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연극을 구경했다.
노 대통령은 27일 저녁 취임 후 처음으로 부인 권양숙 여사, 문희상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내외와 함께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늘근 도둑 이야기'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극에는 지난해 대선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으로 활동했던 명계남씨가 출연했으며, 이 연극을 본 유인태 정무수석이 "좋더라"며 노 대통령에게 관람을 권유했다고 전해졌다. 비밀리에 살짝 '봄밤 밤마실'을 즐긴 것이다.
***탈권위주의형 '젊은 국정' 만들어가는 노 대통령**
노 대통령의 연극 관람 소식을 접하고 "젊은 대통령, 멋 좀 부리세요"라는 제목이 퍼뜩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생, 57세다. 31년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50세에 대통령이 되었던 것에 비하면 노 대통령이 가장 젊은 대통령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나이와 무관하게 '젊은 대통령'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전임 DJ, YS에 비해 20여살이나 젊기 때문이다. 또 군사정권 시절의 대통령들과는 도저히 동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승리의 드라마를 엮어낸 젊은이들의 열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젊은 대통령'에 걸맞게 노 대통령은 훨씬 젊은 장관들로 파격인사를 단행했고, 각종 격식 파괴를 통해 탈권위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검사들과 마주 앉아 격론을 벌이고, KBS 노조원들에 대한 직접 설득에 나서고, 장관 및 청와대 보좌진들과 수시로 토론하면서 탈권위주의형 '젊은 국정'의 새 모습을 열어가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청와대의 각종 공식 회의와 행사에서 '농담'도 가장 많이 하고, '실수'도 곧잘 한다. 스스로 "실수하는 게 특기"라며 짐짓 눙쳐가면서 아무래도 권위주의적으로 흐를 우려가 큰 최고국정운영의 현장 분위기를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행보에 대해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불안함'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옛날식 대통령상(像)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많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절대권력자의 위치에서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러한 과거의 대통령 이미지를 깨뜨리겠다고 공언했고,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많은 권력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대통령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은 분명 인정할만하다.
권력의 위치에 올라서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호랑이 등에 탔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권력은 누가 애써 행사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작동하는 법칙을 갖고 있다. 그런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대는 크다. 노대통령이 젊기 때문이다. '젊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멋' 부리는 데에는 관심 없나?**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젊음'에서는 왠지 '멋'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젊음'은 일단 '패기' '도전' '변화' 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것에만 그치면 '섣부름' '불안함'이란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젊음'엔 또하나 '멋'이 있어야 한다. 사실 젊음은 그 자체가 멋지다. 멋을 부린다는 건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젊음이 저절로 멋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멋진 젊음이 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새롭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젊은 대통령상', '젊은 국정'에는 멋이 부족해 보인다. 멋 부리려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살펴보자. 우선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TV 화면에 비치는 청와대와 내각의 모든 고위 인사들 패션에서 멋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 같이 비슷비슷한 색깔, 그것도 검정색 계통의 양복을 입고, 흰 와이셔츠에 엇비슷한 넥타이들뿐이다. 그나마 젊은 이미지 심는다고 빨간색 계통의 넥타이가 자주 등장하는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매고 나타나는 그런 것일뿐 멋과는 거리가 멀다. 그 숱한 패션 코디네이터들 다 어디가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스스로 어색해 보여도 색다른 패션감각을 가미한 옷을 걸치고 멋을 부리다 보면 생각이 바뀌는 법이다. 그걸 못하면 생각도 더디 바뀐다.
청와대가 역점 두어 실천하겠다는 과제들의 경우도 그렇다. 개혁과제들의 제목은 대충 이렇다. 정부혁신.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동북아경제중심, 빈부격차.차별시정, 신행정수도건설, 노동개혁, 농어촌대책.
과거 정부에서 하지 않던 일이 없다. 제목도 내용도 사실상 똑같다. 새롭지 않고 멋스럽지 않다. 좀 심하게 말하면 유신시대 것들과도 엇비슷하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단어들, 문화, 환경, 어린이, 여가, 지구촌, 평화 등등의 단어가 한 개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런 단어가 제목에 없을 뿐 사실상 내용에서는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숱하게 많은 과제들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만 꼽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가 직접 챙길 국정과제들을 고민하고 최종 선정하면서 "이게 국민들에게 뭔가 새롭게, 멋지게 다가올까?"라는 식의 고민이 부족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고민을 제대로 했다면 최소한 마지막 단계에서 카피라이터 몇 명이라도 불러 표현만이라도 바꿔보려 했을 텐데, 그런 노력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난마처럼 얽힌 국정난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해법 필요**
대통령의 넥타이 색깔이나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국정과제 제목 등을 갖고 공연히 시비 걸자는 게 아니다.
노 대통령 국정운영에 '멋'이 없다는 것은 우리 안팎 난마처럼 얽힌 과제들을 풀어가는 데 있어 한 단계 격상된, (멋 좀 부린 표현을 쓰자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해법을 내놓아 달라는 주문이다.
지금 대통령이 맞닥뜨린 국정 현안들은 하나같이 중차대하고 심각하다. 북핵문제, 경기침체, 거기다 사스 공포까지, 주변 상황이 지극히 안 좋다. 재보선에선 여당이 패배했고, 당 개혁은 신당론과 얽혀 답답하기만 하다. 국정원장 임명을 계기로 대야관계도 꼬여가고, 이 문제는 고질적인 색깔시비와 얽혀들면서 여기에 전교조.한총련 문제까지 뒤섞여 이념갈등으로 확대되어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게다가 보수세력, 기득권층들은 '불안한 아마츄어 정권'이라고 공격해대고, 노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었던 개혁적 시민세력들은 '개혁을 방기하고 관료 품에 빠지느냐'고 연일 비판이다. 언론과는 '전쟁같은 긴장상황'을 자초해 사사건건 시비와 논쟁이다.
'뭘 좀 해보려고 했는데 상황은 최악이고,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 나오는데 손대는 일마다 깔끔한 뒤처리가 되지 못하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세상 일이 어렵고 복잡하니 사람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청와대가 난감하고,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간다. 점차 '농담'도 '실수'도 줄어들었다. '멋'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애초에 '잘 하겠다'는 의욕에 빠져 '멋' 부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매사에 지나치게 진지한 자세로 정공법으로만 대처하려 서둘렀던 것은 아닌지 홀로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야 할 때이다.
***'멋'부릴 여유 갖고,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길**
'멋'을 부리려면 최소한 거울이라도 한번 더 쳐다보는,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한번쯤 더 생각해 보는 여유와 준비가 필요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릴수록 그 문제를 멋지게 풀어내려면 마지막까지 수순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고, 해당 문제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급적 많이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수순으로, 누가 뭘 담당할지 역할분담을 통해, 어떤 표현과 어떤 행동으로 일을 풀어갈 것인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깊어야 한다. 방향을 결정하는 고민과 노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욱 많은 고민과 노력이 '방법론'에 투자되어야 한다.
정직한 정공법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인생살이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 가슴에 시원한 청량제를 선사할 수 있다면 우회로도, 다소의 위선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멋'이 생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해법'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일단 여유를 갖기 바란다. 연극이나 영화, 음악회도 종종 가면서 국정과 동떨어진 자기 개인만의 삶의 향기를 생각하는 시간도 더 많이 갖기 바란다. 그리고 넥타이나 양복도 한번 더 골라 입으면서 '멋'을 부리는 사치를 누리기 바란다. 그래야 생각이 바뀐다.
중차대한 시국에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난데없이 웬 '멋' 타령이냐는 성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럴수록 '멋'을 생각하며 또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옛날식이 아닌 새로운 국정을 펼치려면 집요하게 마무리까지 완성시킬 수 있는 철저한 끈기가 있어야 한다. '멋' 부릴 여유조차 없다면 스스로 지쳐 패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젊은 대통령, 멋 좀 부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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