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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을 사람 없다고? 문제는 정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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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찍을 사람 없다고? 문제는 정당이야!"

[2007 대선, 기로에 선 한국정치]'정당 없는' 민주주의①

올해 초에만 해도 1987년 6.10항쟁 이후 20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87년 체제'를 마감하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정초(定礎) 선거'(founding election)가 될 것이란 기대와 전망이 제시됐었다.

정작 대선을 채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현 시점에서 2007년 대선은 87년 이후 4번의 선거와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여당의 후보조차 확정되지 못한 '불확실성'과 유권자들의 극도의 '무관심'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로 읽을 수도 있다. 또 민주-반민주, 냉전-평화 등 기존의 정치적 전선과 달리 경제성장, 비정규직 문제 등 경제 이슈가 주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번 대선에서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 정치는 '87년 체제'는 붕괴되고 있으나 새로운 체제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과도기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도기를 거쳐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대선의 승자와 패자 못지 않게 중요한 질문이다. <편집자>


정당이 허물어지고 있다. 2007년 대선 정국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대선이 채 100일도 안 남았는데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확정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과 유리된 '허약한 정당'의 문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것이지만 이번 대선 정국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 정도가 더 심하고 노골적이다. 한 정치학자는 현 정당들에 대해 "가수들의 프로젝트 밴드보다도 목적성이 떨어지는,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것 밖에 없는 정치적 투기 집단"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민주-반민주 구도로 요약될 수 있는 '87년 체제'가 허물어지고 있는 현 아노미 상황은 어디로 귀결될 것인가? 새로운 전선을 기반으로 한 신질서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대중과는 유리된 채 선거의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혼돈이 계속될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 한국 정치에 던져진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이명박을 지지해"
▲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합동연설회가 열린 26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질서유지 요원들이 각 후보측 지지자들 사이에서 질서 유지에 힘쓰고 있다. ⓒ뉴시스

이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지지자가 뚜렷이 나눠졌었다. 합동유세장에서 두 후보 지지자들 사이의 잦은 물리적 충돌 때문에 당 차원에서 전문경호인력을 동원했다. 까만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두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는 진풍경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선 이후 박근혜 후보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지만, 일부 박 후보 지지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의 지지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박 후보는 여전히 한나라당 지분의 '절반'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의 지지자가 나뉘는 이유는 지지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후보가 영남지역, 50대 이상, 보수우익세력 등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대표한다면 이명박 후보는 수도권, 30-40대, 화이트칼라 등 신(新)보수세력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성격이 진보·개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43.5%가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SBS, 8월31일 조사)도 있었다. 이 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자 중 20%가 넘는 이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 후보 지지자의 상당수가 이명박은 지지하지만 한나라당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후보와 정당의 지지가 유리되는 것은 정당체제 해체를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손학규·문국현, 정당체제 해체의 수혜자들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 후보가 범여권 후보 중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동영, 이해찬, 유시민 등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손 후보와 경쟁하고 있는 후보들이 그의 '정체성'을 주요 공격지점으로 하고 있지만 크게 성공적이지 못하다. 손 후보 지지자들 중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이는 신당이 10% 지지율을 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손 후보의 경쟁력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 단기필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 ⓒ프레시안

공식 대선 출마를 선언한지 20여 일만에 지지율을 3%대로 끌어올린 문국현 후보도 정당체제가 무너져가고 있는 현 대선 정국의 수혜자다.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중심으로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정당체제의 질서가 공고하다면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단기필마로 정치권에 뛰어든 문 후보가 지금처럼 주목받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10월말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문국현 개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정당체제, 왜?

이같은 정당체제의 해체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에서 일반대중의 이익과 의사, 가치와 열망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기본틀이 정당이기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정당이 잘 제도화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필수적 조건"이라고 여러차례 지적했었다.

하지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정치 현실 속에서 87년 민주화 이전의 정당체제는 냉전반공주의의 좁은 이념적 틀 안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허약한 정당체제'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또 민주화 이후에도 일반대중들의 광범위한 정치 참여를 기반으로 한 대중정당체제 형성에 실패했다. 박상훈 박사(정치학.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는 "민주화 이후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의 정당체제가 그대로 복원돼 사회적 에너지가 정당으로 흡수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바람'이 불면서 대중들의 '정치 참여' 욕구가 분출됐으나, 정작 집권에 성공한 뒤 여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권 5년은 민주적 정당체제의 제도화에 실패한 기간이었다.

상향식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를 내세웠던 정당인 개혁국민정당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소속 의원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으로 적을 옮기면서 소멸됐다. 여권 분열이라는 큰 혼란과 논란 속에서 창당을 강행했던 열린우리당도 '100년 정당'을 호언했지만 창당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도로 열린우리당'이란 비난 속에 출범한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15일 첫 대선후보 본선 경선을 시작했으나 투표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날 70%가 넘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결선투표와는 비교되는 초라한 성적이다. 또 신당은 한나라당 탈당 인사에서 시민단체 출신까지 포함돼 있다보니 정치적 스펙트럼도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더 넓어졌다. 그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정책에 대한 당론을 모아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집권 기간 동안 2번이나 탈당을 한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을 강조해 당과 정부 간의 연결 고리도 끊어버렸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열린우리당 창당 등 선거를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울수 밖에 없었던 '당정분리' 원칙은 정부 정책에 대한 여당의 책임을 요구할 수도, 따질 수도 없게 만들었다.

또 노 대통령은 2005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써 당과 지지자, 당과 행정부, 당과 당 사이의 관계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큰 정책적 차이가 없다"면서 대연정을 제안한 이유를 밝혔지만 여당과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당, 유리한 선거구도 형성에만 골몰"
▲ 2002년 큰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민주당 경선과 달리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시작부터 20%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뉴시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정당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나 한국은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면서 "정당의 정체성이 깨지고 해체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정당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해야 하니까 국민들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당들이 정책적 차이에서 차별성을 가져오기 보다는 그저 선거를 유리하게 치루는 구도를 만드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특히 과거의 전략이 의미를 잃게 되니까 정당의 이합집산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당 해체 현상이 범여권에서 두드러지는 이유에 대해 "한나라당은 지난 2번의 대선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를 표방하면서 일관성 있게 갔다"면서 "반면 범여권은 '3김 시대'가 끝난 뒤 정치적 좌표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여권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이야기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이슈다. 또 평화를 내세우지만 이제 한나라당도 대북정책에 있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차별성을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대중정당 이외 대안이 없다"

박상훈 박사도 "한나라당은 민주화 이후 질서에 적응했다고 보여진다"면서 "반면 그 반대 세력은 사회적 기반이 다 붕괴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박사는 "현재 대통합민주신당이든, 문국현 후보든 정조나 정서에 기초해 있지 유럽이나 미국의 정당처럼 정체성이나 이념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지난 2002년까지 민주화 세력이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 개혁'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며 "그러나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정책적으로는 한나라당과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반(反) 한나라당 진영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역주의 측면에서도 해체 현상이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지역구도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이나 2004년 총선에서 보면 지역구도가 많이 약화됐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이는 호남 지역에서 이명박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 등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87년 이후 정당체제로 유지됐던 정치적 전선과 이에 기반한 대중 동원력이 허물어진 현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는 '탈정당'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중들의 정치적 이해와 요구를 조직하고 이를 대변하는데 있어 아직까지 대중정당 이외에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정치인들도 정당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정치학계나 언론에서도 '탈정당'이 아니라 정당을 중심으로 힘 없는 대중들이 정치사회와 결합할 수 있는 모델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교수도 "소수의 정치 리더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적인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치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정책 정당들의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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