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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쓰나미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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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쓰나미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린아시아2006] 쓰나미 그 이후, 타이를 찾아서

충격, 공포, 그리고 상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쓰나미가 찾아온 지 어느덧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지만 타이 팡아만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은 쓰나미를 잊지 못하는 듯 했다. 팡아 곳곳은 아직도 그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공사장'이었다.

그나마 건물이 새로 올라간 곳도 여전히 '공사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편의점이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편의점이 다시 생겨나고 해변가엔 리조트와 호텔들이 들어섰으며 사람들 역시 나무 판자로 대충 만든 임시거처를 벗어나 자기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새로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텅빈 채 '임대중'이라는 안내 글귀만 펄럭이고 있어 모든 것이 쓰나미 이전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했다.
▲ 타이에서 쓰나미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팡아만 지역. 쓰나미가 몰려온 지 어느덧 1년 6개월을 넘겼지만 곳곳에서 마주하는 공사 현장들은 이 곳이 아직 쓰나미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

월드비전 푸켓지부에서 쓰나미 복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그라함 타디프 씨는 "팡아만은 현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주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관광객만 3000명이 죽었다는 카오락 비치. 푸켓의 빠퉁 만큼이나 아름답기로 소문 났던 곳이지만 이제 그 곳에서 관광객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팡아는 타이에서 가장 쓰나미의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던 곳이다. 타이 내무부가 공식 발표한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5384명 가운데 팡아에서만 42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느 날 갑자기 팡아만을 찾아 왔던 그 끔찍한 기억은 해변으로부터 150km나 떨어진 산 중턱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팡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직 채 정리되지 못한 집터의 흔적들과, 쓰나미 당시의 피해 지역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그들에게 쓰나미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했다.
▲ 산 중턱에 덩그러니 자리한 경찰배 여러 척. 이 배들은 쓰나미 당시 밀려든 바닷물을 따라 애초 육지였던 이 곳에 자리 잡게 됐다. 현지 주민들은 쓰나미를 기억하기 위해 이 배들을 굳이 옮기지 않았다고 했다. ⓒ프레시안

▲ 쓰나미로 인해 이 자리에서부터 1.3m 안쪽까지 바다물이 밀려들었다는 흔적을 나타내는 표지판(좌). 반남켐 마을에 위치한 쓰나미 기념 공원에 있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우). ⓒ프레시안

그들에게 쓰나미는 '현재 진행형'이다

쓰나미 기념 공원이 있는 반남켐 마을에서 만난 허언 씨(51)는 그 당시 상황을 묻자 바다 멀리 수평선 근처를 응시했다. 쓰나미가 닥쳤을 시간 해안으로부터 4마일 떨어진 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그는 쓰나미가 해변으로 갈수록 집중적으로 높아지는 해일이었기에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 허언 씨는 "쓰나미 이후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무너진 건물은 다시 지어졌지만 그에게 쓰나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

허언 씨의 가족들도 운이 좋은 경우였다. 마침 그 날은 그의 부인이 푸켓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날이었다. 쓰나미가 몰려오기 30분 전, 에어콘이 나오는 버스를 탈까 고민하던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좀 더 빨리 아들을 만나기 위해 에어콘 버스를 포기하고 일반 버스를 타고 팡아를 빠져 나갔다. 그녀가 타려던 에어콘 버스는 결국 쓰나미가 몰고온 해일에 쓸려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쓰나미로 살던 집과 모든 것을 잃은 허언 씨 가족은 지난해 5월까지 6개월 가량 고향을 떠나 있었다. 그는 다시 태국 정부가 군인들을 동원해 지어준 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에게 쓰나미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느 날 다시는 볼 수 없어진 이웃 주민들과 마을 곳곳의 쓰나미 잔해들이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의 모든 것이 달라지게 한 것은 먹고 살기가 힘든 팍팍한 현실 때문이다.

"쓰나미 전에 비해 관광객 수도 줄었고 고기 잡는 것 외에는 먹고 살 길이 없다. 쓰나미 이전에는 순수익이 연간 3만 바트에서 5만 바트(우리돈으로 약 900만~1500만 원)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2만 바트(약 600만 원)도 못 벌었다.

쓰나미 때문에 무너진 집과 마을 곳곳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나가서 고기잡이 하는 시간이 줄었다. 고기도 예전보다 더 멀리 나가야만 잡힌다. 관광객이 줄고 정부가 지원책으로 배를 지원해주면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 탓이다. 그나마 지난 2달 동안은 수입이 하나도 없었다."

고기를 잡아 와 시장에 내다 팔아도 먹고 살기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수입 2만 바트에서 망가진 보트 엔진을 교체하려고 빌린 돈을 갚고 비싸진 각종 생필품으로 인해 늘어난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아이들 학비조차 남지 않는 것이다. 허언 씨는 "고기 값은 같은데 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가솔린 비용도 비싸졌다"고 털어놨다.
▲ 쓰나미 이후 주민들의 수입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고기잡이에도 경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좌). 스와띠 씨는 NGO 자원봉사자들이 가르쳐 준 기술로 가방을 만들어 팔고 있다(우). ⓒ프레시안

이같은 사정은 스와띠 씨도 마찬가지다. 스와띠 씨는 쓰나미로 어린 여동생과 아들을 잃었다. 그 자신도 바닷물이 집까지 밀려와 작은 판자에 의지해 5시간을 물 위에 떠 있다 구조돼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스와띠 씨의 어린 딸은 아직도 오빠를 찾는다고 했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사는 바다마을 아이지만 어린 딸은 해변에 가는 것을 두려워 한다.

스와띠 씨는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노끈으로 가방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팔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노끈으로 가방을 만드는 것은 쓰나미 이후 이곳을 찾아 복구 활동을 도왔던 NGO 자원봉사자들이 가르쳐준 기술이다. 그러나 관광객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그마저도 쉽게 팔리지 않는 실정이다.

자연재해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진 그들의 생활환경은 과연 재해복구가 단지 무너진 건물을 다시 짓는 데에만 있는 것인지 묻고 있었다.

정부의 '복구' 속에 서민은 없었다…"정부 정책은 기업에 맞춰져 있다"

라자프라나그로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소라다 씨는 "무너진 호텔을 다시 세우고 보수하는 것은 그 호텔의 소유주들이 가진 자본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것은 빈민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집조차 자기 힘으로 마련하기 힘든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자연재해 이후 이뤄지는 복구 작업에서도 빈민들은 소외되고 있다. 쓰나미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들이나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자연재해가 지나간 뒤의 삶은 그들 사이의 간격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 놓았다.

'타이 야생 보호 재단(Wildlife Fund in Thailand)'에서 일하는 타누 납니엔 씨는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복구과정에서 빈민들은 또 한 번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정책은 현지 주민들보다는 그 곳에서 관광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의 이익에 더 가깝다"고 비판했다.

해변 가까이에 살림집들이 들어서 있어 더욱 많은 피해를 입었던 마을. 그러나 정부가 마련해 준 새로운 집들은 이전과 똑같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납니엔 씨는 "정부 관료들은 방콕에 앉아서 복구 정책을 내놓을 뿐 현지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며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더욱이 정부 내 관료들과 각 기업들의 사람들은 서로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 쓰나미에 휩쓸려가 터만 남은 건물의 잔해들. ⓒ프레시안

"먹고 살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진정한 복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팡아를 떠났다. 다른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결국 가장 절실한 것은 "건물의 복구를 넘어 경제가 복구되는 것"이라고 월드비전의 타디프 씨는 역설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타디프 씨가 일하고 있는 월드비전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그가 강조한 경제 복구 사업의 일환인 것이다. 오토바이를 고치는 기술에서부터 새우 양식하는 기술, 농사 짓는 법 등 주민들의 새로운 생계책 마련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발로 뛰고 있다.

팡아 반남켐 마을 근처에 있는 수중 식물 재배 농장은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 교육이 성공한 대표적인 예다. 월드비전에서 초기 자본금을 대고 쏭크라 대학의 학생들이 수중 식물 재배 기술을 주민들에게 가르쳐줬다. 이 곳에서 재배된 농작물은 타이 곳곳의 호텔과 리조트에 공급되고 있다. 마을 주민 14명이 3조로 나눠서 일을 하는 이 농장의 판매액은 한 달에 3만~ 6만 바트(약 900만 원~1800만 원) 수준. 부업으로 치면 꽤 많은 돈을 버는 셈이다.
▲ 주민들에 대한 생계 대책 마련 역시 중요한 복구 사업 중 하나다. 현지 월드비전에서 지원한 수중 식물 재배 하우스는 그와 같은 경제 복구 사업 중 하나다. ⓒ프레시안

월드 비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이같은 생계책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NGO 단체에서 하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자연재해 이후 보상금이나 건물 복구 그 자체보다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대책 마련이 가장 중요한 복구라는 이들의 얘기는 종종 수해로 피해를 입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날아간 집은 세우면 되지만 다친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까

당장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대책이 경제 복구라면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복구사업이다. 특히 모든 것이 한창 성장되는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경우 그 날의 충격과 공포를 치유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쓰나미 이후 아이들에 대한 교육사업을 전면적으로 벌여 온 '두앙프라팁 재단'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니콜라스 홀로웨이 씨는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자프라나그로 재단의 소라다 씨도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글에서도 대화에서도 어디에서든지 쓰나미가 나온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린 해일의 모습은 그 이미지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친구도 잃고 삼촌도 잃고 부모도 잃은'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도 쓰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홀로웨이 씨는 "직접적인 쇼크로 아직까지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 아이들에게 쓰나미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다. 라자프라나그로 재단의 소라다 씨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글에서도, 대화에서도 어디에서든지 쓰나미가 나온다"고 했다. ⓒ프레시안

따라서 타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쓰나미 복구를 위한 단체들이 현재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치료 방법의 모색이다. 두앙프라팁 재단은 아이들의 정신 치료를 위해 장난감 도서관을 피해 지역에 만들었다. 인형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배우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쓰나미의 충격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타이는 사실 쓰나미로 인한 피해를 가장 적게 입은 나라 중 하나다. 홀로웨이 씨는 "타이는 대외적인 지원도 많이 받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복구가 상당히 빠르게 잘 이뤄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날아간 집은 세우면 되지만 정서적 피해에 대한 복구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장 많이 지원해주는 국가는 일본…한국? 잘 모르겠다"

결국 지속적인 복구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현지 NGO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이나 폐허가 된 건물을 겉보기에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도 복구지만 생계대책과 정서적 피해에 대한 지속적 복구 사업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한 까닭이다.

소라다 씨는 "복구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번 지원금을 내놓고 그걸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에도 지속적인 복구 지원을 당부했다. "한국은 IT 강국이 아니냐. 한국의 IT 기술을 통해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의 교육 사업을 지원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같은 경제수준의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낮음은 이미 수 차례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우리의 대외원조 수준은 두앙프라팁 재단의 홀로웨이 씨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홀로웨이 씨는 "가장 많이 지원해주는 국가는 일본"이라며 "재단으로 들어오는 총 지원금의 28%가 일본에서 온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의회 차원에서 이 재단을 방문할 정도로 일본 정부나 개별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일본 외에 지원금을 보내오는 국가들로 그는 미국, 영국, 독일 등을 꼽았다.

한국에서도 지원금이 들어오느냐고 물어보자 홀로웨이 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지원금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라며 말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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