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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의 72세 아버지 만나고 병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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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의 72세 아버지 만나고 병 났다"

아직도 이땅엔 노동자 분신이...전태일 37주기 추도식

37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한 고 전태일 열사의 추도식이 13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노동조합의 당연한 권리인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기공 정해진 씨의 장례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매년 열리는 추도식이지만 올해는 유독 차가운 날씨만큼 더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지난 봄 허세욱 씨에 이어 정해진 씨가 최근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떠났고 노점상 이근재 씨가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서울우유 화물차 운전기사 고철환 씨가 분신 후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 열린 추도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소선 "메마른 약자 위로하고 살피지 못했다"

몸이 불편해 지난 11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이날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소선 여사는 "정해진의 72세 아버지를 만나고 너무 충격을 받아 병이 났다"고 털어왔다.

"아들과 둘이 살다가 아들을 먼저 보낸 나이 일흔 둘의 아버지가 '나는 경비원으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아들 시신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참 약자는 메말랐구나. 정 많은 사람의 상처와 인권을 현실이 얼마나 짓밟고 있는가."

이 여사는 "우리도 그러고 있구나 싶어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며 "그런 사람들을 살피고 위로하지 못해 비정규직과 같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을 고백하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 이소선 여사는 13일 전태일 열사 37주기 추도식에서 "정해진의 72세 아버지를 만나고 너무 충격을 받아 병이 났다"고 털어왔다.ⓒ프레시안

인천 전기업체 노사 단체협약 합의…14일 정해진 씨 장례

정해진 씨의 장례는 14일 치러질 예정이다. 인천 전기업체 노사가 지난 10일 주44시간 근로 및 토요 격주 휴무 등의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안에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당초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사는 또 회사측이 유가족에게 약 2억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데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당신이 가신 지 37년 후인 오늘 또 다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 분신한 한 사람을 내일이면 당신 곁으로 또 보내드리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위원장은 "열사가 풀빵을 사주던 나이 어린 시다들을 오늘날도 목격할 수 있다"며 "아직도 새벽 4시부터 일하면서도 월급 80만 원 받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어린 여성이 있고 여전히 화장실도 없는 곳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도 있다"고 말했다.

37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 ⓒ프레시안

"노동운동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더욱이 현재의 기업별노조는 이 같은 '밑바닥 노동자'들을 제대로 껴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광택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 같은 태도를 꼬집었다.

이광택 이사장은 "중소영세업체와 대기업 사이에 노동조건 격차가 확대되고 있지만 노조 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고 조합원 구성이 정규직 중심이며 외환위기 이후 밀어닥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광풍 앞에서 조합원의 요구와 이익을 옹호하기에도 급급하다"며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장래 역시 비관적임을 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이 시점에서 노동운동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기업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노동운동은 '계급적 연대'를 기치로 노동시장 정책을, '사회적 연대'를 기치로 사회경제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은 같은 자리에 있어도 마음은 딴 곳에 있는 양대 노총
▲ 양대 노총 위원장들은 몸은 한 자리에 나란히 서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프레시안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노동운동의 어두운 장래를 우려했지만 양대 노총은 여전히 갈라서 있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해 '9.11 노사관계 로드맵 합의' 이후 엇갈린 행보가 1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추도식에서도 이소선 여사가 "양대 노총이 힘을 합치지도 않고 노동자가 힘이 모자란다고 하는 것은 다 핑계"라며 단결을 강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전태일 36주기…이소선 여사, 양대 노총 '질타') 이날도 한상렬 목사가 추모예배를 통해 "열사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첫 걸음은 단결이며 단결의 첫 걸음은 한 몸임을 깨닫는 것"이라며 "다르면 무엇이 다르겠냐"고 호소했다.

하지만 대선 뿐 아니라 각종 노동계 현안을 놓고서도 엇갈린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양대 노총 위원장들은 몸은 한 자리에 나란히 서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추도사도 양대 노총의 단결이 쉬운 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용득 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열사의 정신을 거울로 비유했을 때 그 거울 앞에 노동계와 소외받는 민중이 다 서 있다면 왜 하나 되지 않겠냐"며 "그러나 거울 뒤편에서 열사의 그림자만 보고 내 허물을 보기 전에 남의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거울 앞뒤로 나뉘어 서 있어 함께 못 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어 "한국노총이 혹시 거울 뒷면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서로 나누지 말고 열사의 거울 앞에 서서 우리 모두 되돌아봐야하지 않나"라면서도 "앞으로의 37년도 이렇게 열사의 거울 앞뒤에 나뉘어 서 있으면 안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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