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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정당의 춘추전국시대…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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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정당의 춘추전국시대…결말은?

[2007 대선, 기로에 선 한국 정치] '정당 없는' 민주주의②

"민주주의는 양당제이며, 우리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 일대일의 선거 구도를 바라고 있다."

범여권의 대통합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훈수정치' 논란이 일자 이같이 해명했었다. 범여권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세력을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한나라당 독주 현상이 고착화될 것이란 위기감의 표현이다. 특히 대선 직후인 2008년 4월 총선이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일당 독주를 막을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질서는 보수 양당체제 경향을 유지해왔다. 특정 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군소정당이 양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2+1당' 체제가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5년을 거치는 동안 보수 양당 간 세력 균형이 급속히 허물어졌다. 이 균형이 허물어지면서 동시에 국민들의 '정치혐오'도 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최근 대선 100일 맞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50%가 넘는 '쏠림 현상'도 나타났지만, 동시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도 30%에 가까웠다. 국회 내 최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명박에게 한나라당은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외투'?

기존 정당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양당체제와 지역정당체제다.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을 거쳐 이 같은 정당체제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재 균열이 진행 중이라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이 동의했다.

특히 개별 정당 내부에서부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드러났듯이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구세력과 신세력 사이의 내부 경쟁체제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전통 보수 세력과 정치적 노선이나 철학을 조금 달리하는 법조인, 언론인, 기업인 출신의 신흥 엘리트들이 한나라당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명박 후보의 경선 승리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 신용불량자 등 금융소외계층과 간담회를 갖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뉴시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이 후보는 때로는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싸움"이라고 말해 기존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결집을 꾀하기도 하지만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이 후보는 "중국과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지만 시장경제를 따라오고 있고, 우리도 북한에 그걸 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념을 갖고 충돌할 게 뭐가 있나. 그런 대결은 끝났고 실용주의 사고로 가야 한다"고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이영제 박사(정치학. 동국대 강사)는 이 후보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인터넷 신문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한나라당은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 가벼운 외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불쑥' 나타나 승리를 거머쥔 오세훈과 대선에서 승리할 것처럼 보이는 이명박은 과거 한국정치를 규정함으로써 선택의 유력한 기준이 됐던 '독재냐 민주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변화하고 있지만 정당이라는 틀 자체는 깨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당 내부적으로는 집권에 대한 기대감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강력한 지지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에서 패할 경우 구기득권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과 이명박 후보 측 인사들 간의 경쟁구도로 쪼개질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기는 힘들다.

'대장'이 사라진 여권…중간 대장끼리 경쟁 치열

반(反) 한나라당 진영은 정당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힘들만큼 사회적 기반이 붕괴돼 있는 상태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지지자들이 흩어졌고, 이번 대선을 앞두고 몇 번의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흩어진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을 명분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져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정동영 후보 측의 '동원 경선' 의혹을 제기하던 손학규 후보가 19일 저녁 돌연 칩거에 들어가면서 후보들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추후 민주당, 문국현 후보 등과 후보단일화를 도모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통합신당이라는 틀 자체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조현연 교수는 이런 여권의 상황에 대해 "정책노선에 기반한 정체성이 아니라 '1인 보스'에 의해 구심력이 유지되던 여권은 특출 난 대장이 없는 상태에서 중간급 대장들 사이에 내부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과거처럼 '대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당 질서가 다시 복원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중간급 대장들 사이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범여권이 자기네들끼리 뭉쳤다 헤어졌다는 반복하는 합종연횡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중간으로 수렴하는 정책들…대표성은 더 약화될 수 있어
▲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후보(왼쪽부터). 정당 내 '중간 보스'들의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뉴시스

이와 같은 정당 내부의 균열이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을 거쳐 어떻게 정리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소 엇갈렸지만, 현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여러 개의 당이 경쟁하는 다당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다만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다당제로 가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선구제는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선거구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식 대중정당과 미국식 선거전문가정당 사이에서 대중과는 유리된 선거전문정당 쪽으로 가고 있는 한국의 정당체제가 다당제를 거칠 경우 어떤 쪽으로 귀결될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문제다.

정당은 쪼개지지만 '민주-반민주', '평화-냉전'이라는 과거의 정치적 전선이 허물어지면서 정당간 정책이나 정치적 노선 차이는 벌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좁혀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재의 균열된 정당체제가 결국은 선거용 정당으로 재편되는게 아니냐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윤철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미세한 정책경쟁을 하는 가운데 정책들이 중도로 수렴될 것이며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2005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과 큰 정책적 차이가 없다"고 인정하기도 했듯이 보수 양당은 큰 정책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경제정책에서는 더욱 큰 차이가 없다.

정책이 중도로 수렴한다는 것은 그만큼 좌우 양 극단을 차지하는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는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당의 중요한 목표인 대표성(representative)의 문제는 더욱 악화될 우려가 크다.

김윤철 전 실장은 "중도에 몰려 있는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대표성 경쟁이 격화되는 한편 나머지 유권자들은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서 좌우 극단의 유권자가 소외되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소외된 이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일종의 수혜성 정책은 모든 정당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과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을 정책 경쟁의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실용적'인 정치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정치 전반의 '보수화' 현상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다당제가 희망적이다"

반면 정치적·경제적 갈등 수위가 여전히 높은 한국사회의 특징 때문에 미국식의 선거정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기필마인 문국현 후보가 범여권 후보 중에서 지지율 3위를 차지하는 등 젊고 개혁적인 유권자들 사이의 '문국현 현상'도 아직은 개혁과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또 정당이 정체성이나 노선으로 분화되지 않고 그저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이합집산을 계속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는 다당체제로 가는 게 오히려 새로운 전선에 기반한 대중참여형 정당을 만드는데 나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기존의 정당들이 선거에서의 유불리만을 근거로 차이를 없애면서 가면서 끊임없이 제자리를 답보해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차이를 드러내는 다당제로 가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박상훈 박사(정치학.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승패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범위 안에서 한국사회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는 명료한 대안이 논박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금은 보수양당 체제 내에서 흐려졌던 정책적 차이가 명료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것인지 논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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