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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힘, 사랑의 힘, 그리고 영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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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힘, 사랑의 힘, 그리고 영화의 힘

[뷰포인트] 오랜만에 찾아온 정통 음악영화 <원스>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저예산 음악영화 <원스>는, 길거리 뮤지션인 '그'와 체코 출신으로 가난한 이민자인 '그녀'가 음악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줄거리도 단순하기 짝이 없어서, 음악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 이후 남자가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에 도전하기 위해 데모 CD를 만들고 여자는 이를 도운 뒤에 헤어진다는 게 줄거리의 다다. 여기엔 화려한 수사의 애정 고백도, 특별한 로맨스도 없다. 서로 사랑하는 게 분명한데, 두 남녀는 서로 고백하지도 못 하고, 고백한다 해도 상대방은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어 단 한 마디이며, 그 흔한 키스 한 번 하지도 못 한다. 그저 피아노를 치다 울음을 터뜨린 그녀가 그의 어깨에 기대고, 그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는 것, 그리고 밤을 세워 CD를 만든 뒤 아침에 헤어지면서 고작 볼에 작별키스를 하는 게 두 사람이 영화 내내 하는 스킨쉽의 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말 대신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전한다. 단 한 번 서로 어깨를 감싸고 단 한 번 볼에 작별키스를 하는 이 스킨십이 더없이 로맨틱한 건 영화 전체가 그렇게 '말의 고백'을 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스
아일랜드의 인기 포크락 그룹 '더 프레임즈(The Frames)'의 보컬인 글렌 한사드와 더 프레임즈에 세션맨으로 참가했던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더없이 투박하고 단순한 연출 하에 보석과 같은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간만에 제대로 된 정통 음악영화로서 진수를 뽑아낸다. 예를 들면 두 남녀가 처음으로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 악기 판매상의 호의로 점심시간마다 악기점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그녀를 따라간 그는 자신의 곡을 그녀에게 한 소절 한 소절 가르쳐주고, 그의 기타와 보컬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에 화음을 넣는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기적적으로 화음을 이루는 그 순간은 이 영화의 마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별 볼 일 없어보이던 남자주인공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고, 주책맞게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것 같았던 여자주인공에게서 촉촉한 아름다움이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그'가 혼자 불렀던 노래들은 처절한 분노와 절규를 담았고 '그녀'가 혼자 불렀던 노래들은 사람 우울증 걸리게 만들기 딱 좋을 정도로 절절한 외로움을 담았지만, 이제 이들이 '함께'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은 애잔하고 서글프기는 해도 더 이상 마냥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소박한 음들 사이로 호들갑스럽지 않게 삶의 기쁨과 기대감과 슬픔과 상실을 노래하며, 그 안에서 비로소 삶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무시무시한 제작비와 화려한 CG가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로 언급되는 요즈음, <원스>는 "무엇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주는 영화다. 더없이 단순한 줄거리와 연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낯선 배우들(앨런 파커 감독의 <커미트먼트>를 보셨던 관객이라면 이 남자의 얼굴이 아주 낯설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에, 풍경은 황량하며 또렷한 볼거리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특별한 매력은,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나도록 머릿속에 영화에 나온 음악들을, 그리고 영화의 장면들을 풍성하게 남겨놓는다. <원스>는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CD 매장에서 OST를 사게 만들 정도로 음악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음악으로만 모든 승부를 보는 영화는 또한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가지지 못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저 주는 것만으로, 그리고 짧게 스쳐지나간다 할지라도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빛나는지 소박하게 보여주고 나직하게 들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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