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1월 1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이재용씨의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을 담은 문건을 공개하였다. (☞ 문건 전문 보기 :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이 문건에 기록된 이재용씨의 유가증권 거래 내역은 외부인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항으로 이는 이 문건이 분명한 삼성의 내부문건임을 보여준다. 삼성 측은 이 문건에 대해 2003년 말 삼성에버랜드 CB 헐값발행 사건 관련하여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에 제출된 자료라고 해명하였는데 이는 이 문건에 기록된 유가증권 거래 내역이 모두 사실임과 이 문건이 삼성측에 의하여 작성된 것임을 시인한 것이다.
유학생 신분이었던 이재용씨가 1994년 10월부터 1999년 4월까지 4년 반 동안 28회에 걸친 계열사 주식 거래를 독자적인 판단 하에 수행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문건은 이재용씨의 개인 재산 형성 및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 구조본의 치밀한 기획에 의해 집행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에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재용씨의 재산형성 과정 전반에 걸쳐 엄정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함을 촉구한다. 특히 구조본의 기획ㆍ집행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직접 소환 조사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어제 사제단이 공개한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문건은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문건에 담긴 총 28회의 거래 각각에서 그 거래일자, 거래주식 수, 거래가격, 기존 주주 이름, 실권 주주 이름 등에 대한 구체적 내역은(특히 비상장 주식의 경우) 외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삼성 측도 시인했듯이, 이 문건에 담긴 거래내역은 100% 사실이다. 따라서 이재용 씨의 재산형성 과정을 낱낱이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유학생 신분인 이재용 씨가 증여세 납부 이후 단돈(!) 45억원으로 어떻게 1조가 넘는 재산을 형성하였는가를 생생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성측은 이 문건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2003년 말 사후적으로 작성된 것일 뿐,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구조본에서 사전에 작성, 집행한 기획서'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여 삼성측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차원의 조직적 공모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996년 12월 삼성에버랜드 CB 발행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조직적 공모가 없었다는 삼성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허태학ㆍ박노빈 등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진이 CB를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발행한 의사결정, 제일모직ㆍ삼성물산 등의 주주계열사들이 이 유리한 조건의 CB를 실권한 의사결정, 이재용씨가 이 실권CB를 인수하기로 한 의사결정 등이 모두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개별기업의 의사결정이 총수를 정점으로 한 구조본의 진두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던 재벌의 경영관행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전혀 신뢰성이 없다.
더 나아가 삼성에버랜드 CB뿐 아니라, 지난 4년 반 동안 이루어진 28번의 계열사 주식 거래에서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삼성이 주장한다면, 이는 현재의 곤란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얄팍한 변명에 불과하다.
물론 어제 사제단이 공개한 문건에는 구조본의 개입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서술은 없다. 그러나 이 문건이 구조본의 개입 등 그룹차원의 조직적 공모를 강력히 시사하는 만큼, 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공익제보자가 아니라, 수사권한을 가진 특별검사의 몫이다.
한편 이재용씨의 재산형성 과정에 구조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문건이 있다. 2001년 말 e삼성의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와 관련하여 구조본이 관련 계열사 임직원에게 대응방침을 지시한 문건을 김용철 변호사가 갖고 있다. 이 문건은 2001년 11월 19일 YTN이 그 일부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문건 전체가 확인된 것이다.
이 e삼성 관련 대응문건은, '구조본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구조본 명함을 폐기 하는 등 구조본의 개입 사실 자체를 은폐'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항을 구조본이 직접 지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재용씨의 재산형성과 관련한 구조본의 직접 개입 및 은폐 시도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비단 구조본의 개입과 은폐 시도가 e삼성의 경우에만 있었겠는가? 1994년 이후 1999년까지의 유가증권 거래가 이재용씨 재산형성 과정의 골간임을 감안하면, 이 역시 구조본에 의해 집행되었고, 이 역시 e삼성의 경우처럼 검찰 수사를 대비하기 위해 구조본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오늘 사제단이 공개한 이재용씨의 유가증권 거래 문건에는 삼성그룹 임원들의 명단이 대거 등장한다. 이 역시 처음 공개되는 사실들이다. 이들 주식이 실제로 당해 임원들의 소유였는지 아니면 차명주식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국감에서 차명주식이 문제가 된 두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차명주식은 우리나라 재벌 전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관행이다.
이들 삼성그룹 임원 명의의 주식이 차명주식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국세청이 이들 주식에 대한 조사 및 과세 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국세청이 만약 차명주식은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조사도 하지 않고, 수사를 요구할 수 없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문제를 덮으려 한다면, 이는 그들 스스로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이 온갖 불법 주식거래를 일삼았으며, 이에 따른 법률적 논란을 모면하기 위해 삼성이 검찰 등 국가 공권력을 농락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어제 공개한 삼성이 관리한 '뇌물검사' 명단에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와 이귀남 대검중수부장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행 검찰 조직은 더 이상 이 사안의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들은 오히려 수사의 대상일 뿐이다.
'X파일' 사건이나 삼성에버랜드 CB 불법발행과 관련하여 이건회 회장 소환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던 검찰이 그 결과에 따라 검찰 조직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뇌물 수수의혹이 제기된 검찰총장과 검찰 수뇌부가 지휘하여 내린 결론에 수긍할 국민도 없다.
결국 현재로서는 특별검사를 통한 수사가 유일한 해법이다. 정치권은 조속히 특별검사법안을 제정하여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검사의 추천권한과 관련하여, 경제개혁연대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와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삼성입장에 서서 공익제보자 흠집 내기에만 골몰하는 현재의 변협은 추천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삼성과 기존의 검찰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인사를 특별검사로 앉히는 것이 궁극적으로 특별검사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게 특별검사추천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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