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이 최근 청와대와 정부일각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발언에 대해 “앞으로는 정부를 믿는 수세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미국과 일부 관료들에게 공세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이하 영화인 대책위)는 6일 오전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쿼터를 지키기 위해 이제까지의 수동적인 방어태세를 버리고 공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안성기>
***스크린쿼터는 '주권문제'**
영화인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국은 무역대표부 등의 기구와 한국의 친미네트워크를 이용해 전방위적인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고 비판하고 “국가주권 차원에서 미국의 부당한 압력은 즉각 철회돼야 할 뿐 아니라 청와대와 경제관료들도 영화인과 국민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인 대책위는 또, “스크린쿼터제가 한미투자협정(BIT)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변한다면 BIT가 과연 실익이 있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하며, 근거 없는 40억달러(5조원) 투자유치를 위해 연간 18조원에 이르고 향후 무한한 문화·경제적 가치를 지닌 영상문화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일부 경제 관료들의 ‘스크린쿼터축소’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영화인 대책위는 “BIT의 실익과 스크린쿼터 유지의 필요성을 놓고 우리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따져 보자”며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공개면담,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 면담, 잭 발렌티 미국영화인협회(MPAA) 회장과의 공개토론, 재정경제부·외교통상부 당국자와의 공개토론 등을 제안했다.
***배우 안성기씨 , "미국의 이익에만 도움이 된다는 점이 문제"**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영화인과는 논의가 전혀 없었는데도 마치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스크린쿼터절충’을 언급하고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는 스크린쿼터를 비난하는 내정간섭에 까지 나서는 등 새로운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이 최근 영화계에 퍼졌다”며 “미국 영화인과 외교관, 우리 관료와 의원까지 스크린쿼터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것이 마치 이 제도의 폐지나 축소를 위한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양 사무처장은 “스크린쿼터를 지키자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부담스러워 이제까지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문화단체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미국의 문화패권에 맞서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우 안성기 씨는 "일부 인사들이 ‘영화가 잘 되고 있으니 이제 희생을 하라’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도 과연 전체 영화업계가 풍성한지도 종사자로서 의문이고 더 큰 문제는 영화인들의 양보와 희생이 우리경제나 문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미국의 이익에만 도움이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재형 동국대 영상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많은 국민이 한·미투자협정을 위해 스크린쿼터에 대한 축소논의가 이미 진행 중인데 영화인들이 이기심으로 그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스크린쿼터 수호운동은 결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문화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이라는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기자회견>
***제작자 심재명씨, "고아가 공부를 잘한다고 구박하는 셈"**
이은 감독은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과 이창동 문화부장관을 믿고 몇몇 돌출발언이 나와도 넘어가곤 했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가 심상치 않아 영화인들이 다시 나서기로 했다”며 “스크린쿼터 유지를 주장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이기주의로 매도당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국민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축소나 폐지를 막을 국민적인 동의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또, “여론조사, 홍보영화상영, 대중매체 광고 등을 통해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미국과 일부 경제관료가 내 세우는 논리를 반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은 "개인적으로 최근 이창동 장관을 만난 일이 있는데 이 장관이 ‘현재 청와대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상태라 때가 되면 이정우 정책실장이 구체적인 논의를 제의해올 것이고 그때 입장을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이 장관도 자신의 평소 소신을 굽히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한국영화는 미국의 직배사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스크린쿼터제도’라는 사문화 되어있던 한 줄의 법적 근거로 기적적으로 되살려진 후 이제 겨우 ‘산업’이 될 수 있는 단계에 올랐다”며 “사람으로 비유하면 고아로 큰 아이가 반에서 상위권에 겨우 오른 상태에서 부잣집에 태어나 늘 1등하는 아이(미국)를 따라가자 교과서, 참고서 다 뺏고 ‘공정하게 해보라’고 구박하는 것이 진짜 공정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내가 직접 제작을 한 <JSA공동경비구역>이 흥행에 성공한 것도 스크린쿼터의 덕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오늘 기자회견은 일부 언론이 영화계가 보·혁으로 갈려 쿼터축소를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대한 대응의 의미도 있다”며 “어떤 신문은 '몽고도 가입한 투자협정(BIT)에 한국이 가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왜 문제의 투자협정이 1인당 국민소득이 2천8백달러 이하인 빈국들이 먹고 살기위해 후유증을 감수하고 미국자본을 받아들이는 불평등협약을 한 것은 감추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고 "여기가 몽고냐?"고 일침을 가했다.
다음은 영화인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지영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정지영 감독 인터뷰**
프레시안 : 국민들 중에는 “왜 또 스크린쿼터가 문제냐?”며 영화계를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반응들도 있다.
정지영 감독(이하 정지영) : 현재 일부 관료와 언론에 의해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문제를 보도하며 그런 논조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는 다른 쪽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사익만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 말을 입증하려면 ‘피해자’가 있어야 하고 영화인들의 희생을 담보로 할 만큼 큰 국가적 이익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증명된 것이 하나도 없다. ‘한미투자협정’을 외치는 신문을 보면 미국의 투자가 40억달러에 이른다고 하는데 근거는 없고 모두 추정만 있다. 수치도 불명확하다. 반대로 스크린쿼터나 자국영화보호정책은 이를 철폐했을 때의 끔찍한 실패사례가 전 세계에 다양하게 있다.
<사진-정지영>
프레시안 : 한국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한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준다면?
정지영 : 현재 쿼터제와 영화는 ‘상징적 표적’이다. 다음은 공중파 방송이 그들의 표적이 될 것이고 인쇄매체와 뉴미디어 시장도 노릴 것이다. 어느 나라나 언론과 문화정책은 고유한 내정인데 미국이 이를 무리해서 간섭하는 것은 미국의 ‘미디어제국’들이 시장을 넓히려는 의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자본이 영상이든 인쇄물이든 언론을 소유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뚫리면 “왜 영화쿼터도 풀었는데 다른 분야는 예외냐”는 빌미가 제공될 것이고 편성비율에서 외국프로그램비율이 제한이 없어질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사고와 일상이 점차 선택의 여지도 없이 미국화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현재 미국의 집요한 공세를 산업적, 문화적 측면에서 원인을 분석한다면?
정지영 : 먼저 문화적으로 보자. 2005년에 유네스코가 준비 중인 ‘다자간문화협약’이 맺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문화의 발전과 성장을 인정하고 고유한 문화영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압력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약이다. 미국은 지금 이 약속을 맺기 전에 문제가 되는 나라들을 2004년 까지 다양한 개별협약으로 항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산업적으로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 문화산업의 ‘원대한 꿈’에 제동을 거는 힘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 영화·영상산업에서 남아있는 거대시장은 인도와 중국인데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급격한 성장으로 국제시장을 넘보려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미국은 중국이 정서적으로 한국에 끌리고 있다는 점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일예로 미국은 3백만달러에 우리나라에 판 ‘람보’를 중국에는 단돈 3만달러에 넘겼다. 16억 인구를 우선 할리우드의 ‘단 맛’에 길들인 후 값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프레시안 : 일본은 스크린쿼터가 없는데도 자국영화가 남아 있다.
정지영 : 일본은 1960년대에 미국의 직배압력을 받자 대장성이 직접 쇼쿠치, 도오에이 등 자국내 4대 메이저 영화사에게 자금을 지원해서 영화배급망과 극장을 ‘체인화’ 했다. 으리로 치면 경제부처들이 영화계에 자금지원을 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버텼는데도 점차 미국영화의 물량공세에 밀려 현재는 영화가 문화나 산업으로서의 역동성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도 콘텐츠의 제작지원을 통해 미국영화의 지배를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현재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도를 EU차원에서 성공사례로 연구하는 실정이다.
프레시안 : 그래도 경제를 위해 영화계가 희생하라는 요구가 계속된다면 어떤 논리로 방어할 것인가?
정지영 : 현재 전 세계에 자국영화를 팔려고 다른 나라 문화나 상황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나라가 딱 하나 있다. 유럽에도 없고 아시아에도 그런 나라는 없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다. 그런데 온 세상이 거기에 맞서고 있고 딱 한나라가 겨우 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다. 이 싸움은 우리 영화인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만의 싸움도 아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믿는 전 지구적인 싸움에 대표가 ‘스크린쿼터제도’다.
프레시안 : 요즘 이런 활동으로 인해 영화작업은 좀 뜸 한 것 같은데 앞으로 만들려고 계획하는 작품이 있다면?
정지영 : 님 웨일즈의 소설인 <아리랑>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세계인’이었던 조선출신 사회주의자 김산의 일대기를 그릴 예정인데 규모 때문에... (웃음)좀 힘들다.
프레시안 : 앞으로 좋은 작품 기대하겠다.
정지영 : 고맙다.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왜곡 없이 국민들에게 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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