적으로는 어떤 미술품에 대해선 등록 자체가 잘 안되기 때문에 어떤 부를 이전하는 편법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희소가치에 따라서는 몇 배의 차익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김용철(변호사) : "작품이 작가가 사망한다고 할 지.. 유한성 때문에 가격이.. 투기도 굉장히 심하고 투자 가치도 굉장히 높아요."
삼성 일가족이 초고가의 그림들을 과연 무슨 돈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사들였는지를 밝히는 일은 삼성 비자금 수사의 핵심 단서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홍라희씨가 관장인 리움 미술관에 대해 삼성 특검의 압수수색설이 나오는 가운데 에버랜드 안에 있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삼성가의 이른바 비밀 그림창고 역시 베일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