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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환자와 소비자는 불안하다"

[의제27-④] 공공의료․소비자 보호․선거구제 개혁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의제 27)은 진보와 개혁의 가치를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다음의 의제 및 정책을 적극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앞으로 우리는 <프레시안>을 통해 진보와 개혁을 위한 27대 의제를 발표할 것이다. 이 의제를 놓고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

의제 10: 공공의료 비중 30%,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85% 달성 (이상이 제주대 교수)

우리나라 사회경제의 전반적 양극화 추세를 반영하듯 사회계층 간 건강수준의 양극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 비해 병에 더 많이 걸리고 사망할 확률도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의료이용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자들에 비해 유의하게 작다. 우리나라는 약 3.6%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의료급여제도를, 나머지 국민들에게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적용함으로써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적 의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사회계층간 의료이용의 불평등'은 지속되고 있다.

노령화의 급속한 진행, 고가 의료기술의 발달과 고급의료에 대한 국민적 욕구 증대로 장차 국민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가 주도하는 비용 유발형의 의료제공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리추구 성향이 강한 민간의료 중심의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돈벌이가 잘 되는 일반 대형병원 시설의 과잉 공급을 초래하고, 질병 예방이나 건강 증진보다는 치료 중심의 낭비적 의료체계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우리나라는 2000년 통합의료보험 관리운영방식인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의료보장제도를 갖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세계 5위의 국민건강 성과 지표를 달성(컨퍼런스 보드, 캐나다, 2006)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가계의 의료비 걱정을 없애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의료보장체계는 여전히 부실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의료급여는 턱없이 부족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OECD 국가들 평균보다 20% 포인트나 떨어진 64%에 불과하다. 이것으로는 서민가계의 의료 불안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 서울대병원 전경 ⓒ연합

이를 개혁해 양질의 보편적 의료보장체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우리나라는 공공의료의 비중이 현행 18% 수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데, 이를 최소국가 수준인 30% 이상 수준으로 확충한다. 둘째,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을 위해 국민주치의제도와 평생건강증진체계를 확립한다. 셋째, 국민의 의료불안 해소를 위해 암, 중풍, 심장질환 등의 30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실현하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현행 64% 수준에서 85%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를 위해 차기 정부 4년(2009년-2012년) 동안 소요되는 추가비용은 약 19조 원인데,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 후보는 이 비용을 조달하여 위의 조치들을 시행해야 한다.

의제 11: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홍종학 경원대 교수)

대한민국의 소비자는 불안하다. 매일 소비하는 물건들이 과연 안전한 물건인지 안심할 수 없다. 광우병 위험 소고기나 유전자 조작식품 등이 무제한 수입되는가 하면, 축산물과 어류는 수시로 항생제 잔류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초등학교 앞 가게에 가 보면, 어떻게 이런 물건들이 버젓이 팔릴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위험한 장난감이나 유해 식품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불량식품, 환경호르몬, 발암물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또한 최근 방송되는 '소비자 리포트'에서 보여주듯이 제조업체들의 소비자 기만행위들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제조업자들은 거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개발독재시대에 소비자들은 철저히 희생을 강요당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수입제품이 있었어도 국산업체의 부실제품을 사도록 강요받았고, 대기업의 출혈 수출을 보조하기 위해 기업의 담합을 묵인하며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그렇게 성장한 기업들은 현재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 그 이익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여전히 소비자를 무시하는 배짱영업을 지속하는가 하면 하도급업체를 핍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의 전근대적 경영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외국인 주주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참아서도 안 된다. 전 세계 국가들과의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를 희생하여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더 이상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더욱이 우리 기업들은 외국의 강력한 소비자 보호제도를 맞추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외국기업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국내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불합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현대 경제에서 소비자 보호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제조업체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소비자 보호제도가 강화되면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아무런 위해가 없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국내의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킨 상품만이 전 세계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대책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제조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경찰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주로 유럽 쪽의 방식이다. 적발을 많이 해서 규제를 피해가는 제조업체를 줄이는 방식이다. 다른 한 가지는 소비자 스스로 권리구제를 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사후적 규제를 강화한 미국식 방식이다.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기업이 쓰러질 정도의 강력한 규제가 된다. 적발건수는 적지만 일단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예방적 조치의 의미가 크다. 그런데 한국의 관료들은 한편에서 규제를 완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소비자 권리구제는 허술한 유럽식을 따라 왔다. 특정 단체에게만 소비자 단체소송을 허용한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미 FTA나 미국식 규제완화를 주장한다면 강력한 사후적 규제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소비자를 불량제품과 위험물질에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악의적인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강력한 벌칙이 주어져야 한다. 즉각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소비자를 무시하는 전근대적 정치세력과 관료들을 퇴장시키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의제 12: 정책협약을 통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와 선거구제 개혁(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

정치인 김대중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었다면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의 기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위임받은 노무현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다. 첫째는 균형발전정책이었다. 지역 간의 균형발전을 위해 기업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행정수도 이전, 산업클러스터 정책 등을 역점을 두어 추진해 왔다. 이러한 정책의 평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대립되지만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다른 하나는 선거구제 개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개혁에 야당이 동의해 준다면 '권력의 절반'을 내놓을 용의가 있음을 몇 차례나 천명한 바 있다. 그렇지만 후자의 제안은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효과적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추진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비협조였다. 그렇지만 현재의 지역구도 하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여야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다 큰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의 부재였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여야 동반선출을 가능케 해줄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의 강력한 요구와는 달리 탄핵의 여파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 이후 범여권 내에서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민주노동당을 이롭게 해줄 뿐이라는 정략적 판단 때문에 강력하게 주장되지 못하였다.

요컨대, 상이한 원리와 목표를 갖고 있는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동시에 언급됨으로써 전략적 초점이 흐려졌고, 이는 점차 선거구제 개혁안에 대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합의 수준을 취약하게 만들어 강력한 추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시민단체나 진보개혁 세력 역시 이를 강력한 정치의제로 만들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비례대표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정당 등 이해집단을 배제한 채 중립적인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선거제도위원회에서 안을 작성한 후 의회에서 가부에 대한 비준을 얻는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이러한 방식은 정당의 강력한 반발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개혁 정당간의 정책 제휴와 시민사회단체의 협력을 거쳐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여 해결하는 길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제는 민주적 소연정의 중요한 정책의제로 채택되어야 한다.

향후 한국 정당체계는 진보와 보수의 분화 속에서 온건다당제 경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선 과정이나 이후 총선 과정에서 범여권과 문국현 후보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의 비를 현행 5:1에서 2:1 정도로 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를 위한 정책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비례대표제를 지역주의 타파와 표의 등가성 확보를 위해 한국의 정치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낙천낙선운동, 시민후보 당선운동 등 과거의 전략은 정치개입 논란만 증폭시킬 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당장 지금부터라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칭)와 같은 기구를 신설해 정책협약을 매개하거나 아니면 대선 직후 이와 같은 기구를 통해 선거법 개혁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단체의 정책역량 및 전문성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시민단체와 정치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제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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