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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이 아니라 마라톤의 '출발선'에 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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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결승선'이 아니라 마라톤의 '출발선'에 선 것"

<양날의 칼 '분리직군 정규직화'③>'우리은행 모델'이 남긴 과제

'분리직군제 도입'을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우리은행 모델'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와 우려는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고 기대도, 제2의 차별을 오히려 고착화시키는 과거 '여행원제'로의 회귀라고 우려하는 시선도 각각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년 이상 비정규직을 같은 업무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시각에서 전문가들은 "우리은행 모델이 완벽한 비정규직의 해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실적인 대안인만큼 보완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 좋은 모델은 없는지, 우리은행 모델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방안은 없는지 모색해야 한다는 것.

"불합리한 격차 축소 노력이 '반대'보다 합리적이다"
▲ 우리은행 모델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완벽한 비정규직의 해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실적인 대안인만큼 보완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프레시안

우리은행 모델에 대한 우려는 '분리직군'이 기본적으로 차별의 소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저임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보는 것. 또 우리은행 모델은 승진의 기회에 대한 구체적인 보장이 없어 나이가 들어 필요 생계비가 늘어나더라도 임금이 오를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노동사회> 2월호에서 분리직군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보다 정규직과 분리직군 간 격차를 줄이기위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같은 통제 장치로 △분리직군의 직무설계, 임금, 기타 조건 등에 대한 금융노조의 직접관리 강화 △분리직군의 기존 정규직군으로의 직무승진과 경력 개발 기회 제공 △분리직군 이외 비정규직 직군의 직무평가 및 임금률 결정을 산별교섭으로 의제화 등 방안 등을 내놓았다.

김 연구위원은 "직무 간 차이와 기능적 유연성을 통제하되 인정하면서 더 많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안전성의 울타리에 포함되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보다 좋은 모델도 있다…현대증권을 주목하라"

이같은 맥락에서 현대증권의 사례는 주목해볼 만하다.

김경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우리은행 모델은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최고의 안이 아니다"라며 우리은행 모델보다 나은 모델로 현대증권 사례를 소개했다.

현대증권은 노사가 함께 10년 전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우리은행처럼 한번에는 아니었지만 현대증권 노사는 창구와 콜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을 매년 1000명 정도씩 정규직으로 전환해 왔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은 별도의 직급인 5급으로 편입이 되지만 우리은행과 달리 어느정도 근속기간이 되면 기존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승진이 가능하다. 직군간 이동 및 승진의 기회가 보장되는 현대증권 모델은 우리은행 모델보다 오히려 한 단계 진전된 모델이라고 김 국장은 지적했다.

"직무평가, 제2의 차별과 노사갈등 방지 위해서 절실"
▲ 비정규직이 주로 사용되는 업무의 중요성 및 생산성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늘 논란이 돼 왔다. 파업 350일을 넘기고 있는 KTX여승무원들과 철도공사의 노사갈등에서도 논란의 시작점은 '승무업무가 외주화가 가능한 단순업무인가 핵심업무인가'라는 문제였다.ⓒ프레시안

현대증권과 같이 직군간 이동 및 승진의 기회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분리직군제가 내포하고 있는 차별의 문제는 남아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존의 비정규직들이 담당하고 있던 업무가 제대로 평가받느냐의 문제는 임금과 직결된 문제다.

비정규직이 주로 담당하는 업무의 중요성 및 생산성에 대한 평가는 늘 논란이 돼 왔다. 노동자들은 "실제 생산성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기업은 "단순업무로 적절한 수준의 임금"이라고 반박해 왔다. 파업 350일을 넘기고 있는 KTX여승무원 문제도 논란의 시작점은 '승무업무가 외주화가 가능한 단순업무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은행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향후 자신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중요 업무라고 주장하면서 임금인상 등을 요구할 경우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결국 각 직무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기준이 없는 한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각 직무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위한 작업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별금지 조항을 피해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직무급이 아니라 산업별로 직무가치에 대한 연구·분석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직무평가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

직무평가란 타이피스트와 청소부, 기획자와 홍보 담당자 등을 놓고 각각의 직무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를 검토해 직무값을 부여하는 일이다. 문제는 직무평가를 통한 직무급 계산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박호환 아주대 교수는 "직무분석과 평가, 직무급구조설계 등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노사간 합의 과정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제 임금체계를 적용해 왔기 때문에 개별 직무에 대한 평가 기준 등 직무값 산정의 기본 토대가 전혀 없다.

직무급이 전 사회인 임금체계로 운용되는 미국의 경우에도 직무평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박의경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이미 1950~1960년대부터 직무평가에 대한 지원과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안별로 하나씩…산별교섭의 축적도 해법 될 듯"

우리나라에서의 직무급에 대한 논란은 사실 1990년대 이후 직무성과급제인 연봉제가 확산되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오긴 했다. 하지만 노조의 거센 반발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직무급제가 도입되지는 못했다. 관련 논의 또한 전문가들과 도입의 필요성을 느끼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모델이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자리잡으면서 직무급이라는 임금체계 자체도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박의경 책임연구원은 "어쨌든 이번 기회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란이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직무급 도입을 위한 기본 전제인 직무평가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직무평가가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합의 자체도 어려울 뿐 아니라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것.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는 "가칭 '국가직무평가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 하나씩 자료를 축적해가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쟁점이 되는 현안별로 이 기구에서 직무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자는 것.

김영두 연구위원은 "노사정이 공동으로 전국적인 직무분석 및 생산관리컨설팅 기구를 설립해 지원하고 있는 독일식 방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금속노조의 출범을 필두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산별교섭도 직무평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차원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산별교섭 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 등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당 노동자가 수행하는 직무에 대한 평가 기준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이 안정화되면서 이같은 과정이 기초자료로 축적될 경우 직무값 산정의 밑그림이 큰 틀에서나마 그려질 수 있다.

김경란 국장은 "산별교섭이 진행되면 각 산업의 직무에 대한 임금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합의가 축적되면 사회적 기준의 근거도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노동계여, 두려워만 하다간 큰 코 다친다"
▲ 우리은행 모델의 대두는 비정규직 법안의 해법 차원을 넘어 개별 직무에 대한 평가기준의 확립과 사회적 합의 마련이라는 과제를 우리 사회에 남긴 셈이다.ⓒ프레시안

직무평가는 평가항목을 어떻게 설계하고 각 항목에 어떤 점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직무값 자체가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도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직무급이나 직무값 산정에 대한 노동계의 분위기는 구체적인 연구 및 분석을 통한 자체적인 입장 마련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 강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계속 두려워만 하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라고 충고했다.

기업이 추구하는 직무급 도입의 목적대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두 연구위원은 "직무가치 평가는 미국과 같이 기업의 주도로 이뤄질 수도 있고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기업 외부의 산별 노사관계나 국가에 의해 설정되고 기업이 이를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업은 미국식을, 노동계는 독일이나 스웨덴식을 원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조순경 교수는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테니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노동계가 직무급 논의에 대해 계속 회피하기만 한다면 나중에 크게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은행 모델로 촉발된 직무급 논의 자체가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기준에 근거한 임금결정으로 확산될 경우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더 늦게 전에 노동계가 이와 관련된 적극적인 연구 및 검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결국 우리은행 모델의 대두는 비정규직 법안의 해법 차원을 넘어 우리사회로 하여금 개별 직무에 대한 평가기준의 확립과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마련이라는 마라톤의 출발점에 서게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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