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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 착한 일 한 번 합시다"

[참여연대 '최저생계비 바꾸기' 릴레이 편지④]

보수 인사나 언론이 노골적으로 쓰는 말 중에 '좌파 정권'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여러가지 정치적 공격이 담겨져 있지만 '복지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는 담론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좌파 정권'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복지의 혜택이 엄청나게 늘었을까.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교수는 2000년 실시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높게 평가했지만, 시행 이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선진복지국가에서는 인구의 10%를 공공부조의 대상으로 유지하고 있고 국내총생산의 1.5% 정도를 그들을 위한 예산으로 할애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와 같이 제대로 된 사회보장 체제도 아직 없는 나라에서 공공부조를 통해 지지해 주는 인구집단은 겨우 인구의 3%, 그들을 위해 쓰는 재원은 국내총생산의 0.6%라는 것은 분명 사회정의를 들먹일 것도 없이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인 휴머니즘의 측면에서 볼 때도 매우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최저생계비 결정'이 22일 내려질 예정인 가운데 이태수 교수가 '참여연대 '최저생계비 바꾸기' 릴레이 편지' 시리즈 네 번 째 편지를 보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인 반장식 기획예산처 차관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이 교수는 "기획예산처가 "언제나 그랬듯이 예산상의 이유로 자르고 깎는 악역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빈곤문제에 대해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과감하고 전향적인 정책을 들고 나와 예산의 숨은 구석을 찾아내어 이제 이 정도는 하자고, 아니 해야 된다고 타 부처를 선도하여 빈곤정책의 선봉자 역할을 행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라고 묻고 있다.<편집자>


정부의 양극화 해소 의지, 정녕 있는 것입니까?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이신 기획예산처 반장식 차관님, 안녕하십니까? 이런 저런 위원회에서 얼굴을 뵙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자니 좀 멋쩍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편지의 형식이라 한편으론 죄송하기도 하지만, 대면해서는 일목요연하게 충분히 심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서 이런 표현방식이 제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풀고자 하는 것은 짐작하시겠지만 내년도 최저생계비 결정에 관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빈곤층에게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보장체계이면서, 인류의 역사상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공공부조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임은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기초생활보장제도 애초의 목적에 부응하지 못해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999년 법으로 제정되어 40년이나 지속되어오던 부실한 생활보호제도를 종식시키고 공공부조 역사상 '코페루니쿠스적인 전환'에 해당된다고 제 스스로 명명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도 만 7년이 되어갑니다. 처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각종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통과되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생활의 보장이 국민의 권리로 인정되고, 연령에 상관없이 소득이 부족한 이는 누구라도 수급권자가 되며, 수급권자 모두에게 현금으로 소득보장이 이루어지는 성숙한 공공부조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그때의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냉정히 생각해 볼 때 과연 이 제도가 초기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지 깊은 회의감에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생존 여부까지 고민해야 하는 절박한 상태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과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든든한 지지망이 되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3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제도의 사각지대, 수급권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질적인 빈곤층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세 명이나 되는 자식을 안고 선망의 대상이던 남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야 하는 한 엄마의 절박함에, 네 살 배기 아가가 장롱 속에서 굶은 채 서서히 생명의 불꽃을 사그라뜨리고 있던 그 비극적 상황에, 월 50만 원도 안되는 소득에 절어 귀하게 맞이한 베트남 신부를 때려 숨지게 하는 흉포함으로 돌변한 농촌아저씨의 단말마적인 삶에, 70평생을 조국건설에 모든 것을 던졌지만 달랑 두 평 남짓 남루한 공간에 쓸쓸히 갇혀 오갈 이도 없는 가운데 생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이 땅의 수십만 독거노인들의 억울한 인생에 도대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준열히 묻지 않을 수 없답니다.

인간을 위한 제도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물론 심각한 얼굴로, "주어진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그리고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그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선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을 느껴가며 나름 진지하게 해법을 모색하려는 공공부조제도의 기획자이며 집행자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고충과 고뇌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단 한 푼의 돈도 소중한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와 땀이므로 부정수급자에게 돌아가서도 안 되며, 필요 이상의 지원으로 복지병을 유발시켜서도 안 된다는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는 기획예산처 공복들의 고충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반 차관님.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제도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은 결국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극한적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진정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도, 바로 그러한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 제도는 존립 근거를 이미 상실한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가 이런 절박한 빈곤층을 위해 쓸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정녕 부족한 국가라면 최소한 저의 주장은 너무 낭만적이고 목가적이며 과도한 꿈이라 차라리 치부해 버리고 조용히 입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간 900조를 넘는 부가가치가 생산되고 있고, 세계 무역규모 10위를 앞다투고 있으며, OECD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지도 10년이나 넘은 나라에서 절박한 빈곤층을 위해 수천 억, 아니 수백 억의 재원을 더 투여할 수 없다는 말은 너무 구차하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한쪽에서는 주체할 수없는 부동산 및 금융자산으로 인해 외국으로, 신천지로 생을 즐기고 있고 단지 그러한 부모를 만났다는 행운만으로 평생 진흙땅을 밟지 않고 살아도 되는 귀한 아이들도 속출하는 마당에, 가장 빈곤한 이들에게 가장 긴급한 생활 상의 수요를 해결해 주기 위해 재원의 배분 몫을 조금 더 늘리는 것이 그렇게도 불가능할까요?

엄청난 양극화 시대 공공부조 대상자 수가 동결된 까닭은

이미 아동수당에, 노인연금에, 장애수당에, 각종 복지서비스에 줄줄이 혜택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선진복지국가에서도 공공부조의 대상은 상대적 빈곤 개념에 의거하여 인구의 1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고 국내총생산의 1.5퍼센트 정도를 그들을 위한 예산으로 할애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와 같이 제대로 된 사회보장 체제도 아직 없는 나라에서 공공부조를 통해 지지해 주는 인구집단은 겨우 인구의 3퍼센트, 그들을 위해 쓰는 재원은 국내총생산의 0.6퍼센트라는 것은 분명 사회정의를 들먹일 것도 없이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인 휴머니즘의 측면에서 볼 때도 매우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전체 국민의 3.2% 수준(2006년 12월 기준)으로 2005년 9월 수급자를 162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약속과 달리 전체 숫자도 160만 명을 넘기지 못 하고 있다. ⓒ프레시안

어찌하여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후에 이전의 생활보호제도 시절보다도 수급권자 수는 더 줄어 160만 명선에서 굳건히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요? 그렇게도 정부 스스로 자탄해왔던 양극화 시대에도 적어도 수급권자 수에 있어서는 요지부동이었던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요?

이것이 혹시 기초생활보장제도 시대에서도 여전히 빈곤인구는 정부가 관성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예산이 허락하고 있는 수준"으로 수급자 수를 조정하기 위해 최저생계비 수준을 가급적 통제하고 억제한 결과는 아닌지요?

법적으로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13인의 위원들이 모여 민주적인 토론과 표결절차를 거친 것으로 포장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정부 위원회가 그렇듯이 이미 정부위원이 과반수에 육박하게 포진되어 일사분란하게 표결에 임하는 대형을 갖춘 데다가 무늬는 공익 또는 가입자단체이지만 때론 전문성도 때론 제도에 대한 진지성도 없는 친정부 성향의 위원들을 안정 배치하여 끝내 비밀 표결에서 '묻지마' 투표를 하는 인사들 덕분에 이러한 정부의 의도가 매년 교묘히 관철된 결과는 아닌지요?

따라서 보건사회연구원의 수많은 전문가와 조사자가 주기적으로 행한 최저생계비 계측 조사에 흘린 땀과 노고는 이러한 교묘한 정부의 시나리오에 전주곡 정도에 해당하고 위원회에서 열심히 설득하고 논리와 통계를 들이대는 빈곤층을 대변하는 시민사회단체나 양심적 학자들은 그 시나리오의 변죽 역할로 이미 설정되어 있는 그 시나리오의 결과는 아닌지요?

이제 양극화·빈곤의 문제는 예산처 자신의 문제

반 차관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참여정부 임기말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및민생대책위원회'라는 대통령자문위원회가 지난 7월 새로이 설치되었습니다. 기획예산처는 단순히 예산의 합리적 조정과 평가만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비젼2030'을 만들만큼 사회정책을 위한 재정투여의 선봉 역할을 자임하였고 그 덕분에 이제 60명에 달하는 인력으로 구성된 양극화해소 집행기구인 '양극화및민생대책본부'까지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이젠 빈곤의 문제가 더 이상 주무부처라도 여겨지던 복지부의 문제가 아니고 기획예산처 자체의 책임과 본분에 속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내일 결행하게 될 2008년도 최저생계비 결의과정에서 기획예산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실 수는 정녕 없습니까? 자칭 타칭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기획예산처가 언제나 그랬듯이 예산상의 이유로 자르고 깎는 악역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빈곤문제에 대해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과감하고 전향적인 정책을 들고 나와 예산의 숨은 구석을 찾아내어 이제 이 정도는 하자고, 아니 해야 된다고 타부처를 선도하여 빈곤정책의 선봉자 역할을 행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반 차관님, 저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회의에 직접 참여할 자격은 없지만 내일 전개될 회의에서 기획예산처의 반전된 모습을 생각하는 기대감을 접지는 않으렵니다.

국민 중에서 가장 빈곤한 이들도 휴대폰을 사용할 권리가 있기에 최저생계비 생활품목에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그리고 내년도 정부가 채택한 물가상승예상율은 3%이지만, 지난 3년간 생활물가상승율인 4.03%를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또한 추가되는 1천 억 원의 소요예산은 기획예산처가 사실 이런 상황을 위해 예비하고 있었던 재원으로 충분히 충당된다고, 그리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스스로 자신과 심지어 자식들까지도 모진 목숨을 더 이상 연명시키기가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는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반차관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헛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1916년 아사히신문에 <貧乏勿語>('가난이야기')를 연재하며 약 90년 전 당시 일본인들에게 가난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관점을 제공해주었던 가와카미 하지메는 이런 글귀를 남겼습니다.

"참으로 돈 있는 자에게 있어서는 오늘날의 세상만큼 편리한 곳은 없겠지만, 돈 없는 자에게는 오늘날의 세상만큼 불편하기 그지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반 차관님. 돈 있는 자와 하등 다를 이 없는 이 땅의 그 돈 없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그래도 좀 편리한 구석이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 한번 제대로 책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이 길어 여기까지 읽기에 귀한 시간은 많이 내주셨다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됩니다.

그럼, 내일 반 차관님에게 기대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다시 한번 음미하며 예서 줄입니다.

2007년 8월 21일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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