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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쓰고, 시간이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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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월이 쓰고, 시간이 마무리했다"

<인터뷰> 화제의 영화 '童僧' 주경중 감독

11일 개봉하는 영화 '동승'(감독 주경중)은 흥행제일주의에 사로잡혀 조폭과 억지 코미디만 가득한 충무로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의미 있는 작품이다.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베를린 영화제 등 해외 30여개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잔잔하고 조용하다. 희곡 함세덕의 '동승'에 기초한 탓인지 연극적 얼개도 탄탄하다.

***산사의 세 스님 엮어내는 아기자기한 일상사**

산사의 세 스님, 늘 자신의 키가 빨리 커서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동자승 도념(김태진), 학승 정심(김민교), 주지스님(오영수)이 함께 지내며 겪는 아기자기한 일상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사진1- 영화 '동승' 스틸>

엄격하지만 인자한 주지스님은 이미 모든 욕망을 초월한 듯 하지만 자신의 절에서 어린 스님들을 가족처럼 보살피고 싶은 '욕심'마저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동자승 도념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속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 불공시간 보다는 토끼몰이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그림을 그리는 일에 더 열심이다.

젊은 학승 정심도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늘 구도를 방해하고 주지스님에게는 포경수술할 돈을 달라는 투정만 부린다.

스님들은 마치 아버지와 두 아들 같이 오붓한 관계를 유지하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고 도념이 산 아래 마을 아이들과 겪는 갈등과 대결은 작년에 국내 흥행에 크게 성공하고 미국 배급까지 한 '집으로...'가 보여준 밝고 건강한 웃음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스님과 포경수술'이란 어울리지 않는 에피소드가 영화 전반에 걸쳐 개입하면서 감미료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동시에 잔잔하게 영혼과 구도의 문제를 제시하는 종교영화로서의 깊이도 놓치지 않고 있다.

도입부와 후반부에 음향 등 기술적인 문제에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 아쉬움의 영화가 지닌 미덕을 해칠 만큼 큰 흠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진2-주경중 감독>

이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7년간 홀로 묵묵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무로 영화계로부터 '동승이 고승이 되는 것이냐'는 비아냥 섞인 농담까지 들어야 했던 주경중 감독을 만나 영화제작에 얽힌 에피소드와 제작의 어려움을 들어봤다.

***"관객은 좋은 영화를 그냥 버리지 않는다"**

프레시안 : 작품 완성을 위해 오랜 기간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주경중 감독(이하 주 감독) : 지금 따져보니, 약 7년의 제작기간이 필요했다.

프레시안 : 도념 역을 맡은 배우가 촬영 중 자꾸 성장해 고생했다고 하던데?
주 감독 : 제작비가 없어서 찍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캐스팅 했는데 촬영을 다 마치니 중학생이 됐다.

프레시안 : 흥행만을 위한 잔인한 막가파식 폭력물과 황당한 코미디가 주류인 현재 영화계 풍토에서 이런 작품에 집착하고 만들게 된 남다른 이유가 있었나?
주 감독 : 누군가 의미 있는 작품도 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관객은 좋은 영화를 그냥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늘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 늘 관객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다.

프레시안 : 영화 곳곳에 단순하지 않은 종교적 코드가 있는 것 같다. 도념이 아이들을 때리려다가 양순한 소를 보고 몽둥이를 내려놓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주 감독 : 그 장면은 원래 도념이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몽둥이로 응징하는 것이었다. 낫으로 휘두르고 피도 나오게 할 까 했었다(웃음). 그런데 영화를 찍으며 불경이나 불교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를 하는 기회가 됐고 특히 촬영을 하는 절들에서 여러 노스님들을 뵙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몇 장면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찍기 전에는 불교 신자이긴 했으나'돌신자' 였다(웃음).

<사진3- '동승' 출연배우 김예령씨>

프레시안 : 후반부 주지스님이 도념을 혼내는 장면을 상당히 긴 롱 테이크로 처리한 것도 인상적이다.
주 감독 : 당시에 촬영하던 절이 공사 중이라 앵글에 제약이 많았다. 촬영중 시간과 자금이 부족하기도 했다. 원래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의 변화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갔다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여러 문제가 있었다. 장면 자체는 원래 긴 호흡으로 끌고 가려던 의도대로 된 셈이다.

프레시안 : 절을 떠나는 도념을 배웅하는 촌부(전무송)의 '넌 찾을 것이 있어서 좋겠다'는 마지막 대사는 원작에는 없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사가 영화를 잘 정리해 준다는 느낌이 든다.
주 감독 : 그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배우들과 토론하다 얻은 영감으로 넣은 것이다. 촬영 중에 전무송씨가 연기자들과 스텝사이에서 선배로서 큰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 원작인 함세덕의 '동승'은 무대를 위한 희곡인데 큰 무리 없이 시나리오로 변화시킨 것 같다.
주 감독 : 영화를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던 덕분에 세월이 쓰고 시간이 마무리를 해 줬다. 대본을 전체적으로 3번 정도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다.

프레시안 : 영화계에서는 이 작품이 제작단계에서 투자를 거의 못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감독 : 직접 제작비를 마련했고 몇몇 개인 투자자들이 조금씩 도움을 주셨고 촬영중에 모 방송국에 나가 호소를 한덕에 불교신도들도 도움을 주셨다. (영화 관계자에 의하면 영화의 제작비 대부분은 주 감독이 집을 팔고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마련한 돈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사진4- 영화 '동승' 스틸2>

프레시안 : 주 감독의 영화계 경력을 보면 80년대 독립영화운동과 광주항쟁을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인 '부활의 노래' 제작자라는 점이 눈에 띈다.
주 감독 : 그때의 의미 있는 활동과 시간들이 보이지 않게 내 내면에 쌓여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불교가 원래 유물론적인 요소도 있다.

***"동승은 가족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프레시안 : 영화가 국내에서는 극장배급도 힘든 상태였으나 베를린영화제 등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
주 감독 : 그 덕분에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행운까지 얻게 됐다. 특히 베를린에서의 열렬한 반응에 나도 놀랐다. 영화가 끝나고 바로 박수가 나지 않아 걱정도 했는데 가만히 보니 소리 없이 울먹이느라 관객들이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박수를 치더라. 그때 겨우 안심을 했다. 한 서양평론가는 '보석함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귀한 보물을 만난 기분'이라고 극찬해 오히려 내가 쑥스러웠다. 서양인들이 보기엔 '어머니'로 비유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불교에 대한 경외심이 함께 작용한 것 같다.

프레시안 : 긴 쵤영 기간동안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주 감독 : 주연인 태진군이 어릴 때는 연기를 시키면 잘 따라했는데 커서는 말을 좀 안 들었다. 처음엔 꼬마였는데 끝에는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웃음).

<사진-영화 '동승' 주연 김태균>

프레시안 :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원하나?
주 감독 : 동승은 결코 어려운 '예술영화'가 아니라 가족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그 안에서 각자가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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