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단지 정통부 한곳에 그치지 않고 금명간 다른 정부부처로도 확산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현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정책과 정면배치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정책"**
논란은 진대제 정보통산부 장관이 지난 28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의 인터넷 게시판부터 단계적으로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야기됐다. 이에 대해 ‘함께하는 시민행동’, ‘진보네트워크’,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등 시민·인터넷관련단체들이 잇따라 강력한 반대성명과 논평을 통해 이 제도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사진1- 진대제 정통부 장관>
인터넷단체인 '진보네트워크'는 30일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라는 논평에서 “인터넷 실명제는 국민에 대한 위헌적 감시이자 개인정보 침해이고 검열이기 때문에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진보네트워크는 “정보화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하에 추진돼야 하며 정보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이러한 원칙하에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5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공대위'도 31일 '인터넷실명제를 추진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지하라'는 성명을 통해 “정통부의 인터넷실명제는 하나의 게시판이나 하나의 커뮤니티의 결정이 아니라, 국가가 강제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며 “인터넷실명제는 인권 침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인터넷을 강제적으로 실명화해 국가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또 “국민은 언제든지 위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이므로 이를 미리 감시하자는 것이 실명제 주장의 실체”라며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합의해온 인류의 인권적 발전을 후퇴시키는 처사”라고 정통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2 - 컴퓨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그 부당함에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도 31일 ‘진대제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의 세부 내용과 그 부당성을 일일이 열거 하며 “진 장관이 실명제의 부당함을 숙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함께하는 시민 행동’은 이 공개서한에서 “익명성으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가 있으니 실명제를 실시하자고 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매 순간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범죄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니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성명은 “이미 많은 네티즌들은 올바른 게시판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올바른 인터넷 문화 만들기를 위한 네티즌들의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게시판의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는 이런 자발적인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지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진대제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전문**
진대제 장관님께
정보통신부는 3월 2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 역기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사이버상의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터넷게시판 실명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정보통신부 관료들과 진대제 장관께서 인터넷 실명제를 마치 스팸 메일을 거르기 위한 필터링 프로그램 정도의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이버 상의 폐해를 조금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사이버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정보통신부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의 주장과 의견을 받는 자유로운 형식의 자유게시판 조차도 없는 홈페이지입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정보통신부처럼 자유게시판을 만들지 않는 공공기관을 합리화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공공기관에서 자유게시판을 완전히 폐지하여 상호간의 소통을 막겠다는 발상입니다.
장관께서는 자유게시판이 없는 정보통신부의 홈페이지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라서 편안함을 느끼십니까? 수많은 국민들은 그곳에서 “우리가 주는 정보나 보고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권위주의를 느낍니다. 반면에 비록 진흙탕이라고는 하지만 다양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여성부의 토론게시판에서는 무엇인가 소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게시판 문화를 자랑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게시판은 지금까지 과도한 국가의 통제 속에 억눌려왔던 국민들의 다양성이 마음껏 표출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제 한껏 분출되는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막아버리는 또 다른 국가의 폭력이며 인권의 제약입니다.
익명성으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가 있으니 실명제를 실시하자고 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매 순간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범죄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니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적대적인 정책입니다.
진대제 장관께서는 그러한 국가의 감시, 통제 체제에 찬성하실 수 있으십니까? 책임성 운운하며 자신이 떳떳하면 이름표를 못 달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이버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공간이 아닙니다. 이미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세계입니다.
장관께서는 업무보고에서 "우선 공공기관부터 도입한 뒤 민간 분야는 공청회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합리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것은 사회적으로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정부가 주도해서 어떻게든 정부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라는 전형적인 낡은 사고라고 판단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합리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 과연 국민 참여 정부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덧붙여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어떤 곳보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이러한 부적절한 정책을 시험하는 실험실로 전락시키는 정보통신부의 한심한 인식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3월 10일 정보통신부와 한나라당 일각, 그리고 몇몇 언론에 의해 논의되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논평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설마 하던 우려가 불행하게도 28일의 업무보고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근본적으로 시민적 자유를 부정하는 제도이며, 자유와 인권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사고의 산물입니다.
인터넷상의 익명제로 인한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익명성을 무기로 악의적 비방이나 인신공격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 상에서의 명백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현행법 체계 내에서 추적 및 처벌이 가능합니다.
익명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지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네티즌들은 올바른 게시판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올바른 인터넷 문화 만들기를 위한 네티즌들의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시판의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는 이런 자발적인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지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실명과 익명의 쓰임새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각 공동체의 자율적인 계약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인터넷은 익명과 실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익명만의 세상도 아니고 실명만의 세상도 아닙니다. 현재 이미 많은 영역은 자율적인 계약과 책임 속에서 실명화된 상태입니다. 국가가 이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보통신부에 의해 추진되는 인터넷 실명제 정책은 포기되어야 합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뜻을 같이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사이버 세상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수많은 네티즌들과 그 부당함에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대제 장관께서는 인터넷 실명제의 부당함에 대해 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3월 31일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