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칸쿤에서의 고 이경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의 자살을 계기로 4백만 농심이 또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올 정기국회에서의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통과, 환경이변에 따른 수해와 폭풍 매미에 의한 올 농사의 사상최대 흉작, 지난 2000년 발효된 ‘농가부채탕감특별법’에 의해 유예된 상환기간이 올해말로 만기가 되는 등 악재가 겹쳐 농민들의 반발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할 전망이다.
***4대 악재**
세계무역기구(WTO)가 5차 각료회의 최종각료선언문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목숨을 던진 이회장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우리측 요구가 전면배제된 농업협상 초안이 13일 오전에 발표되자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비난하며 ‘생존권 투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협상이 재개될 경우 농업협상 초안에 기초한 협정 타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업협상 초안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더라도 농산물 관세인하를 대폭 감축하고 농업보조금을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 농업시장을 사실상 전면 개방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한농연은 15일 칸쿤 회의와 관련, "정부가 이번 각료회의에서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겠다"고 대정부 투쟁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농촌현실**
농민들의 관례인 추석맞이 행사마저 취소할 정도로 잦은 비로 올해 농사가 전반적 흉작을 보인 데다가, 태풍 매미의 피해까지 겹쳐 지난 1980년이래 최악의 흉년을 예고하고 있는 것도 농심을 들끓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다음달 3일 열릴 예정이었던 ‘시민의 날’ 체육대회마저 경기침체와 흉작으로 인해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경상북도도 올해 추석을 전후로 문화·체육 행사를 연 곳은 안동, 상주시, 영덕·예천군 등 4개 시.군으로 지난해 9개 시.군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 3일 전라북도 남원 운봉읍에서는 추수도 하지 않은 논을 갈아엎는 사태까지 있었다.
정부는 현재 영남권 중심의 폭풍 매미에 의한 피해는 최대한 보상한다는 입장이나, 잦은 비에 의한 농작물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자칫 농민들과의 충돌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올해 말부터 상환해야 할 천문학적 농가부채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실패한 농정’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농가부채를 안 갚는 보이콧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임시국회에서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뒤 가을 정기국회에서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칠레와의 FTA협정도 농민과 정부간 충돌을 예고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농부들에게 남겨진 것은 강제이농과 야반도주뿐”**
이종화 전국농민총연맹 정책실장은 “WTO 협상이 타결 되고, FTA가 국회에서 수정 없이 통과가 되면 한국농민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방법이 없다”고 막막한 심정을 말했다.
이 실장은 “WTO체제는 사실상 미국의 카길 등 미국의 대형곡물회사 몇 곳만을 위한 특혜로 전 세계 농민이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하고 “정부는 칠레와의 FTA 협상도 형식적인 설명만 했을 뿐 경제학자들도 큰 실익이 없다고 지적한 조약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또 올 연말로 상환이 닥친 농가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농정의 거듭된 실패로 농부들이 매년 빚을 내서 농사를 짓고 부채가 다시 쌓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며 “대부분의 농부들이 남겨진 마지막 선택권은 강제이농이냐 야반도주냐의 차이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쌀 수입 개방을 이유로 올해 처음 휴경제도를 도입했는데 올해 최악의 흉작이 발생했기 때문에 재고로 남아 있던 쌀도 바닥이 날 것”이라며 “WTO체제의 추종과 농정실패, 흉작이 오히려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농민들의 분노는 이경해씨의 시신이 국내로 운구 되는 오는 18일부터 본격적인 행동으로 표출이 될 전망이다. 한농연은 추모행사의 규모와 방법 등 구체적인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전농 등 농민단체들과 연대해 대규모 추모행사를 연 뒤, FTA 비준반대와 농산물 개방저지 투쟁으로 연결시킨다는 계획이어서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와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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