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진영의 대표적 이론적·실천적 연구소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소장 김유선,이사장 이원보)는 13일 저녁 진보진영의 대표적 학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초청, '17대 총선과 향후 노동운동의 과제'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기조발제를 맡은 김동춘 교수외에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이 참여해, 2시간 동안 활발한 토론을 가졌다.
***김동춘교수, "민노당 원내진출, 50년 보수독점정치체제 균열 가져와"**
이날 토론은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17대 총선의 의미에 대한 김동춘 교수의 평가와 제언으로 시작됐다. 김동춘 교수는 먼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17대 총선의 가장 유의미한 정치적 사건으로 꼽았다.
김교수는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에 대해 "50여년간 지속된 냉전정치의 이탈이란 점에서 우익독재체제 붕괴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한 뒤 "20세기 중반부터 노골화된 미국의 동아시아 구식민지 재편과정이 한국적으로 귀결된 우익독재체제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마침내 균열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과거 진보당이나 사회대중당 등 진보이념을 표방한 정당들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대중정당적 성격보다는 소수 이념지향적 엘리트 분파들의 정당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민주노동당은 해방이래 명실상부한 최초의 진보정당"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70년대 이후 학생-노동운동 역량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것도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해방이후 정치사'란 큰 틀에서 평가할 부분이 많지만,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단기적으로 87년 6월항쟁의 성과가 굴절된 형태로 나타난 90년대의 보수우위의 정치지형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의미부여했다.
***"시민사회운동, 새로운 재편 필요"**
김교수는 90년대이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민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재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기존 시민사회운동은 보수독점정당체제에서 이들이 담보하지 못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변해 왔기 때문에, 90년대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상당히 준정당적 성격이 강했다.
김교수는 "제도 정치권에 민주노동당이 진출했고 상대적으로 개혁적 성향이 있는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만큼 90년대식의 시민사회운동 즉 준정당적인 운동은 점차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며 "한국의 시민사회운동도 점차 서구의 신사회운동처럼 여성, 환경, 교육 등을 중심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교수는 시민사회운동의 구체적 지향으로 ▲감시운동 강화 ▲주민자치운동 강화 ▲국제성-전문성 강화 등을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계급정치를 할 것인가 국민정치를 할 것인가"**
이날 토론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향후 직면하게 될 문제에 대한 김교수의 지적은 자못 날카로왔다.
김교수는 우선 민주노동당이 직면하게 될 문제로 '계급정치와 국민정치간 딜레마'를 꼽았다.
김교수에 따르면, 진보정당은 초창기에는 당의 정체성과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계급정치를 강화해야 하지만, 원내에서 자리가 잡히는 순간 계급을 뛰어넘어 국민적 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김교수는 유럽의 진보정당역사를 예로 들면서 "선거 때는 보다 많은 표를 확보하기 위해 비(非)노동층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고, 비(非)선거기간에는 노동자들에게 계급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선명한 노선이 필요하다"며 "이런 상반된 경향은 선거가 반복될수록 점차 이념적 노선의 우경화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교수는 "한국정치사가 서구에 비해 압축적으로 성장한 만큼, 유럽에서 1백여년에 걸쳐 나타난 진보정당의 우경화가 한국에서는 불과 수년 사이에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교수의 지적에 대해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은 "유럽정치사에서 나타난 진보정당의 우경화 현상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에게 있어서 벌써부터 그런 걱정은 너무 이르다"고 반박했다.
***"노조조직율 너무 낮아 수권정당 어려워"**
김교수는 또 민주노동당이 당장 직면할 딜레마로 '자본주의내 진보정당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교수는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이란 것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침체의 장기화 때문에 출현한 이데올로기"라면서 "체제내 진보정당은 경제위기가 오면 이념적 후퇴가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이나 언론들이 공격하는 경제위기론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책임있는 답변'이란 속성이 바로 '자본 주도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는 지적이다.
그밖에 김교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민주노동당의 조직적-재정적 바탕인 노조조직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교수는 "한국은 노조조직율이 낮을뿐 아니라(11%), 조직노동자들 중에서도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도 매우 적다(3%)"며 "이 상태로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김교수는 "민노당은 정당으로서의 역할 이전에 노동조직자, 혹은 사회운동체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김교수는 "한국사회는 작업장 밖에만 나가면 친자본적 문화로 포위되어 있다"면서 "이러한 반노동문화의 청산을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교육과 미디어가 친노동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작업해야 한다"는 게 김교수 주문이었다.
***"민주노총, 노조주의를 넘어 복지-인권 등 사회운동으로 외연 넓혀야"**
김교수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먼저 혹독한 비판으로 시작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전국단위 중앙노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조 지도부의 사고가 여전히 거리투쟁 중심의 80년대 말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노조로서의 자리매김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정책, 교육, 선전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그는 "더이상 생산직 주도의 노동사회가 아니다"며 "70년대와 80년대하면, YH여성노동자와 현대중공업의 대공장노동자를 떠올렸다면 2000년대에는 비정규노동자가 주요 노동계층이 될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정규직-대공장을 기반을 했던) 민주노총의 공식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민주노총의 대표성을 지적했다. 김교수는 "민주노총의 조직률은 10%정도에 불과하다"며 "현실적으로 조직률을 높일 수 없다면, 민주노총은 조합원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아닌 복지운동, 인권운동, 사회운동 등으로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민노당과의 관계에서 "민주노동당은 현실정치에 적응하기 위해 우경화될 수밖에 없다"며 "민노총은 민노당의 우경화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재영 민노당 정책국장은 "민노당 창당과정부터 지금까지 줄곧 민노당이 오히려 민노총보다 급진적이었던 것이 사실" 이라고 김교수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상학 민노총 정책기획실장도 "민노총조합원 중 민노당 당원이 극히 미미한 것은 노동현장내 문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면서 "조합 간부이면서도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민노총 내부의 보수성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민노당의 우경화는 불가피하다"고 재차 강조한 뒤 "민노총이 민노당의 하위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되고, 장차 민노당의 생산적 긴장관계 구축은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노당이 모든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만큼, 민노총은 나름의 독자의 정치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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