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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말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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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말 할 수 있습니까?"

[일과 희망·19] 책임 못 질 공약 대신, 차라리 모른다고 해라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서 대선 열기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신당의 후보경선도 치열하다. 후보들은 앞 다퉈 공약을 내놓고 있고 이에 대한 검증 작업도 활발하다.

당내 경선에 불과하지만 제시된 공약 중에는 지난 번 대선 본선에서 나왔던 것만큼이나 참신하고 구체적인 것들도 많다. 우리나라 정치가 그만큼 발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이다"

노동문제도 경선과정의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민노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그랬다. <경향신문>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들을 대상으로 공약을 평가한 10대 의제 중 두 개 내지 세 개가 노동문제였다. 공약 중에는 매우 진보적인 것들도 있어서 이것이 한나라당 경선이 맞는가, 의아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후보들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것은 일단 보기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더 알고 싶은 것은 과연 이 공약들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이다. 사실 정치인에게 100% 실현가능한 공약만을 제시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고 순진한 발상일 것이다.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미리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들은 거창한 공약이 깊은 성찰과 고민의 산물인지,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고 밀고나갈 강한 의지가 거기에 실려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

"정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실 겁니까?"
▲ 사회 문제가 된 비정규직과 관련해 대선 후보들이 흔히 제시하는 공약은 정규직화와 균등대우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간단하지 않다. 사진은 지난 7월 20일 홈에버 농성장에서 끌려나오기 직전의 이랜드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 ⓒ프레시안

모든 개혁과제가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들도 간단한 공약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현재 최대 노동문제로 떠 오른 비정규노동 문제만 해도 그렇다. 흔히 제시되는 공약은 정규직화와 균등대우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간단하지 않다.

정규직화를 약속하는 쪽에서는 이를 위해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규제만으로 정규직화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외주화가 더 양산될 우려가 크다. 외주화도 규제하면 될지 모르나 그러려면 어느 OECD 국가에도 없는 법을 도입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규제만으로 안 되므로 유인(誘因)을 주자는 공약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줄 수 있는 유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효과가 있을 정도의 유인을 주려면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텐데 재원 조달도 문제지만 기업이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정부가 재정지원까지 해야 하느냐라는 논란과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면 비정규직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는 후보도 있으나 이것은 너무 막연한 낙관론이다.

균등대우를 실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상 균등대우 조항의 최대 약점은 그 적용범위가 사업장 내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사업장 내에 비교 가능한 정규 노동자가 없는 경우 균등대우 조항은 쓸모없어진다. 해결방법은 비교가능 근로자를 사업장을 넘어 산업이나 업종 전체로 확대하는 것인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는 임금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기 어렵다.

"영세업체 노동자들은요?"

넓은 의미의 비정규 노동자이지만 '비정규직도 못되는' 영세업체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은 노동3권은 고사하고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며 사회보험 적용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이들을 위한 대책은 일견 간단하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저임금에 의존하고 있는 영세사업체들의 도산과 근로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실직된 근로자들의 직장 이동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아직 미비하다.

"일자리 200만 개는 도대체 어떻게?"
▲ 일자리 창출도 마찬가지다. 공언만 있고 방안이 없다. 이명박 후보가 얘기하는 7% 경제성장과 대운하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노동 영역의 또 다른 핵심 의제가 일자리 창출이다. 대개의 후보들이 임기동안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방안은 모호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답은 7% 경제성장과 대운하 프로젝트다. 전문가들은 7%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고용 없는 성장이 체질화된 한국 사회에서 성장이 그만큼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인가는 불투명하다. 일용직도 좋으니 무조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러하다.

경제성장 외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신산업 육성이다. 새로운 산업이 육성되면 물론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쉽게 산업을 육성하던 시대는 지났다. 공공부문 일자리나 사회적 일자리 창출도 주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역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선행되어야 한다.

"헛된 희망은 환멸만을 가져다 준다"

노사갈등 해결이나 사회적 대타협도 노동 영역의 주요 공약이다. 노사협력이나 대타협은 민주주의와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참여확대가 협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일시적으로 갈등이나 파업이 증폭될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갈등과 무질서를 감내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타협 대신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후보들도 있다. 이들은 현재의 법과 원칙이 과연 노동자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정치인이 현실적 장애물에 너무 얽매이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그러나 헛된 희망은 환멸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차라리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은 안 됐다고 솔직히 말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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