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취임도 전에 보험업법상의 금산분리 원칙 결정적으로 훼손
-자산운용규제 완화된 보험지주회사제도 도입, 보험사 지급결제업무 허용 등
-삼성의 일개 연구원이 작성했다는 '로드맵' 내용, 개편방안에 대부분 반영
오늘(27일) 재경부는 보험업법 내 보험지주회사제도 도입과 보험사의 자산운용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보험업법 개편방안은 금융산업 세부업종 중 상대적으로 가장 낙후된 것으로 평가받는 보험산업의 대형화·종합화를 유도하여 보험산업을 향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세계화·선진화를 선도하는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개편방안에는 보험지주회사의 자회사 소유규제 완화나 보험사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을 포함한 어슈어뱅킹의 도입, 자산운용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자칫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과 보험사 리스크 확대 등이 초래될 수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리 이명박 당선자가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를 공약했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현 상황에서 재경부가 서둘러 보험업법상의 금산분리 원칙을 결정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개편방안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이번 개편방안의 최대 수혜자가 삼성생명을 보유한 삼성그룹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 불거진 삼성그룹의 수많은 불법행위 의혹에 삼성생명 등의 계열금융기관이 연루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삼성그룹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은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발표된 보험업법 개편방안 중에서 상품설계의 포괄주의(negative system) 도입, 업무영역의 확대, 소비자 보호제도의 강화 등은 올해 제정된 자본시장통합법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본시장통합 제정 당시에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으나, 이번 보험업법 개편방안에 핵심적인 요소로 들어간 것이 바로 보험지주회사 등 비은행지주회사 허용과 관련한 내용이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미 2007년 10월 1일 발표한 경제개혁리포트 2007-12호 「보험지주회사 도입 주장의 문제점」에서 정부의 사전적 소유규제 완화를 전제로 한 보험지주회사 제도 도입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리포트에서 정부와 재계가 비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소유규제 완화의 근거로 삼는 미국의 보험지주회사 체계와 국내 금융지주회사 체계를 비교 분석하고, 보험업과 은행업간 자산운용에 있어서의 리스크 차이를 감안할 때, 모든 금융지주회사에 일률적으로 은행지주회사와 같은 수준의 소유규제를 하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임을 지적하였다.
다만 우리나라 자산운용규제의 허술함, 금융감독기구 및 사법기구에 대한 신뢰의 결여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의 버크셔 해서웨이나 GE캐피탈처럼 사전적 규제 없이 사후적 규율만으로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 간의 분리를 사실상 실현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미국과 같은 엄격한 자산운용규제1)에 더해, 이중대표소송의 도입 등 법위반 행위에 대한 사후적 구제 수단이 충분히 보완된 이후에나 비은행지주회사 허용 및 이에 대한 자회사 소유규제 완화 등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1) 미국 뉴욕주 보험법의 경우 보험사의 자산운용 내역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세한 공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총적격자산의 5%를 초과하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는 보험감독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총적격자산의 0.5%∼5%에 이르는 특수관계인간 거래는 보험감독관에 사전보고토록 하고 30일 이내에 보험감독관이 불승인조치를 내리지 않는 경우에만 거래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보험법은 비록 소유에 대한 사전적 규제는 없지만, 엄격한 공시제도와 자산운용규제를 통해 사실상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사전 보완장치 없이 서둘러 보험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결국 삼성에버랜드가 보험지주회사가 되는 경우에도 그 자회사인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손자회사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즉 삼성그룹의 현 소유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재경부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보험지주회사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삼성그룹이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삼성그룹의 보험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 중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의 출자고리를 해소하는 것은 지배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해소 가능하다. 즉 보험업법만 개정되면, 삼성에버랜드의 보험지주회사 전환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 소유(지배) 규제를 완화할 경우 비은행지주회사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여 금산분리 원칙의 근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개편방안에는 보험사에 대한 지급결제업무 허용 등 어슈어뱅킹을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대로 보험업법이 개정될 경우 보험사는 은행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은행업무의 일부를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삼성그룹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삼성증권을 통해 지급결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 보험업법 개편방안이 실현될 경우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를 통해서도 지급결제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그룹이 은행업 진출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한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 소속)이 200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삼성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2005.5)'의 내용과 이번 보험업법 개편방안은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여, 이번 보험업법 개정 작업도 삼성의 광범위한 로비의 결과물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문건이 공개된 당시 삼성 측은 이 문건이 삼성 그룹 내에서 작성된 것은 시인했으나, 일개 연구원의 아이디어 정도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삼성의 해명대로라면 일개 연구원의 아이디어가 향후 우리나라 보험업, 나아가 금융업의 틀을 바꿀 이번 보험업법 개편 방안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이번에도 삼성계열 연구소의 정책 대안을 차용한 것인가? 아니면 재경부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차기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것인가?
삼성 로드맵 문건에서도 확인되듯이, 자회사 소유규제가 완화된 비은행지주회사가 도입될 경우 삼성으로서는 현재의 그룹 지배권에 큰 변화나 비용 지출 없이 지주회사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번 보험업법 개편방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또 다시 삼성그룹이 되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부 스스로 천명한 금산분리 원칙의 근간 유지를 위해서는 보험업법 개정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검토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