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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니식 코미디와 판타지가 이라크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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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니식 코미디와 판타지가 이라크를 만났을 때

비극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베니니식 웃음과 희망 <호랑이와 눈> 리뷰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된 지 딱 10년이다. 2005년에 완성됐지만 국내에서는 이번 주에야 개봉하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호랑이와 눈>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랬듯 극단적인 로맨티시즘과 코미디, 판타지 위에 전쟁의 비극을 겹쳐놓는다. 다만 이번엔 이라크다. 짝사랑하는 여인 비토리아가 바그다드에 갔다가 폭격을 당해 혼수상태가 되자, 매사 덜렁거리긴 해도 낙천적이고 열정적인 시인 아틸리오는 그녀를 찾아 온갖 좌충우돌을 겪으며 바그다드에 간다. 기초적인 약마저 미군에 의해 봉쇄되어 고작 글리세린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바그다드의 시내 안에서, 그는 이제나 저제나 비토리아가 정신을 차릴까 곁을 지키며 글리세린이 필요하다면 글리세린을, 산소가 필요하다면 산소통을 어떻게든 구해온다. 하지만 비토리아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릴 때쯤, 그는 아무리 '나는 이탈리아인!'을 외쳐도 들은 척 만 척하며 그를 이라크 테러범 취급을 하는 미군에게 체포돼 있다. 마침내 풀려나 이탈리아 땅에 돌아왔을 때, 아틸리오에게 쌀쌀맞기만 한 비토리아는 자신을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준 이가 바로 아틸리오란 사실을 모른다. 아틸리오도 그녀에게 굳이 자신을 드러내진 못 한다. 그저 언제나 그랬듯 덜렁거리고 푼수를 떨 뿐이다.
호랑이와 눈 ⓒ프레시안무비

언제나 자신의 실제 아내 니콜레타 브라스치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던 베니니는 외양상으로는 코미디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여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로맨스가 본질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어리석다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소박한 남자주인공(베니니가 주로 직접 연기한다)이 갈수록 오해와 실수가 쌓여 꼬여가는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고, 그 와중에 순정을 다 하는 그의 진심에 아름다운 그녀도 감동하여 두 사람은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게 베니니표 영화의 변하지 않는 설정이다. 기본적으로 로맨스이되 슬랩스틱과 상황 코미디 성향이 강했던 베니니의 영화가 변화를 보인 건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실제 유태인수용소 생존자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전반부에선 그가 언제나 하던 식의 코미디를, 후반부에서는 나치 시절 암울한 유태인 탄압기를 겹쳐놓았다. 그 비극적 상황에서도 베니니는 웃음과 낙천성을 잃지 않으며, 심지어 "인생은 아름다워"라 말한다. 어쩌면 평생토록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를 상처를 아들에게 결코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광대놀이를 한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해온 코미디의 목적과 본질이 바로 이것이라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선언하는 듯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증오도 분노도 내보이지 않는 극단적인 휴머니즘을 얹는 데에 성공했다. 역시나 베니니표 판타지와 로맨스, 그리고 코미디 위에 전쟁을 겹쳐놓은 <호랑이와 눈>은, 기존 영화들에 비해 슬랩스틱 코미디가 준 대신 좀 더 현실에 대해 직설적으로 발언하고, 그러면서도 판타지의 성격이 강화됐다. 이전 영화에서 언제나 한 여자만 사랑했던 베니니에게 이번 영화에서는 이혼한 아내와 짧은 연애 상대였던 직장 동료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 낯설기는 하지만, 니콜레타 브라스치가 연기한 비토리아를 향한 아틸리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그가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 동안 폭격은 계속되고 물자와 약은 턱없이 부족하며 바그다드는 철저히 고립돼 있고, 아틸리오와 비토리아의 친구이자 뛰어난 시인인 푸아드(장 르노가 무심한 듯 연기한다)는 사랑하는 조국 이라크에 돌아간 뒤 한 다발의 시를 남기고 결국 스스로 목을 매단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목격하고 사랑하는 여인이 죽음 직전에 처해 있는데도 아틸리오는 놀라고 슬퍼하면서도 끝내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는 남들이 절망할 때 어떻게든 밖으로 뛰어나가 무조건 부딪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기적처럼 희망을 만들어낸다.
호랑이와 눈 ⓒ프레시안무비
<호랑이와 눈>에서 베니니가 전해주는 웃음과 기적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그 눈물과 아픔 속에서 용기와 진심을 다해 힘겹게 길어올린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베니니식 판타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노력과 지극정성이 만들어낸 당연한 보답과도 같은 것이다. 일 년 사시사철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를 자랑하는 지중해성 기후의 로마에서, 아틸리오가 쓴 시에 등장하는 대로 눈이 내리고 호랑이가 등장하면 그와 함께 하겠다던 비토리아의 약속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영화의 말미에 드러나는 깜짝 반전도 '역시 베니니'란 생각이 들게 하며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행복'을 제대로 선사한다. 그 어떤 고통과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 역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영화에 특별출연한 톰 웨이츠가 부르는 노래 가사대로,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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